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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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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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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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아름다운 영성이 숨 쉬다 (12) - 안용준 목사(목원대 겸임교수)

렘브란트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

엄청난 수난이 시작되었다.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힌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포박하여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고 간 것이다. 예수님을 멀찌감치 뒤따르던 베드로는 숨을 죽이며 구경꾼들의 틈에 있었다.

베드로는 그림 중앙에서 보이는 대로 흰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집에서 일하는 옆에 있던 하녀가 일을 내고 만다. 그녀는 촛불로 베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빤히 노려보면서 “이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누가복음 22:56)라고 소리친다. 하녀의 말을 듣는 순간 여러 시선은 일제히 베드로를 향한다. 말없이 숨어 있기를 바랐던 베드로는 하녀의 갑작스런 외침에 적지 아니 당황한다.

이 순간 베드로의 심장은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크게 요동쳤을 것이다. 이 여인은 언젠가 성전에서 예수님을 보았을 때 시중드는 그의 모습을 기억해냈을 것이다. 사실 그곳에는 베드로를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한 사람이 또 있었기에 시인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여자여! 나는 그를 모르오”(누가복음 22:57).

그림 아래에는 베드로가 겁에 질려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묘사되어 있다. 번쩍거리는 갑옷 입은 험한 표정의 군인들과 그들이 눌러쓴 투구, 음산한 분위기는 베드로를 압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베드로 앞에 놓여 있는 긴 칼은 이 비참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베드로(1660)
그는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한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젊잖게 있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이 밝혀지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 결과 예수님은 가장 아끼는 제자로부터 버림받아야 했다.

예수님은 이제 사면초가의 외로움에 처해 계시게 되었다. 참담한 심문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가장 아끼는 제자에게까지 부인을 당했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하게 차오르는 처연한 감정을 누를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놀라운 장면이 숨겨져 있다. 오른쪽 위에 포박을 당한 채 뒤를 돌아보는 예수님이 아주 흐릿하게 보인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보시니”(누가복음 22:61) 그분은 베드로가 하는 행위를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질책의 눈빛이 아니라 끝없는 사랑의 눈빛으로 베드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그를 포기하고 아버지 앞에서도 모른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분은 베드로를 포기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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