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정의로운 경제공동체 지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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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정의로운 경제공동체 지향해야”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8.2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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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한국교회 (10) - 사회갈등과 기독교 (1) 경제 정의

한국 사회는 1960~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사회갈등이 표출됐다. 6.25 이후 불과 50년 만에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국가로 성장했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급속한 성장이었다.

이 같은 압축적인 경제 성장, 역동적인 민주화 과정에서 한국 교회는 사회적 안정에 기여했다. 특히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와 권위주의에 대항했던 기독교의 역할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가 형성되기조차 힘들었던 강압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교회는 노동, 인권, 환경, 여성 등 사회 각 분야의 이슈를 담아냈다. 또한 교회는 급진적인 경제성장이 낳은 사회적 약자, 소외 계층을 돌보는 일에도 매진해 왔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 사회는 다양한 사회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본지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기독교의 역할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순서로 경제 정의에 대한 기독교의 역할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최근 빈부의 격차, 양극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세입자와 건물주,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목숨을 담보로 한 다툼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지난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는 3년여가 흘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갈등이 점차 고착화, 장기화 되면서 국가적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회는 이런 때에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

▲ 기독교는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할때 비로소 빛을 발했다.
# 쌍용차 ‘의자놀이’
22명. 지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자살한 노동자와 가족들의 숫자다.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사회는 둔감하다. 3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77일간의 옥쇄파업을 하며 저항했지만 결국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쌍용차 사태와 관련된 노동자들의 죽음행렬은 그렇게 시작됐다. 조희연 교수(성공회대)는 “한국 사회가 많은 서민들과 노동자들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게 만드는 ‘벼랑끝 사회’로 존재한다”면서 “이런 현실은 그 가혹함으로 대단히 높은 ‘생계형 자살’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쌍용차 사태를 다룬 책 ‘의자놀이’를 출간한 공지영 작가는 “쌍용차 사태는 또 다른 도가니”라며 “더는 이런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마음이 이 글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쌍용차 사태의 원인이 됐던 정리해고를 ‘의자놀이’에 비유했다.

“사람 수보다 적은 의자를 놓고 빙글빙글 돌다 누군가 외치는 구령 소리에 의자를 먼저 차지해야 하는 의자놀이. 정리해고는 노동자들끼리 생존을 걸고 싸우는 잔혹한 의자놀이와 같다. 동료를 밀치고 엉덩이를 먼저 의자에 붙이지 못하면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니까.”

공 작가는 “쌍용자동차 관리자들은 이 거대한 노동자 군단에게 사람 수의 반만 되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마치 그런 놀이를 시키는 것 같았다. 기준도 없고 이유도 납득할 수 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라고 말했다.

22번째 희생자가 나온 후 기독교, 천주교를 비롯한 5대 종단 지도자들은 지난 5월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쌍용차 사태를 사회 화합과 통합의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종교가 나서고자 한다”며 “국민들은 무고한 생명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는 생명평화세상을 여는 길에 동행이 돼 달라”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지난 3월 사순절 기간 쌍용자동차 공장 앞 희망텐트에서 금식 기도회를 드렸다. 이날 첫 번째 금식기도 순서자로 나선 이해학 목사(성남주민교회)는 “사람보다 자본이 우선시되는 정책, 권력이 그것을 보호하는 이 거대한 세계적 체계가 바로 오늘날 쌍용차 노동자들이 맞게 된 현실”이라며 “노동자들의 아픔과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금식 기도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명성교회(김삼환 목사)는 지난해 12월 25일 새성전 입당예배에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 관련 사망자 19명의 가족들을 초청해 한 가족 당 1백만 원 씩 총 1천9백만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  한국교회봉사단도 쌍용자동차 본사 앞에서 복직 투쟁을 벌이며 농성 중인 해고자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7백만 원 상당의 방한복 세트를 전달했다.

