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르포]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 우리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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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르포]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 우리도 따르겠습니다”
  • 이석훈 기자
  • 승인 2012.03.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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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출애굽 여정과 예수님의 발자취를 밟다 (하)

갈멜산·가이사랴·나사렛·베들레헴 등 성경 속 성지 돌아보며 감격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 새로운 느낌 … 선교현장에서의 각오 재다짐

여리고에서 아침을 맞은 일행은 첫 방문지로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시험산을 찾았다. 정상까지 오르지는 않았지만 아래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예수님 공생애의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엘리사의 샘을 찾아 풍성한 물을 만났으며, 예수님 승천 당시 발자국이 남아있다는 승천교회와 삭개오뽕나무로 알려진 돌무화과나무를 보았다.

# 가이사랴에서 나사렛으로

▲ 가이사랴에서 일행들과의 단체사진. 로마 헤롯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항구인 가이사랴는 당시 최대 3대 항구 중 하나로 바울이 2년여 감옥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다시 오랜 시간 이동해 가이사랴로 발길을 옮겼다. 가이사랴는 로마의 헤롯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당시 최대 3대 항구 중 하나로 지중해를 접하며 텔아비브와 하이파 중간에 있다. ‘가이사랴’는 로마의 황제 가이사(시이저)에게 바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엔 원형극장, 원형경기장 등이 로마의 건축물과 흡사하게 보존돼 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선고했던 빌라도가 10여 년간 이곳에서 살았고 바울이 2년여 감옥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점심식사 후 엘리야의 불의 제단으로 불리는 갈멜산을 찾았다. 갈멜산은 해발 482미터인 ‘무흐라카’라고 하는 곳에서 엘리야의 제안으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불의 대결을 벌인 곳이다. 갈멜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이스라엘 평야는 그야말로 비옥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것이었다.

다음 방문지이자 요한계시록 최후의 격전지인 므깃도(아마겟돈) 역시 이스르엘 평야에서 40-60m 정도 솟아있는 곳으로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장소로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다(계 16:16).

일행은 드디어 예수님이 자랐던 나사렛으로 이동했다. 현재 그곳은 대부분 아랍인들이 살고 있으며, 이스라엘 내에 가장 큰 아랍인마을이었다. 나사렛에 있는 마리아수태고지 교회에서 시장 언덕 쪽으로 150m 위에 회당교회가 있었는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 회당이었으며 초대교회 시대에 교회로 쓰였었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사야 61장 1-2절의 말씀을 찾으시고 가르치셨던 장소라고 한다. 그 외에도 수태고지기념교회와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킨 가나혼인잔치교회, 요셉기념교회, 가브리엘교회 등이 있었지만 모두가 가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연일 바쁘게 움직인 일행은 귀국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갈릴리 호수가 보이는 숙소에서 2박을 하는 여유를 얻었다. 저녁식사 후 갈릴리 해변에서 야경을 감상하며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침 일정은 여지없이 7시 반에 시작됐다. 갈릴리 호수에서 출발하여 이스라엘 최북단으로 이동했다. 우측으로 시리아 땅이 보이는 가운데 골란고원을 지나 가까이 헐몬산을 바라보면서 가이사랴 빌립보에 이르렀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의 높은 산으로 해발 2,814미터나 된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하지만 이곳은 물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에서 흐르는 물이 강을 이루고 이스라엘 온 땅을 적시는 것이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

가이사랴와 혼동하는 가이사랴 빌립보는 헤롯 대왕이 BC 20년 로마의 아우구스도 황제로부터 선물로 받은 도시로서 각종 우상을 섬기는 판이란 신전이 있었다. 헐몬산의 이슬을 받아 풍부해진 자연이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숭배하게 만든 것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 예수님은 여기서 받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이제 이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의 변경을 넘어서서 땅 끝까지 교회가 세워져 복음의 등대 역할을 하게 될 것을 기대하신 것이다.

이곳에서 일행은 우리들도 평안할 때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고 전하기를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있었다. 가이사랴 빌립보를 오르내리는 산중턱에는 아몬드나무가 많이 보였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바로 아몬드나무라는 사실과 돌아온 탕자에 나오는 쥐엄나무열매는 벌레를 퇴치하며 코알라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감격의 갈릴리 선상예배
조금 이동하여 텔단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의 에덴동산’이라고 써 있는 팻말답게 1km에 이르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었지만, 그러나 그곳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이 이방여인들을 취하여 궁녀와 후궁으로 삼고, 각종 우상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남북으로 나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세가 절기나 큰 명절이 되면 모든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텔단을 쌓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했다고 한다. 권력이란 힘 앞에서 죄악을 범했고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 여로보암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이런 모습이 아닌가, 반성했다.

