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일반인 어울려 그리스도의 복음·사랑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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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일반인 어울려 그리스도의 복음·사랑 전한다”
  • 이석훈
  • 승인 2009.02.1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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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28주년 맞아 임직식 갖고 장애인 사역 확장하는 ‘신망애교회’

1981년 설립 후 3개 복지법인 확장 ‘사랑의원자탄운동본부’ 등 사랑 실천 앞장

‘노래선교단’ 활동에 큰 감동과 도전…복지재활병원사랑실천학교 등 설립 목표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위치한 신망애교회(담임:김양원목사,-www.shinmang.org)가 지난 15일로 창립 28주년을 맞아 임직 감사예배를 드리는 한편 산하 3개 복지 법인들의 사역을 더욱 확장시켜 나가기로 했다.


# 교회 내 3개 복지법인 운영 큰 축복

신망애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복지법인 내에 있으면서도 일반 교회처럼 지역에서도 일반인들이 함께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 450~500명이 매주 예배에 참석하면서 각종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5일 드려진 임직예배는 복지재단 직원들 17명이 장로와 권사로 임직받아 그 의미를 더했다.

이날 예배는 경기노회 주관으로 노회 서기 이남진목사의 사회로 노회장 허성재목사가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일꾼’이란 제목으로 설교했으며, 정인찬 고영훈 노순태 손재흥목사 박춘화전도사 등이 순서를 담당했다.

신망애교회는 일반교회로 시작해 장애인들을 전도하다가 장애인교회가 된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서울 종암동에 개척한지 두 달 만에 5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성장을 했다. 1981년 4월 19일 부활절에 색달걀과 떡 등 정성껏 선물을 준비하여 안요한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삼양동 새빛재활원을 찾아 위문행사를 가졌다.

김양원목사는 예배를 드리는 도중 장애인선교를 향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가슴에 임함을 느꼈다. “장애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후 김 목사는 장애인들을 만나기만 하면 복음을 전했다.

전도를 받은 장애인들은 거의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교회에 가고 싶어도 불편해서 못갑니다. 걷지도 못하고 차도 없는데 어떻게 갑니까?”

장애인들의 딱한 사정을 알고 택시를 대절해서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노숙하던 장애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으니 역한 냄새 때문에 성도들의 얼굴이 찌그려진 것이다. 차츰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쌀쌀한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장애인들을 노숙하던 장소로 데려다 주기가 너무 안쓰러워 교회에서 자도록 했다. 당시의 교회당은 장판을 깐 마루바닥이었기에 이불만 있으면 자는데 불편이 없었다.

이것이 김목사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신망애재활원의 시초가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이불이라도 덮어 춥지 않게 하기 위한 마음에서 시작된 일인데 소문을 들은 장애인들이 몰려들어 금세 20명이 넘었다.


# 10년 넘게 이어온 ‘양친가족만들기’

장애인들을 돌려보내고 물질과 마음으로만 선교를 하자고 요청하던 성도들의 권유를 담대히 물리치자 돌아온 것은 개척멤버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 것이다. 성도들의 헌금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장애인들을 뒷바라지 했었는데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 29절의 말씀으로 김 목사를 위로하셨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쌀이 생기거나 버스비가 없는데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장애인선교를 위해 주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었다.

현재는 장애인과 일반인이 절반씩 차지하면서 교회의 모든 구조는 일반교회와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다. 26개의 구역이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구역예배를 드리며, 주일학교와 학생회, 청년회 등이 모임을 갖고 있는 가운데 각종 성경공부와 기도회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매일 저녁 6시부터 1시간 정도 갖고 있는 셀기도회에는 성도와 직원들이 퇴근 시간에 맞춰 교회에서 기도회를 갖고 있으며, 지금은 복지재단 내 직원들이 팀별로 기도회에 5~10명씩 돌아가면서 기도하고 있다.

신망애교회는 장애인과 재가독거어르신들을 찾아가서 섬기고 있다. 20년째 계속된 이 사역은 시골지역에서 혼자 힘겹게 살아가는 장애인과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난방비를 지원하는 한편 반찬을 전달하고 청소와 집수리까지 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사역은 ‘양친 가족만들기 운동’으로 발전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직원, 장애인가족이 하나의 가족을 이루어 부모가 없는 젊은이에게는 부모를 만들어 주고, 또 자식이 없는 노인들에게는 소중한 자녀를 만들어 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양친 가족만들기 운동도 10년을 넘어섰다. 1년에 한 번씩 양친 가족캠프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120명이 제주도로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 노래선교단의 찬양 간증은 ‘은혜’

이와 함께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들을 지원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 예로, 신망애복지재단 내에 6명의 새터민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함께 섬기고 있다.

또 하나의 사역은 1년에 한차례씩 희귀병에 걸려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평균 8천여만원이 소요되는 이 사역을 위해 교회예산 및 후원금과 함께 특별 프로그램 사업으로 바자회와 일일찻집 등을 전개해 충당하고 있다.