# 용산참사 ‘두개의 문’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재숙 용산참사유족 대표는 760명이 제출한 시민고발장을 들고 용산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철거민은 8명. 용산참사와 관련해 특수공무방해치사혐의로 기소돼 4~5년 형을 받고 3년째 수감 중이다.

▲ 목요기도회는 용산참사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최근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은 최근 6만8천명의 관객을 모았다. 영화 상영 이후 용산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진압 과정에서 발생했던 국가폭력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숭실대 구미정 교수는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숨지던 바로 그 시각에, 마치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혹은 그런 일은 다만 ‘그들’의 일일 뿐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편리하게 살인을 외면하고 방조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두개의 문’은 일종의 고해성사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며 “영화는 끊임없이 그 때 너는 어디에 있었냐고, 이 끔찍한 참사는 누구, 무엇 때문이냐고 질문한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4대 종단은 지난 7일 용산참사로 구속된 철거민들에 대한 광복절 특별사면을 청원했다. 4대 종단은 “3년 반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용산 참사의 아픔은 계속되고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며 “종교인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용산참사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철거당하는 세입자에 대한 불충분한 사전 대비”라며 “지금까지 허허벌판으로 남아있는 참사 현장의 현재 모습을 봐도 참사의 책임을 온전히 철거민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가혹하다”고 강조했다.

기독교계의 사면 요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장총회는 참사 3주기에 맞춰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구속 철거민의 석방을 촉구했다. 기장은 “구속된 철거민들도 잘못된 도시개발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참사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생존자들”이라고 지적했다. 교회협도 성명을 통해 “당시 생존권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던 피고인들을 범법자로 취급해 6명 전원을 구속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라는 성서의 말씀과 위배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무덤에, 남은 사람들은 감옥에 혹은 거리에 있다.

# 사회갈등과 교회의 역할
오늘날의 경제적 불평등은 이른바 한국형 성장모델에서 나온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즉 단시일 내에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요소라는 것이다. 김승욱 교수(중앙대 경제학)는 “국내의 많은 학자들은 고도성장기 한국적 경제성장 모델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국가 주도적 불균형 발전전략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한국형 경제성장 불균형 발전전략은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서 가능했다. 임성빈 교수(장신대)는 “한국의 경제성장은 기업의 적극적인 경영과 정부의 효율적인 경제정책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근로자들의 철저한 희생이 있었다. 근로자들은 엄청난 근로시간과 저임금에 시달렸다”고 지적했다.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막대한 이익은 기업과 소수 사용자에게 돌아갔다. 국가 주도의 불균형 발전전략으로 인해 근로자들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기독교의 경제 정의에 대한 역할이 필요했다. 1978년 9월 교회협 신학위원회는 ‘산업선교신학정립협의회’를 열고 산업선교신학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에서 교회협은 근로자의 편에 서서 근로자의 고충을 대변하고 성서적 차원에서 근로자들의 기본권 회복을 위한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임 교수는 “교회는 근로자들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교회의 영향력은 축소됐다. 교회협 정의평화국장 이훈삼 목사는 “80~90년대 초반에는 기독교가 인권, 생명, 여성, 환경 분야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을 대신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시민단체가 생겨나면서 그 역할이 분산되고 축소됐다”고 말했다.

사회갈등과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이 목사는 “종교는 양측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화해와 중재를 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힘의 균형이 어긋나 있을 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약자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교회가 사용자보다 노동자, 건물주보다 철거민이나 세입자를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가 사회문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화해자,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선교는 근로자들의 임금과 복지,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개선하려는 노조운동과 맞닿아 있다. 이 같은 방식의 선교는 신학적으로 ‘기독교의 사회구원’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된다. 1980년대 진보적 기독교계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 등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 역할은 지금도 요구받고 있다.

임성빈 교수는 “교회는 정의로운 경제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 힘없는 자, 희생된 자를 보듬고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라며 “이렇게 할 때 교회는 건전한 사회비판기능뿐 아니라 사회통합적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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