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살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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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살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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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2.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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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 목사 (예수로교회)

옛날보다 잘 사는 것과 남들보다 잘 사는 것은 다르다. 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먼저 당신은 한 해 5천만 원을 벌고 다른 이들은 그 절반을 번다고 하자. 그리고 이번엔 당신이 한 해 1억 원을 벌고 다른 이들은 그 두 배를 번다고 해보라. 누가 더 행복할 것 같은가. 자기 소득이 크게 늘어난다 해도 다른 이들의 소득이 그의 곱절로 늘어난다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 외환위기 이후 12년 동안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은 꼭 두 배로 늘어났다.

2010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165달러로 세계 33위였지만 국가별 행복지수 순위는 세계 102위에 머물렀다. 행복은 부와 소유에 있지 아니하고 존재와 목적에 연유함을 자각케 한다.

소유를 많이 가지면 그 만큼 더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막상 소유에 대한 욕망이 더 증폭됨으로 결국은 불행해진다는 소위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e Paradox)이다. 쇼펜하우어는 부(富)는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의 고삐를 잡지 못하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불행하게 될 뿐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돈은 동전으로 찍어낸 자유라 했고 톨스토이는 돈은 새로운 형태의 예속이라고 했다. 더 자유롭고 더 안전한 삶을 위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지만 그 돈이 굴레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요 하나님 사랑이 만복의 근원이 된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웃들의 벗임을 자처하며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철저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다간 고 장기려 박사는 영리하게 살기보다 바보처럼, 누리기보다는 섬기면 살다간 이 땅의 작은 예수였다.

그는 부산복음병원 원장으로 40년, 복음간호대학 학장으로 20년을 근무했지만, 서민아파트 한 채, 죽은 후에 묻힐 공동묘지 10평조차도 없었다. 병원비를 낼 수 없는 환자들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 자신의 월급으로 대납하기가 일쑤였고. 그것도 안 되면 눈물겨운 처지의 환자는 밤에 병원 뒷문을 열어 놓아 도망가게 하였다.

어느 해 설날 세배하러 온 제자에게 "금년에는 나처럼 살아보게"라는 덕담을 해 주자 그 제자가 "선생님처럼 살면 바보 되게요"라고 대답하자 그때 장 박사는 껄껄 웃고 난 다음 제자의 손을 꼭 잡으며 "그렇지.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비문에 새겨진<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는 글귀가 대림절을 보내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세상을 향한 부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바꾸게 한다. 탐욕이 가득한 세상에서 바보 예수처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짐을 한번 져본 사람은 안다. 짐은 무거운 것이다. 그래서 짐은 짊어지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원주민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지고 건넌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깨우친 것이다. 자신의 등에 있는 짐 때문에 세상을 바르게 살고, 사랑과 용서와 겸손을 알게 된다.

그래도 짐은 무겁다. 십자가는 보면 무겁고 지면 가볍다. 짐을 지면 자연스럽게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진다.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허리가 굽어진다. 자꾸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십자가는 겸손과 순종의 자리다. 비움과 채움의 자리다. 성탄의 참된 의미는 섬김이다. 걸레는 더러움을 훔쳐서 더러워진 것이다. 연탄은 자신을 태워서 하얗게 된 것이다. 거울은 자신을 닦아서 맑게 된 것이다.

걸레는 깨끗하지 않으면 더러움을 훔칠 수 없다. 연탄은 밑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불씨를 집힐 수 없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으면 웃지 않는다. 예수님은 걸레처럼 우리의 죄악을 보혈로 훔쳐 주셨다. 연탄처럼 하얗게 세상에 생명의 불씨가 되어 주셨다. 거울처럼 우리의 본이 되어주셨다. 걸레, 연탄, 거울은 행복한 바보들의 교회를 향한 울음이다. 성탄은 행사가 아니라 행동이다. ‘나처럼 살아보게’ 우리가 누군가에게 남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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