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랏 노아방주가 우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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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랏 노아방주가 우리를 부른다
  • 승인 2002.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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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방주의 역사적 실체는 당대 인류에 관한 한, 하나님이 미리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경고하신 최후 홍수 심판을 확증했다면,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 말세가 2천년이 지나간 그 끝 부분에 살고 있는 우리 당대에 관해서도 역시 전 인류역사의 최후 불 심판의 황색 신호등이 되고 있다(벧전 3:20; 벧후 2:5; 3:7).

인간 삶의 모든 국면에 반드시 고백되어야 할 하나님의 ‘영역 주권’(sphere sovereignty)을 주창하는 개혁주의 문화관은 심령-가정-교회-지역사회-세계에 5중 동심원을 그리며 지상낙원을 건설하려는 소망과 열정을 제공하지만,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세상은 “불사르기 위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날까지 간수되어있으며,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스토이케이아’, 원소들)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벧후 3:10,12)는 부정적인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작년 9월11일 뉴욕 세계무역센타의 참상과 뒤따른 탄저균에 의한 화학 테러 공포의 실상, 악화일로에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핵분열에 의한 원자폭탄이나 핵융합에 의한 수소폭탄, 혹은 전 세계 수많은 자동차 주유소의 지하 저장탱크 등의 “풀어지는 체질”에 대한 위협은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눅 21:26) 라는 말씀을 절감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역사인식의 현장은 무엇인가? 이 세상의 장래가 진화론자들의 신기루적 가설처럼 점점 발전하고 좋아질 것인가? 성경은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며”(롬 8:24),“보이는 것은 잠간이요”(고후 4:18), “이 세상 형적(스케마; scheme)은 지나가므로,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고전 7:31)고 권면한다.

이 세상은 소망이 결코 없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만이 “영광의 소망”(골 1:27)이시기에, 우리는 “속지 말라 세상 허영에, 마음 뺏기지 말라. 세상 것은 일장의 춘몽, 물거품과 같도다. 나는 예수님으로써 참 만족을 누리네. 세상 영광 다 준대도 주님과 못 바꾸네”라고 노래부른다.
인류 최후 심판의 서술적 모형이었던 노아의 때나 롯의 때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눅17:27-28) 시대였다면, 예수님 오시기 직전인 우리시대의 모습 역시 정확히 그러하다고 성경은 진단한다. 매스컴을 통해 우리의 닫힌 의식에 매일 입력되고 있는 식품, 결혼, 무역, 부동산 광고의 홍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마저도 얼마나 자기 사랑-돈 사랑-쾌락 사랑-위선적 경건에 오염되기 쉬우며, 성공의 척도를 돈과 쾌락에 두는 시대정신에 얼마나 쉽게 희생될 수 있는가를 경고한다(딤후 3:5; 벧후 2:8 참조).

금번 창조사학회 주관하는 아라랏 대탐사는 우리의 관심사인 노아 방주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선교기독교로 앞장서야 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로 회개와 사명을 고취하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구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1-6).

김진섭(천안대 구약학, 아라랏탐사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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