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에서 천안함으로의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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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에서 천안함으로의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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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1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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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초동교회>

올 해 봄꽃은 지난해보다 늦다. 4월 중순이 지나고 있는데, 이제야 노란 개나리꽃이 담장을 물들이기 시작하고, 벚꽃의 꽃망울이 가로수를 분홍빛으로 채색하려 한다. 따뜻한 남쪽 야산 나지막한 언덕 숲길에서 진분홍의 진달래꽃을 반갑게 만난다. 진달래꽃은 소월을 비롯한 많은 서정 시인들의 시의 소재로 애용되었다.

6.25이후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에 진달래꽃은 가난한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다. 필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갓 피어난 진달래꽃잎 한 잎 입에 물다가 화들짝 놀란 가슴이 되었다. 북한의 국화(國花)가 함박꽃나무라고도 불리는 목란(木蘭)인데, 한때 진달래꽃이 “빨갱이 꽃”이라 하여 북한의 국화(國花)로 잘못 알려지면서 진달래꽃을 좋아하면 친북 빨갱이로 오해받던 시절이 연상(聯想)되었기 때문이다. 분단 현실이 만들어 놓은 슬픈 현상이다.

오래지 않은 옛날에,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의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한 학년씩 진급하면, 운동장은 지금은 귀를 씻고 들으려 해도 들을 수없는 건강한 아이들의 놀이 소리로 가득했었다.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를 즐겨했다. 남학생들은 힘센 여학생에게 얻어터질 각오를 하고, 고무줄 끊어먹기를 했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여학생들은 먼저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를 함께 입을 맞춰 외우고 편을 갈라 고무줄을 발에 걸고 박자에 맞춰 뛰기 시작한다. 발목으로부터 시작되어 허리 머리를 지나 머리 위에까지 고무줄 장벽은 높아만 간다. 여학생들은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찌르자 오랑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고무줄놀이 노래로 부르며 요즘의 체조선수 못지않게 유연하고 날렵하게 고무줄놀이를 하였다.

물론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가자”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나의 살던 고향은”의 동요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어린아이들 입에서 무서운 노래를 신바람 내며 부르게 되었을까? 분단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우리의 현실이다. 호전적인 노래들을 부르면서 무의식적으로 “반공(反共)의식”을 가슴 깊이 각인하는 효과가 있었다.

무엇이 지금 우리의 관심사일까? 어린 소녀를 겁탈하고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 전 국무총리의 수뢰에 대한 법원의 무죄판결,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요동(搖動), 종교계(宗敎界)의 꺼지지 않는 불편한 분열과 분쟁 소식, 교육계의 부도덕한 관행과 비리, 생태계의 이상 징후, 일본의 반복되고 집요한 독도의 영유권 주장, 북한의 금강산 관광에 대한 딴죽걸기 등 수 없이 많은 사건들이 시론의 주제로 손을 든다. 그래도 오늘의 국민적 관심사는 “천안함(天安艦)”이다. 아직 우리의 사랑하는 아들들 44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침몰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다. 혹여 이 속에 무서운 정치적 복선이 있지는 않는지 많은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매스컴은 신바람내고 있다. 이런 호재(好材)를 상업주의적 선정적 논리에 사로잡힌 언론이 놓칠 리 없다. 국가의 안보를 위한 비밀도 소용없다. 마구 속속들이 파헤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국민들의 성금을 이끌어내며 관심을 긍정적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 분단(分斷)이다. 휴전선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건이다. 그래서 질문하게 된다. 이 땅의 평화로운 통일의 날을 위하여 우리의 할 일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가? 비수와 같이 꽂히는 질문 앞에 세운다. 봄꽃 진달래꽃 한 잎이 가져온 연상(聯想)이 가슴 아프고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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