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신약읽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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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의 신약읽기(16)
  • 승인 2005.01.1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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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와 광야 시험 이후 주님은 세례 요한의 체포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갈릴리로 내려갔다(4:12). 아마도 요한의 체포로 인해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피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주님은 이전에도 위험한 징조가 있을 때 갈릴리로 피신하였다(2:22-23).

요한이 체포된 이유는 마태복음 14장 3-4절에 언급되어 있는데, 그것은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그 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것으로 안디바를 비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피신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당시 헤롯 안디바는 유대만이 아니라 갈릴리, 더 나아가 요단강 저편(동편, nsjordan)까지도 다스리고 있었고, 따라서 헤롯의 지배를 벗어나려 취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물러났다”(12절)는 마태의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에서 이 단어가 쓰인 용례를 살펴볼 때, 한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거절당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유대인들에게 거절되었을 때 이방인에게로 넘겨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주님은 유대 지방에서 세례 요한의 체포로 인해 드러난 부정적 분위기를 피하여 복음에 열려있는 보다 우호적인 북쪽 갈릴리로 내려왔을 것으로 이해된다.


주님의 사역이 당시 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적지 않게 거주하던 갈릴리였다는 것은, 1장의 족보 이야기와 2장의 동방박사의 방문 기사에 이어서 마태복음의 보편성을 시사해 주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교 모티프는 마태복음 곳곳에서 발견된다; 8:11(“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12:18, 21(“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15:28(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 칭찬); 21:43(“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렇게 볼 때 갈릴리는 복음의 출산지이며, 이런 맥락에서 주님은 잡히시기 전 제자들에게, 다시 살아난 후 그들을 갈릴리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였고(26:32), 실제로 그 약속대로 다시 갈릴리에서 만났던 것이다(28:16). 그래서 주님은 아예 “갈릴리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26:69).



가장 종교적인 예루살렘을 피하여 가장 비종교적인 갈릴리에서 주님이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였으며, 그 과정에서도 종교적으로 유대인들로부터 배척 받고 멸시 받던 그곳의 이방인들을 포용하는 주님의 사역은 오늘날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견도 갖지 말고, 오직 모든 사람에 대하여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것을 가르친다고 하겠다.

이후 주님은 잠시 고향 나사렛에 머물다가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고 마태는 적고 있다(4:13). 복음서 가운데 주님이 “사셨다”고 표현된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곳에 주님이 친히 자신의 집을 소유하였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장모의 병을 고쳐준 베드로의 집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참고, 9:1, “본 동네”). 그리고 이제부터 가버나움은 주님의 사역 및 활동의 근거지가 되는 것이다(9:28, 13:1, 26; 17:25).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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