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앞에 '평등한 인권'과 '공익' 위한 언론의 역할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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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앞에 '평등한 인권'과 '공익' 위한 언론의 역할 시급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2.02.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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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4주년 특집 - 기독 언론의 과거와 현재, 남은 과제는?

최초의 기독 언론 ‘죠션크리스도인회보’ 교회 넘어 사회, 국제적 소식 포괄적으로 다뤄
최근 기독 언론 교회 내부 소식 집중... 기독교적 시각으로 사회적 대안 책임 감당해야

한국 최초의 기독교신문이 발행된 지 114년이 흘렀다. 1897년 선교사에 의해 창간된 기독교계 신문은 두 가지. 아펜젤러 선교사가 발행한 ‘죠션크리스도인회보’(18978년 2월 2일 창간)와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발행된 ‘그리스도신문’(1897년 4월 1일)이 바로 그것이다. 두 신문은 주간지 형태를 띠고 있었고, 순 한글신문으로 민중에 대한 계몽과 개화, 민족사상 고취 등 복음전파 이외의 사회적 책임도 감당하고 있었다. 서구의 발달된 문명과 사상을 전파한다는 점에서 계몽효과는 뚜렷했지만 동양의 문화를 폄하하는 서구 중심적 시각으로 인해 전통 문화적 정체성을 희석시켰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언론을 비롯한 기독교 문서의 사회적 기여는 상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본지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기독교 언론 110여 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과거 언론의 역할과 현재 기독언론의 책임을 분석해보았다. <편집자 주>

1897년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에 의해 창간된 ‘죠션크리스도인회보’는 첫 호에 “조선에 있는 교회에서 긴요한 사적과 특이한 소문을 각인에게 전한다는 말이라... 우리 회보를 보시면 세계상에 유익한 소문과 각국의 재미있는 사적을 자연히 통달할 것이니... 혼암한 마음을 광명케 하고 개명에 진보케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신문 하나에 국제 소식을 알 수 있고, 마음을 다스리는 복음을 접할 수 있으며, 바뀌는 세상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가 발행한 ‘그리스도신문’은 어떨까. “그리스도 교회가 만민에게 복된 소식과 착한 일을 전하려 하매... 이 신문은 백성을 도우려 함이요, 조선 백성을 위하여 지식을 널리 펴려 하는 것이니... 천지만물의 이치와 형상과 법을 아는 것이요, 타국정치상을 아는 것이요, 타국 백성의 사는 풍속을 하는 것이요, 모든 물건을 만드는 법을 아는 것이라...”. 그리스도신문은 또 “제 나라이 왕성하여 가는 것을 보고 제 자녀에게 제가 받은 학문보다 나은 것을 주려”는 목적도 밝히고 있다. 국민계몽에 대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선교 초기 기독교 언론이 “교회 소식이나 교리적인 내용과 함께 서구 문화와 문명을 소개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고, 농사짓는 법, 육아법, 공업 등 실천적인 면도 강조하여 일반지식 보급을 위해 노력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민족 개화사상 보급에 대한 공헌과 민족주의 사상 고취에 대한 공헌도 인정하고 있다.

이 두 신문은 1905년 교회연합운동 분위기에 따라 합동을 결정하고 1905년 7월 1일부터 장-감 연합신문인 ‘그리스도신문’으로 발행됐다. 1907년 다시 ‘예수교신보’로 제호가 변경됐다.

지면 배치 또한 눈길을 끈다. 전면 8면으로 발행된 ‘그리스도신문’은 1면에 논설란, 2면은 농지편설란이라 하여 농민에 관한 지도 기사, 3면은 공장편리설란으로 과학 계몽·소개 기사, 4면은 그리스도교에 관한 논설, 5면은 관보, 6면은 성경강론회와 교회 통신, 7면은 기도회에 관한 기사, 8면은 외방 통신, 국내 각부 통신, 전보·광고 등으로 구성했다. 종교를 토대로 한 종합적인 편집은 당시 신문계에서 볼 때도 이채로운 것이었다고 한다.

1915년 창간된 ‘기독신보’ 역시 시사적이고 일반적인 기사들을 함께 편집함으로써 기독교 언론의 한계를 타파했다. ‘기독신보’는 1920년 2월 4일자 217호부터 일반 시사를 보도했다. 총독부로부터 “시사신문과 등대하게 발행해도 된다”는 허가를 얻은 것이다. 이 신문은 교회 소식뿐 아니라 일반 외교, 정치, 사회분야 기사도 게재했고, 기독교인 관련 독립운동 사건도 비교적 자세히 보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병희 등 민족재판’, ‘ 대동단 사건’, ‘애국부인회 사건’, ‘구국민단사건’ 등을 보도한 것이 그 예다.

