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바로쓰기 - ‘창립 기념’은 ‘설립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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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 바로쓰기 - ‘창립 기념’은 ‘설립 기념’으로
  • 승인 2007.03.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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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 바로쓰기 - ‘창립 기념’은 ‘설립 기념’으로


흔히 ‘교회 창립 제0주년 기념예배’라는 표제를 적은 예배당 옥내외의 현수막이나 또는 ‘기념 감사예배’ 순서지의 표제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창립’(창설)이라는 말은 시공간의 가장 원초적이며 발생적으로 시작된 ‘세움’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고 ‘설립’이라는 것은 이미 창립된 것을 시공간의 새로이 확장 또는 분화(分化)를 하거나 그 형세를 더하기 위하여 파생적(派生的)인 ‘세움’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 창립’이라고 할 때 그 창립의 근거는 멀리는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설하시고…”(창 2:8)나 “하나님 나라의 임재”(막 1:15, 마1 2:28,눅 11:20)라는 원리적인 말씀과 예수님이 친히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라는 선언된 말씀에서 ‘교회 창립’의 근원적인 기점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런고로 교회 창립권은 본질적으로 인간(교회)에게 있지 않고 주님께로부터 출발된 것이다.

다만 어느 때 어느 자리에 교회의 속성과 율령을 좇아 상황적으로 교회가 세워졌으니 ‘설립’된 것이므로 세운 날짜에서 1년 단위의 주기법으로 산정하여 어느 기간에서 어느 기간까지의 누적된 연수를 기념 단위로 설정하여 ‘설립 제0주년 기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교회 창립 기념 예배’는 ‘교회 설립 기념 감사예배’로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는 ‘지금부터’로
목회자들 중에는 ‘예배’나 ‘회의’의 시작을 선언(개회사)할 때 “지금으로부터 0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지금으로부터”는 어떤 상황(사건)이 지난 어느 시점에서부터 “거쳐 온 출발점”을 나나낼 때 쓰는 말이다.

예컨데 30년 전의 일을 되새겨 그 출발 지점을 회고하고 되돌아 소급(遡及)하고자 할 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라고 쓸 수 있는 말이고 “지금부터”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가 되는 바로 이 시간, 현재, 시방, 이제 곧(이제 막) 등의 시제를 나타내는 말로써 어떤 일의 바로 시작 시점(지점)에서부터 미래 시간으로 향하는 상황의 출발점을 선언적으로 알리는 것이니 “지금부터 예배(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쓸 수 있는 말이다. 즉, 현재로부터 이후로 향함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이므로 “지금으로부터 예배(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는 쓸 수 없는 말임을 유념해야 한다.

‘부활’은 ‘다시 삶’으로
강단 설교자들 중에는 성경 중에 죽었다가,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에 의하여 다시 회생된 사람들을 지칭할 때 “주님의 능력으로 부활하게 되었다”라고 쓰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성경에 죽었다가 다시 살림을 받은 사례를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딸”(마 9:18~26), “욥바의 다비다”(행 9:36), “드로아의 청년 유두고”(행 20:9~11), “베다니의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요 11:38~44), “나인성 과부의 아들 ”(눅 7:12~15) 등이 있는데 이들을 인용할 때나 설교 본문으로 선택하고 우리의 부활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실증을 예시할 때 이들의 다시 살아남을 ‘부활’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큰 착오이다. “다시 살아 남”과 “부활”은 큰 차이가 있다.

“다시 살아남”은 삶의 일시적 연장이요 죽음의 일시적 유보이며 생물학적 회생으로써 언젠가는 또다시 죽어야 할 것임에 비하여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에 근거를 둔 것으로써 역사의 종말에 전역사에 걸쳐 살았던 의로운 자들이 다시 살아나 영원한 생명과 영화로운 몸이 되어 영원토록 영존하는 새로운 부활 생명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누구도 그러한 부활을 한 적이 없는 역사의 종말에 있을 위대한 사건이다.
주님의 부활 이외의 그 어떤 죽음에서 깨어난 사건도 부활이라는 말을 쓸 수 없고 다시 살아났다는 표현으로 부활과 구분해야 한다.
 


김석한교수(기독신학 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