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르포] 최전방 백골부대, 신앙의 힘으로 견뎌내는 장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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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르포] 최전방 백골부대, 신앙의 힘으로 견뎌내는 장병들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2.12.28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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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 철책을 가다

▲ 강원도 철원 배골부대의 GOP에서 경계근무중인 초병.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철원을 향해 자동차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비가 내려 질척이는 날씨에 어려움을 겪은 후 두 번째 방문이었다. 우리나라 최전방 백골부대의 철책선은 낯선 이의 방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달리는 차는 하나둘 사라져갔다. 그나마 보이는 것은 온통 국방색으로 칠해진 군용 차량들.

그저 민간인의 자동차가 지나갈 뿐인데 멀리 위병소에서는 차량을 향해 경례를 한다. 사단본부에 도착해 주차를 한 후 문을 열자 차디찬 칼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그때서야 실감이 난다. 서울보다 약 10도 쯤 차이 나는 기온.
“아, 여기가 최전방 철원이구나.”

# 전선을 가다
북한 미사일이 발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방문. 어려움이 있을꺼라 예상했는데 역시나 하나님은 앞길을 준비하고 계셨다. ‘여호와 이레’. 아무런 문제없이 전방 초소 방문 승인이 떨어졌다.

구석구석 지리도 모르거니와 상상을 초월하는 도로의 경사 때문에 군용 지프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사단 공보장교와 연대 군종목사, 연대 군종병 한 명이 함께하게 됐다.

처음 향한 곳은 연대 교회. 몇 번의 철책을 통과할 때마다 경계병들은 매서운 눈빛으로 검문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도착한 교회는 혜산진승리교회. 연대 군종병이 먼저 나가 문을 열고 사진을 찍다 들어간 내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냈다.

▲ 군종병들이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경계 근무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초코파이를 운반하고 있다.
그리고 이내 꺼내온 사진첩과 방명록. 아주 오래전부터 이 곳에서 생활하던 장병들은 믿음의 힘으로 힘든 군 생활을 견뎌왔다는 사실이 사진을 통해 전해졌다. 대형교회 목사, 한국 교회의 연합단체장들 또한 방명록을 남겨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소초의 경계근무자들에게 나눠줄 초코파이를 챙겨 다시 차에 올랐다.

# 전방에서의 사역
“요즘 군 생활은 좋아졌죠. 예전 선임들이 남겼던 말을 들어보면 저는 참 편하구나 느껴요. 하지만 또 마냥 편하지는 않죠. 예전 그 선임들이 섰던 근무지에 저희가 똑같이 서서 근무하고 있으니까요.”

연대 군종병 김현승 상병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냈다. 김 상병은 사실 DMZ내에 위치한 G.P(Guard Post)에서 근무하던 경계병이었다. 하지만 군종병을 이등병으로 뽑아올 경우 전방 근무자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방근무를 경험해본 장병을 군종병으로 뽑고 있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다보니 위험한 일 또한 겪었다. 얼마 전 김 상병은 연대군종 정경진 목사와 큰 일을 당한 것. 근무지에서 고생하는 장병 위로를 위해 불철주야 달리던 정 목사의 차량이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전복된 것이다. 더욱 위험했던 것은 자동차가 빠진 곳이 지뢰지대라는 사실이었다. 뒤집힌 차에 갑자기 불이 붙었고, 정 목사와 김 상병은 서둘러 빠져나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눈에 미끄러져 지뢰지대로 빠진 정경진 목사의 자동차.
차 사고가 난 후 몸을 추스를 만도 한데 정 목사는 바로 다음날부터 다시 장병들을 향한 발걸음을 이어갔다. 이렇게 장병들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는 정 목사의 별명은 ‘전투 목사’.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하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놀라고 염려했지만, 하나님이 보태주신 삶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저에게 그저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 믿음의 지휘관과 백골전선교회
정경진 목사가 지휘관으로 두고 있는 연대장 신희현 대령 또한 매일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감리교 권사다. 신 대령은 ‘1111’이라는 군 선교 비전도 가지고 있다.

그는 ‘1천명의 예배드리는 용사를 주십시오. 1백 명을 전도하겠습니다. 1년에 10회 이상 찬양집회를 열겠습니다. 연대장 첫 월급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군 선교에 나서고 있다. 예배와 전도, 찬양, 봉헌이 어우러지는 선교를 지향하는 것.

