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르포] 광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랑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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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르포] 광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랑을 느끼다
  • 이석훈 기자
  • 승인 2012.03.14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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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출애굽 여정과 예수님의 발자취를 밟다 (상)

찬란했던 애굽의 문화는 남고 경제는 바닥...기독교인들 열심히 생활
마라의 샘 통해 불순종한 이스라엘백성들 돌아보고 기도로 신앙 다짐


예장 백석총회 세계선교위원회와 세계선교사협의회가 2년에 한 번 치루고 있는 세계선교대회가 금년에 성지 이스라엘에서 열렸다. 특히 한국 선교 100주년을 기념한 이번 선교대회는 이집트와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에 이르는 성지순례로 마무리함으로써 참석자들에게 큰 은혜와 도전을 안겨주었다. 대부분 처음 순례길에 나선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성경 속에서만 만나던 성지를 직접 목격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다.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함 속에서 짧고도 긴 시간을 함께했다. 세계 각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70여 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9박 10일 동안 이집트와 요르단, 이스라엘에 이르는 구약의 출애굽 여정과 예수님의 발자취를 동행했다. <편집자 주>

예루살렘에서 이틀간의 선교대회를 마친 일행들은 이른 아침식사 후 국경으로 이동했다.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타바 국경에 이르는 길은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듯 했다. 각 가정마다 놓여있는 물탱크 색깔의 차이로 유대인과 아랍인을 구분하는가 하면 본토인을 주장하는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만들어놓은 장벽 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모습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 소금기둥이 있는 넓은 광야
이스라엘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길은 꼬박 한나절이 걸리는 머나먼 길이었다. 국경까지 4시간에 이르는 길은 해발 750미터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해저 400미터에 이르는 길로 국경이 있는 사해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다고 하니 그 또한 새로운 느낌이었다.
 

▲ 소돔과 고모라 시절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됐다는 전설이 담겨진 ‘롯의 아내’ 바위.

메마른 광야 길을 가는 도중에 일명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할 때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됐다고 하는 일명 ‘롯의 아내’라는 바위와 소금산을 만났다. 넓게 펼쳐진 사해바다를 끼고 이집트와 맞닿은 타바 국경에 도착했다.

이스라엘을 출국하고 이집트에 입국하는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지만, 이집트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도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한국의 성지순례여행자들이 자신의 동료들을 석방해 줄 것을 요구하는 베두인들에게 납치돼 한국정부를 긴장시킨바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집트 관광버스에 올라타자 일명 관광경찰이 탑승해 여행을 함께 했다. 이집트에 들어섰지만 수도 카이로까지 가는 길은 또다시 기나긴 광야 길을 지나야 했다. 자그마치 14시간의 여정 끝에 카이로에 도착한 것이다.

그 옛날 애굽의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던 이집트는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동시에 품고 나일강이라고 하는 천혜의 환경이 있지만 오랜 군정으로 백성들은 그야말로 피폐해있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나마 지난해 아프리카에 불어온 평화의 혁명으로 이집트의 무바라크도 하야하고 조만간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려고 준비 중에 있었다. 일명 자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튀니지에 이어 두 번째 혁명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집트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4.5배에 달하는 넓은 땅을 소유한 이집트이지만 나일 강을 중심한 지역 외의 95%가 거의 쓸모없는 땅이라고 한다. 성경 속에 나오는 고센 땅이 지금의 이집트라고 생각할 수 있다.

# 나일 강의 비옥함과 이집트
끝없이 펼쳐지는 광야를 지나 나일 강 아래로 연결된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고 얼마 안지나 수도인 카이로 시내로 접어들었다. 사람과 차량들로 복잡한 도심만큼이나 보이는 곳곳은 정리가 안 된 어수선한 모습이다.

쓰레기더미가 곳곳에 방치돼 있으며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그 쓰레기 더미에서 뛰노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특히 대부분 모슬림으로 꽉 들어찬 도심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기독교인이기에 더 열심히 일한 결과 ‘인샬라’(모든 것이 알라의 뜻)를 외치면서 아무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보다 기름지게 살아가는가하면,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거리에 방치된 쓰레기를 수거해 모아다가 온가족이 쓰레기를 분리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도심 외곽엔 기독교인들이 모여 사는 일명 ‘쓰레기 마을’이 있다고 한다.

