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79) 표제가 곧 저작권의 유력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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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79) 표제가 곧 저작권의 유력한 증거
  • 승인 2006.04.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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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교수<백석대 기독신학대학원>




누가복음을 강해함에 있어서 서두에 우선 우리는 저자에 관하여 잠시 언급할 필요를 가진다. 물론 진보주의자들은 복음서 저작권 문제와 관련하여 대체로 익명(匿名)성을 주장한다. 한 마디로 저자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 서신과 복음서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바울 서신의 경우 서두에 서신의 일반적 관습에 따라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힘으로써 저자를 알 수 있지만(참고, 롬 1:1, 7), 서신이 아닌 복음서는 이런 관례를 따르지 않음으로 저자에 대해 알 길이 막연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누가복음’이니까 당연히 누가가 저자가 아니냐고 반문할는지 모르겠으나, ‘누가복음’이란 표제(表題, title)는 처음 복음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붙어있지 않았다가 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누가복음이란 말은 누가의 복음이 아니라, “누가에 의한”[kata loukan]이란 뜻으로, 사실 저작권을 가리킨다.)


아마도 복음서 한 권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시간이 필요하였으므로, 그 저술 과정을 익히 보아 알았던 누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저작권을 가리키는 ‘누가에 의한’이란 표제가 애당초 불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복음서들이 그 사본들과 더불어 한 교회 내에서 함께 회람되고 유포되면서 비로소 대조의 필요성이 야기되어 후에 표제가 붙게 되었던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여기서 후대에 붙여진 표제는 초대교회가 임의로 덧붙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저자문제를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으로 후대에 초대교회가 왜 표제를 ‘누가에 의한’이라고 붙였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복음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표제를 붙였다고 한다면, 다소 생경한 누가란 이름보다는 더 유명한 사도들의 이름도 많았을 터인데, 구태여 잘 알려지지 않는 누가란 이름을 붙인 것은 역으로 누가가 참 저자임을 드러내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고대세계의 서책(書冊) 회람의 관습을 연구한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 마틴 헹엘(Martin Hengel)은 고대 세계에도 표제 없이 회람되는 책이 많지 않았음으로, 비록 애초에는 표제가 없었다 할지라도, 당대의 관습에 따라 적어도 저자를 알 수 있는 이른 시기에 표제가 복음서 본문에 덧붙여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교회의 전승을 따라 제 삼복음서의 저자를 사도 바울이 거론한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골 4:14)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누가는 이방인, 구체적으로 헬라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누가는 신약성경 저자 중 유일한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누가를 헬라인으로 간주하는 주요한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아람어 ‘아겔다마’를 본 방언으로 표기한 것(행 1:19), 셈족 계통의 멜리데 섬 주민들을 토인(야만, 롬 1:14)이라 표기한 것(행 28:2, 4; 여기서 야만이란 말은 유대적 명칭인 랍비란 칭호를 사용 안 한 것, 골고다 대신 헬라어 ‘해골’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눅 23:33), 예루살렘 입성 시 호산나를 생략한 것(눅 19:38) 등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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