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순직 1백주년' 사상·삶 '재조명'
상태바
아펜젤러 '순직 1백주년' 사상·삶 '재조명'
  • 승인 2002.06.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리회 한국 선교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아펜젤러가 순직한 지 1백년을 맞이했다.
1885년 4월5일 부활절에 첫 발을 내딛은 감리교회의 첫번째 선교사 아펜젤러. 그는 27세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1902년 44세에 목포 앞바다에서 순직하기까지, 비록 길다고 할 수 없는 17년 동안 교육과 문서선교에 위대한 선교행전을 남긴 선교사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함께 미국 북감리교회에서 한국에 파송한 안수받은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 그의 대표적인 선교행전은 정동제일교회 창설과 함께 한국 근대교육의 발상지가 된 배재학당 설립으로 유명하다이. 그는 배재학당을 통해 한국 최초의 서양교육기관을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였으며, 그가 직접 가르치고 운영까지 했다.

아펜젤러선교사는 돈이 없어 서당조차 가기 힘든 형편의 서민과 천민들에게 신식교육을 통해 관료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 배재학당을 통해 젊은 일꾼을 모은 아펜젤러는 삼문출판사와 제본소, 서점 등을 설립해 학생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학당 내 노동부를 세워 노동을 천시하는 악습을 폐지하는데 노력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교리공부를 하기 위해 찾아온 배재학생들에게 신학교육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감리교신학대학의 전신되었다. 아펜젤러는 이들 학생들에게 15년 간 철저한 신학교육을 실시한 후 목사 안수를 주고 교회로 파송할 정도로 올바른 목회자 양성에 관심을 쏟았다.
아펜젤러는 초교파 선교 연합사업의 기초를 닦은 선교사로 평가받고 있다. 아펜젤러는 장로교 선교사들과 연합하여 성서와 찬송가를 비롯하여 각종 기독교 문서들을 번역 출판하는 일에 종사해, 한국 기독교 문서선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 성서공회와 기독교서회로 발전하여 기독교 문서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펜젤러선교사는 1천8백 마일을 이르는 선교여행을 다닌 선교사로도 유명하다. 그는 조선 8개 도 가운데 6개 도에 이르는 세 차례에 걸친 선교여행을 통해 교통과 입지조건 비교해 선교 요충지역을 파악할 정도였다.

이런 선교행전을 남긴 아펜젤러는 한국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개척자로 또는 한국 교회사와 현대사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아펜젤러가 한국에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로 오게 되어 설정하였던 선교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국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이었다.

송영락기자(ysong@uc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