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이들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주신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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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이들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주신 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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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2.1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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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실천신대>

루터는 만인사제론(Das allgemeine Pries tertum)을 내세우며 이전의 교회역사에서 이루어졌던 사제들의 신격화 내지는 권력화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루터는 특정한 사람만이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사제라고 주장한다. 이전에는 사제들이 은혜의 배분자로서 예전과 말씀을 독점하고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스스로의 사제로서, 또는 제사장으로서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루터는 말씀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모두가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루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바르트부르크성(Wartburg)에서 신약을 번역하고 계속하여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서 백성들의 손에 성경을 들려주었다.

또한 예배의 순서도 모두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바꾸고, 예배의 찬송가도 독일의 민요가락에도 맞추어서 모든 백성들이 자신들의 언어인 독일어로 부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써 예배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루터에게서 특별한 점은 교회론에 있다. 그에게서 드디어 ‘감독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절대적 명제가 무너지고 교회는 ‘믿는 자들의 공동체’, 또는 ‘거룩한 자들의 공동체’로 이해되었다.

공동체는 바로 이 직(Office)을 위해서 사람을 불러 임명하게 되었다. 즉 이전에 사제들이 사제에 의해서 선출되고 임명되었던 것에 반해서 개혁교회는 공동체가 먼저 서고 그 필요에 의해서 목사를 부르고 임명하는 것으로 그 순서가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종교개혁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한국 교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섰다고 일반적으로 해석되고 있고, 실제적으로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수치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한국 교회가 세계교회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이루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결국 한국 교회가 교만하게 된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10대 교회 중에 한국 교회가 반 이상 차지하고, 파송 선교사 2만을 헤아리는 선교대국이라는 자랑이 드러날 때 한국 교회는 교만해진 것이다. 더군다나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서 기독교가 이 나라에서 소수가 아니라 다수임을 확인하고, 교권이 곧 권력이 되고부터는 이 교회가 교만해진 것이다. 이 교만함으로 세상을 상대하니 세상이 교회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이고 결국 그 결과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중심에 직분자들이 있다. 특히 목사들이 교회를 통해서 권력을 잡고, 말씀을 팔아서 부를 사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세상인 교회 안에 갇혀서 자신의 왕국을 만들고 자신들의 하이어라키를 개교회 안에 만들었다. 그래서 이들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이들은 자신의 왕국의 확장을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보고 끊임없이 이 세상과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서 이들은 교회를 통제하고, 교회의 자유를 위해서 교회 안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이로써 이들은 권력을 만들어 가고 있고, 이를 위해서, 또 이를 통해서 교직의 신비를 만들어가고 있다. 더군다나 이 권력은 사회의 선거제도를 통해서 정치와 가까워지고 결국 교회의 권력이 세상의 권력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이미 세상은, 심지어 우리 교인들마저도 그러한 억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대가 교회의 민주화를 원하는 것이고 그 중심에는 결국 직분자들의 태도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 교회는 종교개혁의 전통과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정말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는 이들의, 거룩한 자들의 공동체로서 새롭게 되어야 하고, 특정한 사람들의 직분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지는 은사로서 직분이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에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민주적 가치가 직분의 이해에 더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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