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한국교회 성장에 기초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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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한국교회 성장에 기초 역할
  • 승인 2002.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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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양의 신학자들은 종교 혼합주의적(Religious Syncretism) 시각에서 한국의 종교적 전통인 샤머니즘(Shamanism) 또는 불교(Buddhism)와 연관지어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을 이해했다. 특히 북미의 신학자들은 한국의 기독교인은 지나치게 신앙적이며 보편적 기독교의 교리·역사적 지식의 기초가 결핍된 무신학적 측면이 있다고 인식한다.
교회는 많으나 참된 크리스천이 드물고, 신자들의 열정적 신앙은 물질적 축복을 위한 행위만으로 이해한다. 예배는 의식적이며 그들의 전적인 삶을 통한 산 제사가 없다. 중생을 외치나 그 중생의 증거인 성결한 삶은 목격되기 힘들다. 중생과 성결의 상관적 관계로부터 결별된 비윤리적 삶이 팽배하다.

이러한 신앙적 행위의 결과는 종교 혼합주의를 통해 형성된 무신학적 또는 비신학적 배경에 기인한다고 서양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인식한다. 더욱 심각하게도 한국의 기독교 신학은 서양의 것에 비해 열등하다고 주장한다. 분명히 그들의 이러한 일방적 인식은 지엽적·주관적 배타성에 기인한 자신들만의 우월주의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기독교 정체성의 재인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종교 혼합주의적 인식이 아닌 공동체 정신에 기초한 한국 유교의 고유한 특징인 삼강오륜, 두레 또는 계와 같은 삶의 방식 또는 사상적 측면으로부터 그 인식이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교는 천년이 넘도록 한국인의 정치, 사회 그리고 문화에 영향을 끼쳤던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국 유교의 공동체 정신과 그 부수적 사상들은 근본적으로 7세기(A.D. 635~640) 중국 장안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네스토리우스학파(Nestorian Missionaries)들이 중국문화를 통해 기독교 교리들을 재해석하려는 ‘동북아시아적 상황에서의 토착화 시도'의 결과들이다.
한국인의 윤리적 규범과 행위에 지배적이었던 유교의 공동체 정신은 기독교의 교회론과 십자가 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한국적 상황에서 유교의 공동체 정신은 다양성의 수용을 통해 궁극적으로 기독교의 아가페적 사랑의 본질을 추구한다.
이러한 사랑의 정신은 신약에서 묘사된 교회론의 특징을 함축한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양성을 수용하며 인간 삶의 실제적 윤리 실천을 역설한다(고전 12장).

노인공경, 교우신의, 부부존중, 이웃사랑, 그리고 부모효도 등과 같은 유교의 삼강오륜(Three Fundamentals & Five Cardinal Rules) 정신은 십계명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유교는 윤리적 삶의 규범에만 제한받지 않고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신관의 형태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유교의 본질적 특징은 창조자로서의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 십계명의 수직적-수평적-상호 보완적 관계에 기초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 유교의 ‘경천애인'(敬天愛人) 사상은 기독교 십계명의 형태로부터 기인된 기독교 사상 그 자체다.

이러한 기독교적 유교의 신관과 윤리규범은 9세기(A.D. 875) 신라의 최치원에 의해 한국적 언어와 사상을 통해 한반도에 전래 됐다. 이러한 기독교 복음의 전이를 통해 한반도는 천년이 넘도록 성령의 초월적 능력으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의 복음의 진리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본질인 그 복음은 이미 한국인의 문화적 전통 속에 깊이 내재되어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의 가톨릭 선교과정에서 조선의 실학사상가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수용됐다.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이벽, 권일신, 이승훈, 이익 등 당시의 실학사상가들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1552~1610)의 천주실의와 같은 기독교 교리서를 통해 형식적 이상주의의 실존적 한계에 직면한 주자학을 극복할 수 있었고, 세계와 자연 그리고 우주의 창조자시며 근본자이신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을 영접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구속적-개인적 관계를 통해 인간실존의 한계를 극복하는 원리, 즉 영생의 진리를 터득했던 것이다.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의 실학사상가들에 의한 기독교 복음의 적극적 수용은 19세기 말의 개신교 선교에 밑거름이 됐다. 서양의 기독교가 한반도에서 거부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짧은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성장을 이룬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적 전통과 가치관에 기초하며 이러한 유교적 바탕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적 사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므로 유교를 이해함으로써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교회와 신학계는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상실한 채 지나치게 서구화 되었다. 한국 민족의 고유한 윤리적 가치와 공동체 정신 속에서 새로운 교회 부흥의 방법을 재발견해야 한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기초한 이른바 서양으로부터의 무분별한 ‘교회성장학'의 도입은 오히려 가족 중심적 공동체 정신에 기초한 한국 교회에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한국인의 가족 중심적 공동체 정신은 교회 부흥의 원천이며 성경적 교회의 모형이다(엡 5:22~6:4). 단순히 이러한 공동체 정신을 회복함으로써, 즉 한국 민족으로서의 올바른 정체성 인식을 통해 한국 교회는 재도약 할 수 있다. 붕괴된 효정신의 회복, 노인존경, 남녀평등, 상호적 신뢰를 통한 이웃사랑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반영을 통해 한국 교회가 선포하고 교육시켜야 할 주요한 요소들이다.

성경적 본질이 결핍된 부흥만을 위한 무조건적인 교회의 양적성장이란 매우 위험한 비신학적-이기적 단체(Christian sect)만을 양산할 뿐이다. 공동체 정신에 기초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포는 희망이 상실된 한국 사회를 치유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 정신의 회복은 각 인종-국가-사회-개인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명령이며, 인간으로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적 사랑을 구체화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는 서양의 기독교와 다른 지리적-역사적-문화적 전통 속에 기초한다. 그러나 유교는 복음이라는 기독교의 절대적 진리를 배척하는 이질적 문화 전통이 아닌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더욱 쉽게 이해 시킬 수 있는 한국인의 소중한 사상적-문화적 유산이다. 즉, 성령의 보편적 은총이다(God's Universal Revelation).

한국의 신학은 서양의 신학에 더이상 종속되어서는 안된다. 기독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지 3백 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사상에 기초하여 한국 자체의 토착화 신학의 절대적 필요성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토착화라는 신학적 과제는 2천 년의 기독교 역사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시도됐으며 복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각 민족의 문화 전통을 통해 활용된 가장 기초적인 신학 방법론이다.

이러한 토착화 시도는 종교 융화주의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다시 말하면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보편적 선물이며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성이다. 각 민족의 문화를 통해 성령님의 주권적-초월적 사역이 가능하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전문가를 제외하고 히브리-헬라어 원전을 읽지 않는다. 동시에 라틴어로 찬송을 부르지 않는다. 분명히 한국어로 찬송하고 한글 성경책을 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문화적 토착화를 통한 복음의 전이에 대해 의식-무의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각자의 고유한 문화적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본질을 느끼며 인식하고 확증한다. 유대인은 히브리어를 통해, 한국인은 한문과 한글을 통해 각자의 문화적 전통을 활용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인지하고 체험하며 믿음이라는 기적을 이룬다(롬 3:31~4:8).

김영관교수(성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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