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원합니다’ ‘있을 지어다’ 뭐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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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원합니다’ ‘있을 지어다’ 뭐가 맞아?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0.09.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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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다름과 닮음 19] 축도(1)

담임 목사의 축도를 유심히 들을 적이 있는가? 어쩌면 이제 형식이 돼버린 축도이지만, 축도 끝머리에 사용되는 용어가 목회자에 따라 교단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A교회 목사는 ‘~~~ 있을 지어다’로 축도를 끝맺는다. 하지만 B교회 목사는 ‘~~~축원합니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확연하게 다르다. 모르겠다면 돌아오는 주일, 목사님의 축도에 귀를 기울이자.

‘축도(祝禱)’는 공예배 끝에 목회자가 세상으로 나가는 성도들에게 하는 축복의 기도.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바른 삶을 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라는 내용의 기도다.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축도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하심이…”로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형식은 목회자들이 만들어 낸 것일까. 아니다. 성경의 내용을 약간 변형해서 사용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라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이 축도의 표본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용어 때문에 말들이 참 많다. ‘~~~지어다’, ‘~~~축원합니다’를 두고 논란이다. 이 논란은 목회자 개인의 선호도를 넘어, 신학적인 문제로, 총회로까지 확대됐다. ‘지어다’는 대부분 “… 하나님의 축복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라는 형태로, ‘축원합니다’는 “… 하나님의 축복이 성도들의 가정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라는 형태로 사용된다.

왜 논란이 되는 것일까. 지어다의 경우 ‘명령’에 가깝다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인간의 명령으로 주어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축복에 대한 명령 또한 인간이 하나님에게 내릴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반면 축원합니다는 소원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희망하는 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뜻을 담은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성도들에게 내려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지어다라는 명령형 축도보다는 축원하는 축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지어다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예장 통합측의 경우 20년 전인 제75회 총회에서 오랜 논란과 토의를 거친 끝에 축도를 할 때 지어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통합측 소속 교회 목회자들은 축도 시에 지어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헌법 제4편 예배와 예식 제3장 예배의 배열 3-2’에 ‘신앙적 결단을 촉구하는 찬송을 부르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 것을 다시 한번 부탁한 후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목사가 선언한다’고 한 후 ‘이때의 축도는 성경대로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민수기 6:24~26, 고린도후서 13:13, 히브리서 13:20~21, 데살로니가후서 2:16~17의 말씀을 제시한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축도를 표현하고 있을까. 히브리서 13:20~21의 경우 “…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로 표기한다. 고린도후서 13:13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고 표기한다.

성경에는 ‘지어다’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통합총회는 ‘지어다’로 끝나는 축도를 총회 결의로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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