예수님께서 고라신을 저주하신 곳으로 내려와 갈릴리호수 인근 식당에서 오병이어물고기(일명 베드로물고기)로 점심식사를 맛있게 즐긴 뒤 본격적인 예수님의 사역지로 이동했다. 예수님의 제2의 고향으로 불리는 가버나움은 당시 행정중심지로서 이곳에서 이 지역 출신인 베드로와 안드레, 마태를 제자로 삼고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버나움에 오셔서 이곳을 중심으로 갈릴리 일대에서 약 3년간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러나 가버나움은 회개하지 않았고 멸망을 받았으며 약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로 남아있다.

▲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중 말씀하신 팔복을 기념하는 ‘팔복교회’의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버나움에는 베드로의 집터와 예수님 당시의 기초를 가진 회당, 주거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연자맷돌과 올리브기름 짜는 틀을 볼 수 있었다. 갈릴리호수가에 위치한 베드로수위권교회를 둘러본데 이어 오병이어 기적을 기념하는 기념교회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팔복을 의미하는 팔복교회를 돌아보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로 오셔서 고기 잡는 어부로 되돌아 와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고 당부하셨던 곳으로 작은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교회 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잡은 고기를 구워 잡수시면서 대화를 나누시던 바위가 보존돼 있어 주님과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도처가 되고 있다.

일행은 드디어 갈릴리호수로 이동해 배를 타고 건너편 숙소까지 이동했다. 갈릴리선상예배가 드려지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갈릴리호수를 약 1시간여 이동하는 동안 성만찬을 나누면서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고 기념했으며 주님의 뒤를 따라 죽기까지 복음을 전파할 것을 다짐했다.

# 고난의 길 ‘비아돌로로사’
두 밤을 지낸 갈릴리를 뒤로하고 이른 아침 종교와 문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처음 도착해 두 밤을 지내면서 선교대회를 한 곳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느낌이었다. 예루살렘에 들어와 왼쪽으로 기드론 골짜기를 보면서 드디어 예루살렘 성내 옛길에 들어섰다. 좁고 복잡한 길을 걸어가자 잠시 후 십자가의 길(비아돌로로사) 간판이 작게 보였다. 이 길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했던 법정에서부터 골고다에 이르는 약 8백 미터가 되는 길을 가리키는 곳으로, 라틴어인 ‘비아’는 ‘길’을 뜻하고, ‘돌로로사’는 ‘슬픔’, ‘고난’을 뜻한다.

십자가의 길에는 가톨릭 교황청에서 정한 14처소가 새겨져 있다. 사형선고 받은 시점을 시작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고, 마리아를 만나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는 등 처소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처소 번호를 따라 올라가자 사람들이 줄에 줄을 선 모습이다. 골고다 언덕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느끼려는 심정에서인 것 같다. 골고다 정상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모자이크한 벽화와 함께 예수님이 누이신 돌과 묻혔던 돌무덤이 성묘교회당으로 잘 보관돼 있었다. 그러나 각종 종파간의 싸움으로 일체 손을 대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하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반대편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니 그 유명한 ‘통곡의 벽’이 정면에 보였다. 남녀의 구분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내부 도서관에는 아직도 여자의 출입이 금지돼 있는 모습이 생소했다. 헤롯에 의해서 세워진 성벽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으로 이는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와서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여 통곡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로마 시대에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압비월 9일 하루만 성역에서 기도하는 것을 허락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통곡의 벽을 뒤로하고 예루살렘 시내 번화가를 돌아보고는 그곳에서 가이드를 한 조형호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원을 방문해 도시락을 먹은 뒤 다시 감람산지역으로 이동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는 예수승천당과 주기도문교회, 눈물교회, 겟세마네교회가 있어 성지인 예루살렘을 향해 예배하게 만들어 놓았다. 예수께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눈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보시고 그것의 멸망을 예측하시며 우셨던 곳에 ‘눈물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세워졌다.

▲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베들레헴교회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전해지는 구유가 보존돼 많은 순례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일정을 하루 남기고 오후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으로 이동했다. 베들레헴 역시 팔레스타인 지역이라서 작은 관문을 통과해야 했지만 관광객들은 큰 제약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베들레헴 구주탄생교회는 평소엔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비 덕분에 몇 십분 만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구유와 은별자리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일행들은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 후 폐회예배를 드렸다. 마지막 날 아침에는 마지막 순례지인 시온산 지역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마가의 다락방과 베드로통곡교회가 있었다.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고 제자들이 모여 기도했을 때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았던, 기독교의 첫 번째 교회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처음 교회였던 이곳도 지금은 가톨릭 성당으로 변하고 말았다. 다락방 지하에는 다윗왕의 가묘가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유대인들에게는 통곡의 벽에 이어 거룩한 장소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베드로통곡교회를 방문했다. 지하에 예수님이 투옥됐던 곳으로 추정하는 가야바 감옥이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친 선교대회 일행은 힘든 출국과정을 거쳤지만 제2의 예루살렘인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기쁜 마음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준 갈릴리여행사의 노하우에 감사하며 75인의 행보를 일일이 챙기시고 모든 일정에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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