신망애교회의 또 하나의 자랑은 ‘신망애 노래선교단’이다. 장애인과 일반인이 각각 6명씩 모두 12명으로 신디와 기타, 베이스, 플룻으로 구성된 노래선교단은 1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가평청소년수련원을 찾아 찬양하고 간증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인성교육훈련 차원에서 실시한 이 프로그램은 10년을 넘어 이제는 수련원의 가장 주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또한 개교회로 초청받아 찬양과 간증을 하면 성도들은 그 어떤 설교보다도 감동을 받아 불평만 하던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바르게 신앙생활 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 직업재활시설 운영
 그 예로, 2004년엔 미국에서 방문한 비행청소년들이 이들의 찬양과 간증을 듣고 변화돼 그 모습에 감동한 부모들이 초청하여 미국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신망애교회는 사랑의원자탄운동을 지원하면서 ‘사랑의 선서’로 4가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첫째,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내가 먼저 사랑하겠습니다. 둘째,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셋째, 아무리 힘든 환경이라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겠습니다. 넷째,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며 정성껏 섬기겠습니다.)

신망애교회는 본부격인 사회복지법인 신망애복지재단을 비롯해 1999년 경기도 이천에 설립된 엘리엘동산, 2005년 남양주시 수동면에 설립된 사랑과평화복지재단 등 3개의 복지법인을 운영하면서 ‘내일의 꿈’을 꾸면서 힘을 모으고 있다.

▲장애인들과 지역사회 소외 계층을 위한 복지재활병원 건립 ▲장애인들의 권리증진과 인권실현을 위한 하드웨어 구축 ▲지역사회와 장애인과 함께 하는 문화, 체육, 여가시설 설치 ▲사회복지인과 자원봉사자를 위한 ‘사랑의 실천학교’ 건립 ▲시설 종사자의 능력 향상을 위한 지원센터 건립 ▲사랑의 실천운동 전국적 확대와 북한동포장애인 지원사업 전개 등을 실현하기 위해 신망애교회 모든 성도들은 오늘도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제2의 사랑의 원자탄 되는 일에 여생 바칠 것”


● 김양원목사


“전 재산 100만원 보증금으로 13평 판잣집을 얻어 시작한 이래 28년이 흐른 지금 600여명의 장애인 가족과 직원들이 함께 행복을 꿈꾸어 나가는 신망애복지재단과 엘리엘동산, 사랑과평화복지재단이라는 세 개의 복지법인과 사랑의원자탄운동본부로 성장케 하신 하나님께 오직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15일 신망애교회 설립 28주년 감사예배를 드린 김양원목사는 이 모든 과정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면서 신망애의 역사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역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양원목사는 신망애교회 설립 28주년을 맞아 추락한 기독교의 위상을 회복하는 일에 중점을 두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개교회주의에 빠져있고 연합하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각성해야 한다면서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일 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손양원목사가 자신의 자식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아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랑의 원자탄’이 되었던 것처럼 김양원목사는 사랑의원자탄운동본부를 만들어서 그 일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손양원목사 일대기를 다룬 연극 ‘용서를 넘어선 사랑’을 만들고 공연하는 극단이 사랑의원자탄운동본부와 함께 활동하기를 약속함으로써 이 연극을 통해 우리나라에 사랑실천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제2의 사랑의 원자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포부도 품고 있다.

김양원목사는 농사짓는 부모에게서 일곱 번째로 태어난 장남이었다. 누님 여섯 중 두 누님의 사망에 이어 소아마비로 장애를 입은 것이다. 어린 시절 갖은 설움과 고통 속에 성장하던 그는 인권침해의 참상을 직접 느꼈다.

이후 1987년 설립된 인권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아 인권운동을 주도하던 김 목사는 편의증진법 제정에 결정적 기여를 함은 물론 시설 입소 장애인 10만원 월급 파동을 저지하다가 2000년 정부로부터 심한 감사를 받기까지 했으나 전화위복이 돼 지난해 9월 이명박대통령이 임명한 첫 인권위원에 취임하여 3년의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김 목사는 인권위원으로서 중도를 유지하면서 정파를 떠나서 오직 인권만 실천해 보겠다는 자세로 일하고 있으며, 인권위원으로서 받은 보수 전액은 한 푼도 빠짐없이 사랑실천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김양원목사는 교회 설립을 통해 목회자로서 영혼구원을 실천하고 있음에 감사하면서 일반 사람들이 1개의 사회복지법인을 운영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3개의 법인을 설립하여 복지서비스를 실천하게 됨을 거듭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은 물론 직원들에게도 강조하는 것은 법인은 어느 누구 개인의 것이 아니기에 공법인화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적임자에게 맡긴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인권위원으로서 하나님께서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믿기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일에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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