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효성칼럼] 자유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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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칼럼] 자유케 하라!
  • 방효성
  • 승인 2012.08.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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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효성 성지를 찾아서 (7)

1907년 낯선 이국땅에 세 명의 사나이들이 도착했다. 지금은 하루에 갈 수 있는 곳을 부산항을 거쳐 블라디 보스톡항에서 부터 시베리아 대륙을 기차로 횡단하여 3개월의 긴 여행을 끝에 이들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이들이 고종황제의 특사로 파견된 이위종 이상설 이준이다.

의정부 참찬 이상설, 부사로는 전 평리원 검사인 이준선생과 전 주아 공사관 참서관인 이위종이다.

을사조약으로 인한 일본제국의 한국의 침탈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하여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온 것이다.

2번째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는 1907년 6월 15일부터 1개월간 개최되었으며 46개국에 약 247명의 대표가 모였다.6월25일 도착한 이들은 고종의 신임장을 들고 회의장에 들어가 우리나라의 현실을 호소하려 했다.

그렇지만 일본의 집요한 방해와 영국 등 주위 열강들의 반대에 부딪혀 회의장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회의장 밖에서 을사조약의 무효를 선언하며 각국 언론 등에 호소하여 호응을 얻었지만 각국의 대표들은 한국을 나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냉담한 현실 속에 청원을 외면당하자 이준열사는 이를 참지 못해 연일 분격하여 애통을 이기지 못해 7월14일 순국을 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준 열사 순국100주년을 맞이하며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던 2007년 여름. 7월 14일에 맞추어 헤이그에 위치한 뉴커락 교회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퍼포먼스 작가로 초대 받아 공연을 하였다.

이준열사의 순국을 기념하며 교회 앞 뜰에서 퍼포먼스를 펼쳤다.

커다란 화분을 운반하여 교회뜰 앞에 놓았다.

행위자는  망치로 화분을 깨기 시작한다. 하얀 뿌리들이 들어나며 화분은 조각 조각 떨어져 나간다.

관상목의 뿌리가 들어나며 화분이 제거 되었다.

행위자는 땅을 파고 그곳에 나무를 심었다. 화분에 갇혀 있던 꽃나무를 대지의 품으로 돌려 보낸 것이다.

가족과 작별하고 고종의 특사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분강개 하며 애통하다가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이국에 몸을 누인 이준열사를 생각하며 이 꽃나무처럼 화분이 깨어져 다시 고국에 돌아갈 수 없이 이국의 땅에 뿌리내린 꽃나무의 모습이 이준열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편 꽃나무를 옭아매던 화분을 떠나 영원한 안식의 고향인 대지로 깊이 깊이 뿌리 내리는  꽃나무가 되는 자유를 얻은 기쁨 또한 함께 하였다.

이날의 퍼포먼스 제목은 ‘자유케 하라!’ 였다.

자유를 빼앗긴 한국의 현실을 알리기 위하여 감행했던 100년전 선각자들의 영혼과 몸을 통해 우리는 자유함을 느끼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간 꽃나무처럼.

뜻깊은 날에 예술을 통하여 순국기념을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 추억을 잊을 수 없다.

현재 이준열사가 묵었던 호텔은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헤이그 시내 한복판에 있으며 오고가는 많은 한국여행자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어 있다. 다음주면 이준열사의 순국 기념일이 다가온다. 당시 초대받지 못한 설움을 겪던 나라에서 세계 20-50에 8번째로 가입한 경제대국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본다.      

이준열사는 당시 상동감리교회 교인으로 특사로 떠나기전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떠났었다. 지금 이준 열사 기념교회가 순국1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설립이 되었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나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준 열사가 남긴 마지막 말로  그 여운을 느껴보고자 한다.

“사람이 산다함은 무엇을 말함이며 죽는다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고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으니 살아도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않고 잘 죽으면 오히려 영생한다. 살고 죽는 것이 다 나에게 있나니 모름지기 죽고 삶을 힘써 알지어라.” -선생의 유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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