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신학자 ‘혼합주의’ 논쟁 불 지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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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신학자 ‘혼합주의’ 논쟁 불 지펴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2.03.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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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제7차 캔버라 총회(1991)

1991년 개최된 제7차 호주 캔버라 총회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주제 강연으로 초청 받은 정현경 당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는 종이를 불태우며 초혼제를 열었다. 정 교수의 초혼제는 WCC의 신학적 자유주의, 종교 혼합주의 논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지금까지 WCC 총회가 열리지 않았던 대륙은 오세아니아뿐이었다. 환경 문제, 원주민 문제, 영성 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호주의 캔버라가 선정되었다. 이 총회에는 317개 회원 교회로부터 889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1980년대 말부터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구권 교회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1990년에 나미비아가 남아공에서 독립을 이루어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 통치가 끝났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념, 인종을 둘러싼 전쟁은 계속됐다. 구 소련과 발칸반도 안에서 인종 학살이 일어났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페루 등지에서는 내전이 벌어졌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초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았다. 페르시아에서는 걸프 전쟁이 일어났다.

광범위한 환경오염,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의 사막화 확대는 인류의 생존권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강대국들의 핵실험장이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회적인 대안 모델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었다.

이 기간 WCC는 중국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캔버라 총회는 중국 교회의 회원권을 회복했다. 또한 WCC는 한국 교회의 통일 노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WCC는 1984년에 도잔소 회의를 개최했고, 이듬해 제네바 글리온에서 남북기독자 성찬 교류를 추진했다. 북한교회 대표자들은 캔버라 총회에 초대를 받았다. 1988년에 WCC는 ‘여성과 연대하는 에큐메니칼 10년 운동’을 지원했다. 1989년에 산 안토니오에서 개최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 대회에서는 ‘포용주의 구원론’을 받아들였고, 1990년에 서울 JPIC 대회가 열렸다.

당시 총회 주제는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Renew the Whole Creation)였다. WCC 총회 중 최초로 성령론이 주제로 채택된 것이다. 또 주제는 신앙고백이 아닌 기도형식을 사용했다. 총회 개막 연설에서 사무총장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 가지 우선 안건을 제시했다.

“첫째, 교회는 성령이 모든 영성과 종교들 안에서 활동하는지 아니면 기독교 신앙 안에서만 배타적으로 활동하는지 답해야 한다. 둘째, 사회주의가 붕괴했기 때문에, 교회는 대안적 사회 모델을 찾아야 한다. 셋째, 다양한 교파들 간의 가시적 일치가 다시 강조되어야 한다.”

총회는 또 환경문제와 생명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나타냈다. 환경문제와 창조신학을 연결시켰고, 경제와 생태계에 대한 윤리가 교회의 삶 속에서 성찰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호주 원주민들의 땅에 대한 영성이 이러한 주제를 논의하는데 매개체가 되었다.

캔버라 총회는 리마 예식서에 근거해서 4,000명 이상의 다양한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것은 BEM 문서가 추구하는 일치를 예배로 표현한 것이다. 총회는 코이노니아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향후 WCC 교회론은 선교, 봉사, 일치가 교회론 안에서 통합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캔버라 총회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성령론의 범위와 생태계 안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뜨거운 신학논쟁이 일어났다. 정현경 교수의 퍼포먼스는 이 같은 논쟁을 촉발시켰다. 그는 초혼제를 통해 홀로코스트로 목숨을 잃은 유대인들,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죽어간 사람들, 중세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여성들, 일본 정신대에 끌러가 죽은 한국 여성 등을 호명했다. 이후 호주의 원주민과 한국의 농악단이 굿을 벌였다. 동양의 토착문화와 기독교의 조화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정 교수의 발표와 퍼포먼스는 성령의 활동이 기독론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과 동방정교회의 대표들은 그 입장을 종교 혼합주의 위협이 있다고 비판했다. 캔버라의 최종적인 결론은 “영들은 분별되어야 한다. 모든 영이 성령은 아니다. 성령을 분별하는 주요 기준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다. 성령은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키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증언한다”고 했다.

또한 총회의 토론 문서는 생태계 안에서 인간중심성과 청지기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오만한 것이라고 비판했으나, 최종 선언문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고, 환경을 지키는 청지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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