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3.1절 의미 깨달을 때 민족 위한 기도 넘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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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3.1절 의미 깨달을 때 민족 위한 기도 넘칠 것”
  • 정민주 기자
  • 승인 2012.02.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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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째 민족화합기도운동을 이끌어온 정근모 장로

3.1절은 1919년 일본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족적 열망을 모았던 역사적인 독립운동일이다. 그러나 요즘 국민들에게 3월 1일은 공휴일 이상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25년째 3.1절을 기념하는 민족화합기도회를 이끌어온 이가 있다. 바로 민족화합기도운동의 발기인 정근모 장로다.


정근모 장로에겐 장로보다 박사라는 수식어가 익숙하다. 정근모 장로는 고등학교를 4개월 만에 졸업하여 서울대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했고,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스물네 살의 나이에 ‘소년 교수’가 되는 등 소위 천재의 길을 걸어왔다. 또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차례나 지냈고 2010년에는 한국전력공사 고문으로 원자력발전소 아랍 에미리트(UAE) 수출을 이뤄냈다.

과학자로 지성인의 걸어온 그가 민족화합기도운동의 핵심인물이라는 사실은 조금 의외다.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은 그에게 3.1절의 의미와 교회의 역할에 대해 들어보았다.

- 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생의 40%가 3.1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모든 일이나 사람에게는 뿌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상해 임시정부라 할 수 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은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후의 일이다. 임시정부는 3.1절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또한 3.1 독립운동은 일제 식민 치하의 암울한 상황에서 모든 국민이 하나 되어 독립을 외쳤던 역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깊은 운동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 텐데, 청소년들이 3.1절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니 충격적이다. 나의 소년 시절만 해도 6.25전쟁을 겪은 세대라 그런지 모든 학생들이 애국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았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학교 교육에서 그것을 경시했는지 안 가르쳤는지 우리나라의 기본정신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3.1절의 의미를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겠는가.

3.1절을 휴일로 생각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기본정신을 음미하고 나라를 위해서 온 국민이 함께 독립을 위해 일어났던 역사적인 날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삼일운동을 국민들이 이끌었던 것처럼 국민들이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또 학교 교육도 중요하겠지만, 미디어 역시 국민들을 교육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미디어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뉴스로 다루기보다는 한국 역사의 기본적인 사건들을 알리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자각하게 되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 3.1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던 만큼, 기독교에서도 3.1절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을 2천만 명으로 볼 때 기독교인은 20만 명도 안 됐다. 1%에도 못 미쳤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삼일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그렇고 배제, 경신, 이화 등 미션스쿨의 학생들도 많이 참여해 실제적인 일들을 해나갔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조선의 자주독립에 대해서 확신을 한 것은 기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립선언서만 봐도 성경에 근거한 것들이 많다.

- 그런데 기독교에서도 3.1절의 의미를 기리고 교회에서 기념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민족화합기도운동’이다. 그런 교회의 현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에는 3.1절에 의미에 대한 깨달음과 각성이 필요하다. 삼일운동 당시에 기독교가 핵심 역할을 하며 민족의 화합에 앞장섰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3.1절을 기념하는 예배와 기도, 찬양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신학대학에서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가르쳐서 3.1절의 의미를 알려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 '제1회 3.1절 민족화합기도회'는 1988년 3월 1일 종로성결교회(현 삼성제일교회)에서 열렸다.

- 25년째 이어지고 있는 민족화합기도운동,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먼저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아들의 질병을 통해 참된 크리스천이 된 나는 1986년 미국에서 완전히 귀국하기로 했다. 그리고 귀국해서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함께 기도하던 미국국가조찬기도회 간사들은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순수한 과학기술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그리고 기도후원을 약속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고 최태섭, 김인득, 이한빈 장로와 서영훈 장로를 찾아갔다. 1987년은 올해 이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 변화의 시대에 화합의 기도를 하자고 제안했다. 지나온 한국의 역사를 볼 때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

5명이 핵심이 되어 1988년 3월 1일에 종로성결교회(현 삼성제일교회)에서 아침 7시에 첫 번째 민족화합기도회를 개최하게 됐다. 이날 기도회에는 200명 정도가 참석했고, 저녁에는 하용조 목사의 후원으로 온누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성도들이 본당을 가득 메워 뜨겁게 기도했다.

- 민족화합기도운동을 이끌어오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

하나님과 화합, 이웃과 화합, 믿음과 삶을 화합하는 것이 민족화합기도운동의 핵심이다. 우리는 3.1절 예배에 한 교회에서 몇만 명이 모이는 것보다 모든 교회에서 3.1절 예배를 드리고 민족화합을 위한 기도회가 확산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에는 충현교회․종교교회․온누리교회․삼성제일교회 등을 순회하며 기도회를 가졌고, 매년 3월 1일에는 3.1절을 기념하여 예배를 드렸다. 미국국가조찬기도회 대표들도 참석한 적이 있다.

민족화합기도운동의 열매는 한국해비타트와 라이즈업코리아로 나타났다. 1992년 시작된 해비타트운동은 1994년 의정부에 처음 집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2000번째 집을 지으며 화합의 운동에 실질적인 열매가 되었다. 가정을 세우고 마을의 공동체를 만들과 화합을 이루는 일에 많은 호응을 보내왔다.

그리고 청소년 신앙의 중요성을 깨닫고 라이즈업코리아 청소년운동본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첫 기도운동을 잠실경기장에서 가졌는데 비가 쏟아지는데도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고 한국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청소년을 넘어 전 세대로 확장시키는 결실을 맺었다.

민족화합기도운동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어 온 해비타트와 라이즈업코리아, 직장선교회 등은 사람이 계획하는 것과 하나님이 계획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람은 하나하나를 계획하지만 하나님은 역사를 만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 요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대로 믿음과 소망을 갖고 민족을 넘어 열방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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