최전방 연대의 지휘관으로서 경계근무에 집중하는 것은 기본이다.

신 대령은 “신앙으로 훈련이 되면 서로 사랑하게 되고, 화목한 생활 속에서 전우애가 싹트게 된다”며 “신앙으로 인해 부대전투력 상승은 물론 군 사고 예방도 막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부임후 참석했던 첫 예배에 321명이 참석했고, 두 번째 예배에 482명이 참석했다”며 “크리스천이지만 교회에 나오지 않던 ‘잠자는 성도’가 다시 예배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다”며 기뻐했다. 신 대령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교회의 젊은 성도들을 양육해야 한국 교회가 살아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북한과 가장 가깝게 위치한 '백골전선교회'
발걸음을 옮겨 정 목사가 꼭 보여주고 싶다는 곳으로 향했다. ‘백골전선교회’. 이 교회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교회이자, G.O.P(General Out Post)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로, 올해 세워진지 33년이 되는 오래된 교회다.

허름한 교회의 문을 여는 군종병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이윽고 포기한 듯 뒷문으로 향한다.

“앞문이 고장이 나서 잘 안 열려요. 뒷문도 잠겨있긴 한데, 제가 몸집이 작아서 틈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어드릴 수 있어요. 뒷문으로 오세요.”

뒤따라 들어간 교회는 실내라고 하기엔 바깥 기온과 별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추위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곳. 온풍기를 몇 분간 틀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래되긴 했지만 튼튼한 건물이에요. 보온이 안 되니까 안타깝죠. 매주 주일이면 이 상황에서 예배가 드려져요. 추위를 뚫고 온 교회에서 장병들은 다시 추위와 싸우며 말씀을 들어야 하죠. 좀 따뜻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돕고 싶은데,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어요. 아무리 난방을 해도 교회에 온기가 돌지 않아요. 그래도 감사하죠. 이런 상황인데도 예배를 드리겠다고 찾아오는 병사들이 있으니까요.”
종전 60년과 함께 33주년이 된 전선교회. 큰 의미가 담긴 교회가 이렇게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 최전방에서 바라는 새해
마지막 목적지 경계초소로 향했다. 병사들이 24시간 경계근무에 나서고 있는 G.O.P초소. 바람을 막아줄 산등성이 하나 없이 언덕에 지어진 초소들은 겨울의 찬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게다가 순찰로는 90도에 가까운 경사에 근무투입을 하는 병사들의 무릎이 남아날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맑은 날씨 덕에 북한G.P는 물론 마을까지 어렴풋이 보인다. 높은 하늘에는 동물원에서나 볼법한 백로며 독수리들이 사람은 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자유. 그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현재 남북관계를 말해주는 듯 흐르던 시냇물은 차디찬 바람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초소에 다가가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장병들. 취재 나왔다는 한 마디에 이내 표정이 밝아진다. 신문에 나오느냐는 질문을 하며 설레는 모습은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 판문점에서 한국전쟁 휴전 협정을 한 뒤 흐른 시간.
새해를 앞두고 전방 경계근무자들은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을까.

백골부대 김동규 일병은 “최전방이다 보니 북한도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또 그들이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경계를 취하고 있다”며 “새해가 돼도 북한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근무에 나서겠다”고 전했다.

조금 전 봤던 순진한 모습은 어딜 가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답하는 김 일병의 목소리에서 필사즉생(必死則生) 골육지정(骨肉之情)이라는 백골부대의 구호가 절로 떠올랐다.

양진호 일병은 “군에 입대하고 처음 맞는 새해이자, 겨울”이라며 “생각보다 더 추워서 힘이들긴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내 가족과 친구들이 편히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3년은 종전 60주년이 되는 해.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이 체결된 후 60년이 흘렀다. 전쟁이 시작되고 잠시 떨어져 있을 꺼라는 생각으로 내려온 남쪽 나라. 하지만 북으로 향하는 문이 닫히고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이산가족들이 만남을 신청했지만 상봉의 기쁨을 맛본 것은 극소수. 그나마 친지를 만난 사람들도 다시 연락할 방법조차 보장되지 않는 대한민국은 휴전국가다.

60년. 많은 사람들이 뭔가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대한민국의 통일까지 예비하셔서, 형제가 총칼을 겨누는 비극을 딛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한민족이 끌어안을 수 있는 2013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강원 철원=김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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