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성경 속 역사의 현장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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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성경 속 역사의 현장을 선물합니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2.11.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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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700’저자 이원희 목사가 걸어온 18년간의 성지순례여정

▲ 이원희 목사는 자신의 인생이 담긴 678곳의 성지 순례 여정을 글과 5만여 장에 달하는 사진에 담았다.

각자 걷는 광야 같은 인생길. 내게 주어진 그 길을 걸으며 언젠가 말씀이 시작된 그 땅을 밟아보리라 소망해왔다. 청년 시절 품었던 그 꿈을 처음 실행에 옮긴 것은 18년 전.

성경에 등장한 성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꿈, 지금껏 쉬지 않고 달려온 그 길을 병마와 돈, 시간의 제한도 가로막진 못했다. 예순 일곱차례 이어진 성지순례, 성경 역사 속 도시와 장소 700여 곳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긴 이원희 목사. ‘바이블 700’이 나오기까지 이어온 그의 꿈과 비전을 따라 함께 가 보았다.

# 광야에서 시작된 여정
가을의 끝자락, 차가운 바람기운을 떨쳐내며 들어선 곳은 경기도 구리시 이원희 목사의 자택. 마른 체형에 강하고 활동적인 인상을 풍기는 그였지만 주어진 사명을 홀로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각지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건강과 시간, 돈이라는 삼박자가 갖춰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 어느 것도 없었죠. 하지만 이렇게 이루어주심은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습니다.”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환경에서도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꼈다는 그는 인생을 광야에 비유했다. “광야는 단순히 물과 식물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죠. 섭씨 50도가 넘어가는 더위에는 필름마저 녹아버립니다. 그 곳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주신 주님. 제가 처음 은혜를 받은 곳은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첫 출발은 1994년 9월에 이루어졌다.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을 향한 방문길. 광야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사람이 노력하고 아무리 땀을 흘려도 살 수 없는 곳임을 느꼈다. 성경에 나온 광야를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현장을 통해 말씀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은 그곳에서 사명으로 굳어졌다. “성경에 나온 역사적 현장이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시간과 지역, 문화의 차이를 좁혀주기 때문이죠. 현장에서의 이해는 성경의 정확한 해석과 적용을 도와줬습니다.”

이 목사는 어린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만 대접해도 그 상을 잊지 않겠다는 (마10:40-42) 말씀을 이해할 때 물이 풍부한 우리나라와 물 한잔이 생명과 직결되는 그 곳 환경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시냇물과 같은 얍복강을 이해할 때 우리나라의 한강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 2천 년 이상의 시간 차이와 문화-지리적 차이를 줄이는 사명은 기록과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 성지를 선물하고 싶었던 꿈
성경에 나오는 성지에서의 기록과 방문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밧모섬에서 사모섬으로 배를 타고 갈 때 풍랑을 만난 일이나 멜리데 섬을 찾을 때 배멀미로 진통제 2알을 먹으며 견뎠던 일, 시리아 국경지역에서 촬영을 하다 잡혔던 일 등이 한 예다.

아모스 선지자의 고향인 드고아에서는 아이들이 외국인을 보면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2001년 이라크 지역에 위치한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방문한 때 만났던 무더위였다. 섭씨 57도에 이르는 무더위는 기록을 위해 갖고 간 필름마저 모두 변색시켜 버렸다.

이곳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위험도 함께 도사리고 있었다. 순례지를 향해 같이 출발한 스페인 순례단이 고속도로를 경유하며 중간에 납치돼 가져간 모든 물품을 빼앗기는 일이 발생했던 것. 다행히 이 목사가 함께한 순례단은 국도를 이용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위험하지만 꼭 가보고 싶은 곳도 아직 많다. 한국인 중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위험한 지역, 가데스바네아나 이란의 동방박사 교회 등이 그 곳이다.

“한 곳이라도 더 소개해 주고 싶으면 위험한 곳도 기록에 담아야죠. 목숨을 걸고 들어간 정도는 아니었지만 벧호른 지역 같은 곳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확인서를 써야 했습니다. 헤브론 지역의 가자기구 같은 경우엔 지금은 아예 못 들어가고 레바논 헤즈볼라 지역은 위험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2002년에는 여정 중 사막에서 카페트를 깔고 박스를 이용해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이런 여정 가운데 가장 기쁜 순간은 성경에 나온 장소를 정말 어렵게 찾아 냈을 때의 일이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현장을 찾았을 때 주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그 중 한 곳이 법궤를 싣고갔던 소를 번제로 드렸던 벧세메스다. 사명을 다한 소가 번제로 드려졌던 곳. 그는 벧세메스에서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한 곳은 가이사랴 빌립보, 사도 베드로가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을 한 장소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이루어진 장소는 방문해보니 이방 신전 터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 때 이곳에서 그런 고백을 했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했다는 것이죠. 인근에는 황제의 신전 터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목숨을 걸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성지 중에는 간혹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없는 곳도 있었다. 그럴 때 그는 순간순간 길을 걸으며 기도를 드리거나 호텔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렸다. 팔복교회와 같이 찬송하는 것을 환영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유적지에서는 공식적으로 어떤 종교인도 찬양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험난한 여정길에서 힘든 점으로는 음식문화에 대한 적응도 빠지지 않았다. 중동전통 향신료가 유독 강했던 음식은 오랜 여정을 이어온 그에게 때때로 먹기 힘든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이 목사는 “지금은 외국인 방문이 늘어 음식에 전통향의 색채를 줄였지만 아직도 시장에서 판매하는 감람나무 열매의 맛은 웬만해서는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일에 대한 기억은 좋게 남아 있었다. 이스라엘의 자파 오렌지와 이집트의 망고, 터키의 체리는 싸고 맛있어 긴 여정길에 피로를 풀어줬다.
# 이어지는 새로운 꿈

강하고 활기찬 인상과는 달리 이원희 목사는 당뇨병과 저혈압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모든 여정이 그 가운데 이루어져 더 은혜로웠다고 고백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의 일.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번지며 학창시절 3번의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 고통스럽기로 유명한 축농증 수술도 이후 2번이나 했다.

“거의 모든 목사님들이 그렇지만 사역을 할 때는 힘이 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위 목사님들은 저를 광야체질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의 현장을 전하면 힘이 나기 때문이죠.”

성지를 향해 떠나온 여정 한 가운데는 두고 온 것도 많았다. 서울 성신여고 교목이었던 이 목사는 정년을 5년 남기고 성경대백사전 사역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 자리를 내려놨다. 5년이 지나면 평생 연금이 나오지만 그는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 5년을 두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저를 위해 사용할 지, 주신 사명을 위해 사용할 지 말이죠. 그런데 교회를 다닌 지 얼마 안 되서 목회자가 되겠다고 고백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경험에 비춰볼 때 그 시간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두고 나왔습니다.”

그래도 이 목사는 성지 현장을 말씀과 함께 전하는 사역의 꿈이 이제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에 대해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험한 길이지만 두 아들이 같은 소명의 길을 걷겠다는 마음을 주심에 감사했다. 이원희 목사는 지금껏 걸어온 신앙의 길이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길을 망설임 없이 걸을 것이라 전했다.

“나에게 신앙이란 100%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100%가 무엇인지는 각자의 인생에서 결정해야할 몫이지만 제겐 드리는 것도, 믿는 것도, 제 인생 전부를 드린 것이 신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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