모세가 태어나 40년간 자란 애굽의 수도인 카이로는 나일 강을 끼고 있어 그 어느 곳 보다도 비옥한 땅으로 풍요의 상징이었다. 나일 강 삼각주평야를 비롯해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반면에 이집트 아래쪽에 위치한 수단과 에디오피아 등의 많은 나라에서는 지금도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집트 제2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는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가 개척한 교회가 있고 그곳에서 마차에 매달이어 끌려 다니다 결국에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알렉산드리아는 히브리 성경을 70명의 학자들이 모여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한 장소이며, 그 당시 그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었는데 책이 20만권이상 소장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했던 지역이 지금은 이슬람국가로 변해 기독교인들은 공직에 나설 수 없는 등의 많은 불이익이 주어지고 있다.

그렇게 찬란했던 애굽의 문명과 풍요했던 물질들도 각종 우상신들을 숭배하는 바람에 지금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모세보다도 이전 시대에 웅장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건설한 것만 보아도 당시의 과학문명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고대 이집트 파라오(바로)왕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중압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왕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상상하기조차 힘든 웅장한 무덤을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어도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미이라로 시신을 보존한 것은 지금까지도 남고 있는 것을 볼 때 당시의 과학문명의 발달 정도를 짐작케 한다.

“피라미드의 그 커다란 돌덩이를 어떻게 높은 산지까지 옮겨왔을까?”하는 의구심은 나일 강이 범람할 때(약 4개월)를 이용하여 건너편 나일 강 상류에 있는 화강암을 배에 실어 그대로 옮겨왔다고 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이해가 됐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렇게 애굽에 있어서 나일 강이란 참으로 여러 곳에서 유익하게 활용되고 있다. 지금도 비옥하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1년에 한차례씩 나일강이 범람함으로써 강 속에 있는 물고기와 미행물들이 육지로 쏟아져 자연스런 비료를 만들기에 그 어느 곳보다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뒤로하고 아기예수피난교회와 모세기념교회가 있는 구카이로 지역으로 이동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교통체증이 심하다 싶었더니 시내로 들어오는 대로에서 큰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어순선한 교통상황으로 보면서 가졌던 염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 '마라의 샘'에서 만난 하나님
아기 예수 피난교회는 요셉, 마리아와 아기 예수 가족이 헤롯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하던 중 머물던 성스러운 장소에 건축이 된 것을 기념한 것으로 요셉이 이곳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거대한 중앙홀은 두 줄의 기둥들에 의해서 세 개의 본당으로 나누어져 있고 제자들의 그림들로 장식된 12개의 독특한 기둥이 있는데 가룟유다를 상징하는 기둥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옆에 위치한 모세기념교회는 29개의 모스크와 20개의 교회에 둘러싸여 있다. 모세기념교회라고 부르는 벤 에즈라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 중의 하나이다.

모세가 물에서 건져진 곳이기도 하고 모세기념회당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곳으로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기 전 그는 그곳에서 길을 떠나면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고, 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 표시를 해두었다고 한다. 위대한 랍비인 아브라함 벤 에즈라가 예루살렘에서 이집트로 왔을 때, 모세가 기도를 올렸던 이 성스러운 땅으로 와서 곳으로 이 예배당을 유대인들에게 되돌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해맑은 모습에 얼굴에 윤기가 나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카이로의 크리스챤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온 것으로 기독교인들이 일반인들보다 부유하게 사는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차를 타고 3시간쯤 지나 광야 한 복판에 도착한 곳은 너무도 익숙한 ‘마라의 샘’(출15:22-27)이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을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물 없는 사흘간의 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가 어떤 의미인지를 시험해 보는 기간이었다. 홍해에서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친히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험에 실패하고 말았다. 엘림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불순종한 모습이었다.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흘 길 만에 물을 만났지만 물이 써서 먹을 수 없게 되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을 때 단물로 바꿔주었다고 하는 ‘마라의 샘’에서 일행들이 손에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기억하면서 일행들은 마라의 샘을 둘러싸고 간단하지만 진지하게 예배를 드렸다. 세계선교위원회 위원장인 조용활 목사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 인생길에도 광야와 같은 고난이 있지만 세상고난과 다른 것은 고난 뒤에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하면서 광야 같은 우리의 인생에서도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신들을 돌아보며 회개의 기도와 함께 광야 가운데서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찬양했다.

또다시 버스에 올라 광야 길을 이동하면서 다음날 새벽 시내산을 오르기 위해 700킬로미터에 이르는 느웨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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