“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상태바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3.01.17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인의 상처를 위한 힐링, 영화 ‘누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는 여자. 그리고 강해 보이지만 외로움이 많은 소년. 각자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웃음을 잃은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위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다른 삶을 살아온 외로운 이들이 각자 내면에 갖고 있는 상처가 닮았음을 알아가면서 서로를 치유해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기독교영화제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사전제작지원을 받아 완성된 외롭고 쓸쓸한 영혼들을 위한 한 편의 힐링 드라마, 현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영화 ‘누나’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어린 시절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다 죽은 동생을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 살아가는 윤희(성유리). 그 죄책감 때문에 윤희는 장마 때마다 외출을 하지 못한다. 전화 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비만 오면 앓는 윤희. 연락도 없이 일주일씩 무단 결근하는 윤희는 다니는 직장마다 해고를 당한다. 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며…. 술만 마시면 “네가 동생을 죽였다”며 “쓸모 없는 애”라고 구박하는 아버지의 구타에도 윤희가 소리 한 번 내지르지 않았던 건 스스로 학대받아 마땅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어느날 해고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윤희는 동생의 유일한 사진을 간직해두었던 지갑을 동네 불량학생 진호(이주승)에게 빼앗긴다. 다짜고짜 돈을 내놓으라며 협박을 하는 진호. 앳된 얼굴로 어울리지 않는 욕설을 내뱉으며 윽박지르는 어색한 모습에 윤희는 난처한 듯 지갑을 꺼낸다. 하지만 지갑 속 현금이라곤 고작 2만 원. 화가 난 진호는 지갑을 통째로 빼앗아 달아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윤희가 급식 도우미로 일하게 된 학교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친다.

이 영화는 기사 한 줄에서 만들어졌다. 장마철 어느날, 어린 남동생이 물에 빠진 누나를 구하려다 함께 죽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한 이원식 감독은, ‘만약 남동생은 죽고 누나는 살았다면, 누나는 아마 평생 동안 죄책감에 힘들어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영화의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살아남은 누나가 그 고통과 상처에서 치유되고 구원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어느 고등학교 급식실 식당에서 밥을 만들고 배식을 도와주는 일을 하던 윤희는 지갑을 빼앗아간 진호와 마주친다. 진호를 바로 알아본 윤희는 지갑을 되돌려 받기 위해 진호의 밥그릇에 돌을 넣어 씹게 만들거나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진호에게 까나리 액젓을 뿌리는 등 귀찮게 하며 지갑을 돌려달라고 한다.

진호는 내면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폭행하고 돈을 뜯어내는 등 사고를 저지르면서도 학교를 떠나면 아픈 엄마와 사채빚을 떠넘긴 아빠의 몫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다. 한창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아무도 그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진호의 위악적인 표정과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다.

어느날 윤희는 길을 가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길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이때 마침 발견한 진호가 윤희를 구해준다. 진호가 장맛비 속에 쓰러진 자신을 구해 준 것을 계기로 죽은 동생을 떠올린 윤희는 잊고 싶었던 과거의 상처와 대면한다.

날마다 멍투성이 얼굴로 일하러 나오는 윤희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준호는 윤희의 뒤를 밟고, 그녀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신과 처지가 너무도 비슷한 윤희를 만나면서 진호는 가족의 정과 온기에 대한 목마름을 서서히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내면의 아픔을 서로 공유하며 친누나, 친동생같은 관계로 발전한다.

진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이게 된 윤희의 눈에도 진호의 상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윤희를 만나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던 진호가 뜻하지 않게 학교에서 퇴학 조치를 받게 된다. 게다가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기까지 하면서 진호의 일상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악화되기 시작한다.

한편 윤희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급식실 주방장 아주머니가 부담스럽다.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봐주고, 작은 것도 챙겨주려 하고, 숨겨진 아픔을 참고 기도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주방장의 모습이 윤희에게는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무언가 이루어질 것을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 윤희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은 윤희가 진호를 위해 ‘기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진호는 결국 엄마의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했다. 마지못해 찾아간 아빠는 무책임한 모습만 보일 뿐, 퇴학까지 당한 진호는 더욱 외로움 속으로 지쳐간다. 늘 화목한 가정을 꿈꿨지만 영영 그런 삶을 살 수 없게 된 진호는 수술비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사채를 써 깡패들에게 도망가기 바쁘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비가 오는 날이면 밖에 나가지 못 하는 윤희는 위기에 빠진 진호를 구하기 위해 빗 속을 뚫고 달려간다. 빗속에서 힘겨워하던 윤희는 눈물을 쏟아낸다. 시간이 흐르고 비가 그친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 윤희는 무지개를 보며 ‘희망’을 품고 옅은 미소를 짓는다.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누나’라는 단어처럼 영화는 윤희와 진호의 치유 과정을 통해 지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맑게 갠 하늘의 무지개와 같은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
한편, 배우 성유리는 이번 영화에 노개런티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누나’는 2010년 서울기독교영화제 사전제작지원 당선작에 선정되고 제9회 서울기독교영화제에서는 폐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 진호와 윤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내면의 아픔을 서로 공유하며 친누나, 친동생같은 사이가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