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자유의 제한 문제
상태바
성령의 자유의 제한 문제
  • 운영자
  • 승인 2011.09.28 13: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업 목사 (기독교정화운동)

쿠르드 코흐 박사는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영적 현상들을 연구하고 사단이 어떻게 역사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가,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역사를 어떻게 방해 하는가에 대하여 논한바 있다.

한국은 성령께서 처음부터 역사 하시어 은혜의 충만한 유산을 받아온 바 있다. 그러나 근자에 있어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말씀주의 보다는 문자주의에 빠져서 계속해서 사단의 계략에 휘말리는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지나치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의심하고 분석 비판하여 성령님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로 가고 있다는 말을 의미한다. 근자에 하나님께서는 부흥사들이 황금송아지 숭배에 빠지므로 비교적 존경 받는 학자들을 일으키어 성령의 역사를 도모하는 것 같다.

신성종 박사의 천국 갔다 온 이야기, 건국대 교수인 손기철 박사의 능력 역사의 사역들, 김동수 박사의 집회에서 방언 터지는 현상들 기타 여러가지 학자들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사실들을 목격한다.

너무도 성경적이고 영적이고 실제적인 논점들이다. 만약 그가 정론적으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그로 하여금 옆길로 빠지지 않게 인도하실 줄 믿는다. 항상 기도하고 자기를 보살피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깨우치심이 있는 것이다.

정식적으로 신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은 신학의 인간적 논리에서 자유 하기가 어렵다. 베드로나 요한이 언제 신학을 공부하였는가? 평소에 조직적으로 율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탄없이 깊은 진리를 말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는 말을 깊이 명심 하여야 한다. 지나치게 신학적 말씀적 잣대로 논란하다 보면 성령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 한가지는 계시의 남발이다. 여기 저기서 기도하고 명상한다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든지 계시가 임했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객관적으로 맞지않고 증험도 없다. 그러면 계시라는 것이 다 쓸데 없는 사이비나 이단들이 하는 짓이라고 무시하거나 멸시해 버린다. 이렇게 해서 그때 그때 계시하시는 성령의 자유를 방해해 버린다.
 
이 또한 큰 병폐이다.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깊이 있는 회개의 역사나 청결한 심령을 준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계시를 체험할 수 없으며 죄악을 품은 심령들에게서는 사단의 속임수의 응답들을 목격한다. 이들을 시정하고 가르칠 자들은 신학자들이다. 그런데 옆에서 정죄하고 단죄하고 비난만 하고 있으니 어찌 사단의 계략에 빠지는 일들이 아닐 것인가?

또 한가지는 소위 계시론이다. 계시는 사도시대 이후에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성경적 계시 다시 말하면 성경말씀에 견줄만한 계시는 다시 없다는 말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개인 상담이나 소망의 메시지 정도의 계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아닌가?

지나치게 계시 경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체험이 없기 때문에 계시라고 하면 성경에 준하는 계시로만 이해하여 큰 일이 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이다. 이 또한 성령님의 활동을 제한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가장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말씀을 보존한다는 마음이 곧 하나님의 은총을 가로 막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교도적 성령론도(이단 사이비 교도) 강조하여야 하겠지만 무체험적 성령역사 경계론도 시정하여야 한다. 이들을 시정하지 않고서는 한국 교회에 부으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일부러 걷어차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탄식을 우리는 삼가 경청하여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