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아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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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아서 행복합니다”
  • 윤효중
  • 승인 2008.03.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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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몸으로 양로원 찾아다니며 찬양과 웃음 전하는 김 민집사

“세상의 빛은 잃었지만 눈부신 하나님의 빛을 만났습니다.” 

한 때는 한국 개그계를 이끌어갈 촉망받는 젊은이였던 김민집사(동명성결교회ㆍ신용만목사).

그는 지금 온전치 못한 시력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 오히려 전보다 더 온전한 삶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현재 김민집사는 친형제와 다름없이 20년 이상 함께해온 강길성씨,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김호평씨와 함께 ‘늘푸른샘’이라는 봉사단체를 결성해 이웃에게 작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세 사람 모두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주머니를 털어 한 달에 서너차례 이상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양로원과 복지시설을 찾아 노래와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천분의 일의 행함만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 할 수 있어요. 특히 어르신들에게 봉사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뜨거운 일회성 봉사보다 미지근할지언정 꾸준해야 해요. 일회성에 그치는 봉사는 오히려 어르신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어요.”

동양방송(TBC) 개그맨 2기 출신의 김민(55)집사는 1980년 동양방송 공채 개그맨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동양방송이 KBS에 흡수되면서 개그맨으로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들어오는 단역은 대본이 겨우 두 세줄 분량이었다”며 지난 어려웠던 시기를 회상하는 김민집사.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다. 비록 밤무대에 오를지라도 그 열정만큼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도 잠시 쌓여가는 빚과 생활고 그리고 스트레스들이 몸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1년 동안 하루하루를 술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당시 심정을 짐작케 하는 한마디이다. 이어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당뇨합병증으로 인해 녹내장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하여 시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왼쪽 눈도 백내장으로 인해 실명에 가깝게 됐다. 이러한 계속되는 좌절과 절망을 겪으면서 그는 세상의 나락으로 떨어져만 갔다. 매일 세상을 원망했다는 김민집사.

그러던 그가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는 12살 위인 친 누나로부터 2년 동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엽서를 받으면서부터였다. “할렐루야! 샬롬으로 시작하는 누나의 엽서에 처음에는 무시하며 쳐다보지도 않았죠. 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2년 동안 저의 우편함에 놓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이리도 권하는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죠” 이렇게 그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시작됐다.

2001년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지만 한쪽 눈은 실명. 다른 한 쪽 눈마저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읽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목사님의 설교는 당연히 이해 할 수 없었고 예배시간에 졸기 일 쑤 였다. 그럼에도 한 주도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했기 때문에 ‘출석 성도’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도대체 목사님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도통 알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때는 그저 의무감으로 출석 했죠 뭐…” 말끝을 흐리는 김민집사는 목사님께 죄송했을 따름이라고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꼬박 9개월을 교회에 출석했을 때 새로운 사역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9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어요. ‘사랑하는 아들아! 어찌 내 말을 거역하느냐’, ‘아들아! 너로 인하여 나를 증거케 하겠노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죠” 이때 처음으로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귀가 트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마치 제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느낌이었어요. 눈물도 하염없이 쏟아졌어요.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이었죠.”

그 후 김민집사의 생활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말씀이 더 없이 소중한 영혼의 양식이 된 것이다. “나의 영혼에 하나님이 쏙!쏙! 들어오기 시작 하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저의 양식이 된 것이죠. 또한 말씀 중에 가장 크게 다가 온 것이 있었어요. 바로 ‘섬김과 나눔’이었죠”라고 고백했다.

이때부터 김민집사의 ‘섬김과 나눔’의 실천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종로의 종묘공원에 산책나온 어르신들에게 사탕 2~3개씩 나누어 드리며, 성대묘사를 통해 웃음을 드렸다는 그는 “내가 할 수 있던 작은 재주밖에 드린 것이 없어요”라며, 그 당시 백발이 성성하신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나의 달란트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구체적 사역을 느꼈습니다.”


▲ 김민집사에게 끊임없이 선한 영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신용만담임목사와 함께.

김민집사가 출석하고 있는 동명성결교회의 담임 신용만목사는 김민집사에 대해 “자신의 건강, 개인사정 보다는 어려운 어르신들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합니다. 항상 자신의 것을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는 분이죠. 한마디로 하나님의 복음사역의 도구로써 쓰임 받고 있는 것이죠. 마치 바위 같은 굳은 의지로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라고 그의 칭찬에 여념이 없었다.

사랑과 믿음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김민집사는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줄 것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줄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베풀 수 있을까 고민하는 김민집사야 말로 진짜 부자인 것이다.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건널목 건너기가 제일 무서워요. 그나마 겨우 사물을 분간할 정도이던 왼쪽 눈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이제는 코앞에서 봐야 분간할 수 있는 정도거든요. 뭣모르고 건널목을 건너다가 참 많은 욕을 먹었어요. 하지만 그분들의 잘못은 아니에요. 제가 덩치도 있고 겉으로 얼핏 봐서는 정상인처럼 보였을 테니 말이죠. 하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성경책을 못 읽는다는 사실이 가장 아쉬워요. 성경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시력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인기도 명예도 대가도 없지만 그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대가 없는 봉사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박웃음 짓는 것을 보면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까지 기쁘게 봉사할 것입니다.”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복음사역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김민집사는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더라도 봉사활동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복음사역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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