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찬양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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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찬양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 현승미 기자
  • 승인 2010.08.2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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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월드비전선명회합창단 창단멤버 오지영 전도사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합창단이 생겼지요. 당시 전국의 고아원을 대상으로 합창단을 모집했는데, 한 시설당 5명까지만 지원할 수 있었죠. 무려 300:1의 경쟁률이었는데, 제가 있던 대전 고아원에서 유일하게 저만 뽑혔어요. 비록 전쟁통에 부모님을 잃었지만, 제 평생에 걸쳐 하나님은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지요.”

선명회합창단의 창단멤버로 중학교 3학년이 되던 1973년까지 13년간 온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해 온 오지영 전도사(군포 한사랑열린교회·유성호 목사). 그는 평생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살펴 주시고, 지금까지 찬양사역을 인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다.

길에 홀로 버려져 있던 자신을 긍휼히 여겨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키워주신 군목.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과 생활하며 신앙과 함께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돼 줬던 대전 성납원. 월드비전선명회합창단까지 하나님은 오 전도사의 삶 가운데 깊이 관여하시며, 항상 조력자를 세워주셨다.

“처음 길에서 만난 목사님은 대가족이셨는데, 모든 가족들이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까지 엄청난 대가족 밑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요. 그러다 제가 학교에 들어갈 때쯤 가족회의가 열렸는데, 그때 대전의 성납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 또한 목사님께서 많은 곳을 알아보시고 고심 끝에 결정하셨는데, 정말 원장 장로님이 좋은 분이셨어요.”

그 안에서 오 전도사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양육됐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형제자매들과 끈끈한 정을 나누며 친자매 이상의 마음을 공유했다. 그러나 2년여 만에 월드비전선명회합창단의 단원이 돼 그곳을 떠나야 했다.

“합창단에 뽑혔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다시 고아원에 가고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랬어요. 당시 합창단에서 제가 막내였는데, 전국각지에서 온 언니, 오빠들이 싸움도 잘하고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쟁 고아들로 구성된 선명회합창단의 구성원 역시 그가 2년 동안 생활한 그곳의 친구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어려운 가운데 같은 밥 먹고, 같은 집에서 지내면서, 눈빛만 봐도 알고 끈끈한 신앙과 음악과 정이 다 함께 어우러지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전했다.

“그 당시는 합창단도 많지 않았고, 신앙교육과 음악교육을 정말 철저하게 받았어요. 지금은 좋은 훈련도 받고, 합창단도 많아 실력들이 비슷하지만, 그 당시는 너무 빼어났죠. 우리 연주를 듣기만 하면 다 울고 우리도 울고 세계를 정말 감동시켰죠.”

오지영 전도사를 비롯한 선명회합창단은 철저히 대한민국의 대사로, 하나님의 대사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창단 이듬해 캐나다와 미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세계일주 음악여행이 시작됐다.

“동남아 등 20여 개국을 돌며 찬양을 선보였죠. 요단강에서 월드비전 설립자인 밥 피어스 목사님에게 침례도 받고, 각 나라 수상을 만나고, 언론매체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정말 부자들도 누릴 수 없는 영예를 누렸죠.”

다만 순간순간 현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껴야했다.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잠자리에 들면 외로움에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순종의 성품만을 허락하셨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보다 더 큰 것은 자신을 이끌어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순종이었다.

“제가 빼어나게 음악에 소질이 있었던 사람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창단에서 그렇게 인정받고 지금까지 찬양사역 하고 있어요. 신학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주의 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합창단 활동이 끝난 뒤로도 하나님은 그를 선명회 음악원 직원으로 쓰임 받게 하셨다. 그리고 6년 후 합창단 출신 동료들과 조이중창단을 조직해 27년동안 활동했다.

국내활동을 시작으로 국내에 CCM이 들어설 무렵에는 해외로 눈을 돌려 남미 등지까지 그 영역을 넓혀갔다. 88올림픽 당시 8개국어로 올림픽 CD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6년 전 하나님은 교회 사역을 하고 있던 그를 다시 부르시고, ‘소망선교합창단’의 일원으로 다시 찬양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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