이처럼 초기 기독교 언론은 사회 문제에 대한 보도, 국제 정세, 농민 계몽,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문맹퇴치 캠페인 등 상당히 폭넓은 역할을 감당했다. 신문화와 문명을 소개하고,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시켰으며, 농업과 과학 등 신 기술을 소개함으로 민중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사를 게재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농업에 대한 기사는 농촌계몽과 문맹퇴치, 신여성운동에 이어 절제운동으로 확산됐다. 당시 ‘기독신보’는 1920년대 일어난 금주, 금연, 절제운동을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사설을 통해 "근자에 와서 경성을 비롯하야 조선각지에 금주운동이 일어남은 충심으로 기뻐할 일이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 언론은 ‘한글보급’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한글은 1446년 훈민정음 반포 이후에도 그다지 크게 인정받지 못하며, 천대받는 언문이었다. 그러나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개혁정부가 공문서 작성 시 한글로 본을 삼고, 한문으로 번역하여 덧붙이거나 국한문을 섞어 쓰도록 한 후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 일 역시 한글 성경과 한글 신문이 톡톡한 역할을 감당했다. 서울기독대 백종구 교수는 “한글을 문서선교 정책으로 채택한 기독교는 한글을 배우기 쉽고 요긴한 일상 언어가 되는 데 한 몫 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초기 기독교 언론은 정치, 사회, 교육, 문화, 학술 등 다양한 기사를 게재했을 뿐 아니라 선진 문명을 소개함으로써 잠들어 있는 국민의식을 깨우고,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절제된 문화를 보급하는데 앞장 서왔다.

그러나 최근 기독교 언론은 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채 교회 내부의 소식을 싣는 축소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 언론이 사회적 영향을 과시하던 것과 달리, 교회 안에 머무는 소극적인 언론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2012년 현재 초교파지와 교단지의 지면 형태를 분석해보면 본지의 경우 전면 24면 발행에 교계 소식 중심의 종합 보도(1-6면), 기획과 간증(7-11면), 선교와 교육, 목회, 학술(12-19면), 동정과 사설(21-23면), 문화(24면)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교계 소식은 주로 교단과 연합단체의 보도기사 형태를 띠고 있으며, 목회와 문화, 학술 역시 신학적 흐름과 최근 목회 방향, 교회 문화 소개 등 교회 안의 소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교단지 역시 마찬가지다. 예장 합동 교단이 발행하는 ‘기독신문’의 경우 전면 28면에 교단 소식이 (1-6면), 교계소식(7-8, 11면), 목회, 선교, 신학, 문화, 신앙, 오피니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제면에 해외교회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예장 통합이 발행하는 ‘기독공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28면 중 교단 소식(1-6면), 여전도회(12, 13면), 문화, 오피니언, 교육, 평신도, 타 교단 소식으로 지면이 할애되어 있다. 즉, 교회 안의 소식지에만 머물고 있다.

‘국민일보’가 기독교 종합일간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미션면’을 제외하고는 일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보도 영역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찾아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모든 기독교 언론들이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물론 일반 사회 언론의 수준과 시민들의 수준이 20세기 초와 달리 상당한 단계에 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는 “기독교 언론 초기 계몽과 개화에 영향을 주던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단정했다. 시대가 변했고, 언론의 수준도 독자의 수준도 달라진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보이는 기독교 언론의 보도는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고, 경제 정의가 왜곡되고, 퇴폐와 타락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된 상황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성경’을 토대로 한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주 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밖으로 나아가는 과감한 행보는 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 언론이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교회를 넘어 사회를 바꾸는 책임감을 가져야할 시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강대 최창섭 명예교수는 종교언론의 사회적 공익성 강조했다. 최 교수는 ‘기독언론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종교는 구원관이나 세계관에서 공익성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희생했듯이, 종교적 사명이 지향하는 것은 대중의 행복, 즉 공익을 위해서 사는 삶이었다. 종교언론도 이런 종교적 이념을 실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상업적 언론이 목표로 삼는 사적인 이익을 넘어, 큰 차원에서 세상의 구원을 목표로 하는 종교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최 교수는 또 종교언론이 해야 할 역할로 신 앞에서 평등한 인권을 구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종교언론은 선교 매체이자 동시에 언론매체라는 이중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언론들이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교회 안의 언론으로 작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의 기독언론은 교회 또는 교파의 기관지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지역적 독선과 폐쇄성을 면치 못하고 있어 종교간 또는 교회내의 화해나 연합보다는 오히려 분리와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우려하며 “폐쇄적으로 독선적인 자기 함몰성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폭넓은 수용자 계층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기독언론은 교회 자체에 대해서는 물론 사회에 대해서 예언자적인 신앙양심을 표현하는 사명감에 입각해서 일반 언론의 현세적인 방향교정을 위한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 역시 “기독교 언론이 교회 안의 문제에만 집중한 것은 넘어서야할 한계”라며 “정부와의 관계, 국제적인 정세 등을 읽어낼 수 있는 폭넓은 기독교적 시각이 기사에 반영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교회 뿐 아니라 세상의 환부를 도려내고 고쳐나가는 예언자적 기능이 언론에게 필요하다”며 “기자들이 기독교 세계관과 역사의식으로 무장해 보다 선도적인 언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이와 더불어 과거 기독언론이 했던 사회 변화와 계몽의 역할이 지금의 상황에도 필요하다며 세속적 문화에 휩쓸려 교회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성경적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또 교계 일각에서는 “기독교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왜곡하는 소외 약자층의 문제, 사회 정의와 경제정의, 빈곤과 환경의 문제야말로 기독교 언론만이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사안”이라며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회적인 이슈들을 기독교적 시각으로 끌어안는 노력이 계속되길 바란다”고 기독 언론의 사명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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