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던 맨발의 아버지가 이제는 제 인생의 모델입니다"
상태바
"부끄러웠던 맨발의 아버지가 이제는 제 인생의 모델입니다"
  • 정재용
  • 승인 2008.02.28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맨발의 전도자' 고 최춘선 할아버지의 장남 최바울 목사

지하철 3호선. 푹푹찌는 무더위를 뚫고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맨발이었다. 굳어지고 갈라진 맨발로 그는 지하철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계절이 바뀌고 한파가 몰아친 어느 겨울날, 그 노인은 여전히 맨발이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외치며 죽는 날까지 거리를 배회했던 맨발의 가엾은 노인을 바라볼 때마다 ‘과연 저이의 자식은 누구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그가 죽고서야 한 다큐감독에 의해 그가 목사이자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 최춘선목사’. 그가 죽은지 7년 남짓. 남아 있는 그의 가족이 궁금했다. 자녀들에게 최춘선목사는 어떤 아버지였을까. 지금 그들에겐 무심히 거리를 벗삼은 아버지의 기억이 어떻게 남아 있을까 알고 싶었다. 호기심으로 만나본 최춘선목사의 장남 최바울목사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갈라져 피가 나오는 발에 깊이 박힌 유리조각을 빼내며 “이제 그만 나가시라” 애원했지만 아버지의 열정을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아들은 ‘아버지의 맨발’을 닮고 싶어한다.

 

“아버지 죄송해요. 얼굴은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닮았는데 발은 닮기 힘들 것 같아요.”

2004년 ‘맨발 할아버지’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고 최춘선 할아버지의 장남 최바울 목사(동그라미 유아심리연구소)가 전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고백이다.

맨발의 전도자로 살다가 2001년 주님 곁으로 떠난 맨발 할아버지. 3년 뒤 어느 다큐멘터리 감독의 카메라에 담겨있던 영상이 전파되며 세상을 감동시킨지도 어느 덧 4년이 지났다. 거렁뱅이 예수쟁이에서 맨발의 천사로 세상을 감동시킨 할아버지의 사역은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 시대 참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어주고 있다.

# 천국에서도 전도하시는 아버지

▲ 장남 최바울 목사
돌아가신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과 DVD, 책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할아버지. 지난 21일 찾아간 한남동의 동그라미 유아심리연구소에서 최춘선 할아버지가 아버지임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를 만났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어서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라는 음성과 모습은 “어디서 봤더라?”라는 의문을 잠시 일으켰다. 맨발 할아버지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한 최바울목사.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유아심리를 연구하며 유아교육 전문프로그램과 사역자를 양성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자리가 더 커져있었기에 ‘맨발 할아버지’에 대한 물음에 기억을 더듬는 최목사의 눈시울은 촉촉해졌다.

“신앙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죽기까지 몸소 실천하셨던 분이에요.”

목이 매였는지 말을 잠시 아낀 그는 생전에 육신의 고통까지도 견뎌가며 전도에 힘썼던 아버지의 모습을 전했다.

“기력이 다하신 아버지께서 한번은 식사 중에 ‘아가 숟가락 좀 가벼운거 없니?’라고 하시는 거에요. ‘얼마나 기력이 떨어지셨으면 숟가락이 무겁다고 하실까’하고 맘이 아팠지만 아버지의 전도는 막을 수가 없었어요.”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전해야만 했던 맨발 할아버지. 십자가에 빚진 자 된 그의 마음속에는 부인과 자식은 물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사명감과 열정이 자리 잡아 강직한 전도자의 삶을 그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 조금의 의심없는 믿음의 소유자

“아버지는 내일 일은 절대로 걱정하지 않는 분이셨어요. 당장 내일 먹을 쌀이 없어도 전부 나눠주시고, 새 옷을 사다드리면 밖에 나갔다 들어오실 때 다 떨어진 헌옷으로 바꿔 입고 들어오시고, 심지어는 ‘바울아 너는 따뜻한 옷이 또 있지?’라고 하시며 제 잠바들도 모두 나눠주셨으니까요.”

당시 고생을 많이 했지만 부족했던 부분들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항상 채워주셨음을 전했다.

“한번은 다음날 아침에 먹을 쌀을 전부 나눠줘 어머니께서 발을 동동 구르시고 계신데 지방에서 한 성도가 첫 수확한 쌀이라며 새벽차로 올라와 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어요.”어린 마음에 자신의 옷이 하나 둘 없어질 때 마다 속상했었다고 전하는 최목사.

“중학교 때는 동생들을 모아놓고 ‘아버지가 예수를 믿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니 우린 절대로 예수 믿지 말자’라고 했던 때도 있었어요. 김포 일대의 땅이 대부분 아버지 소유였고 자동차가 다섯 대나 있었는데 모두 나눠주고 개천 다리 밑에서 살다가 쫓겨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었던 것 같아요.”

독립운동을 하셨던 아버지가 도장하나만 찍으면 증손자까지 4대가 학비 지원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터라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서류를 위조해가며 받아내려는 독립유공자 자격을 ‘나라가 반쪽인데 그 돈을 받을 수 없다’며 끝까지 도장을 찍지 않으셨어요. 목숨을 걸고 지키셨기에 대한민국을 지독히도 사랑하셨죠.”

동생들을 모아놓고 ‘예수 믿지 말자’던 사춘기 시절의 상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모두 채워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인도해주셨기 때문이다.

# 하나님께 위탁하신 가족의 삶

‘예수 믿지 말자’던 다짐이 ‘오직 예수, 오직 기도’로 바뀌어 버린 사건도 있었다. 모든 재산을 다 나눠주고 쫓기다가 생계를 위해 어머니와 미술학원을 열기로 했을 때였다.

“미술학원 첫 입학식 때였는데 사회를 맡았던 저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 거에요. 교회도 아니고 기독교학원도 아니라 망설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바울아! 너는 그거도 못하니?’라는 불편한 마음을 심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큰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드림으로 제1회 동그라미 미술학원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기도를 드렸죠. 아니나 다를까 4명이 바로 그 자리를 떠나버렸어요. 그런데 다음날 하나님께서 8명으로 채워주셨어요.”

그 이후로 항상 기도를 하며 월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미술학원이 됐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 하나님을 빼고는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라는 그의 고백은 모두 기적이고 이적뿐이라 동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는 딸을 키우며 아버지의 자리에 있는 그에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저도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께서 많이 외로우셨을 것 같아요. 늘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제가 친구 같은 아들이 되어드렸어야 했는데…”

가정에서 성경이외에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던 아버지를 너무 높이만 바라봤던 후회스러움이 최목사에게 밀려왔다. “아버지께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던 거에요. 자신보다 더 잘 키울 수 있는 하나님께 자식들의 교육을 위탁하셨던 거죠.”

# 복 받은 무소유와 희생의 삶

자녀들은 하나님께 위탁하고 나라를 위해서 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몸 바쳐 싸움을 하던 최춘선 할아버지. 버스기사에게 떠밀려 골반 뼈가 부서져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고통의 눈물을 보이면서도 전도를 멈추지 않았고, 두꺼운 발바닥에 유리조각이 박혀 피가 흘러도, 예수쟁이라는 어떠한 핍박도 할아버지에게는 아무런 염려가 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었는데 마지막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아버지의 임종의 모습이었어요.”

친구의 연락을 받고 인터넷에 올라온 아버지의 동영상을 보고 밤새도록 울었다는 최바울목사. “두꺼운 발바닥에 박힌 유리를 핀셋으로 수도 없이 빼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아들인 저도 몰라드린 부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아들의 결혼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으셨다는 최춘선 할아버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맨발의 사랑으로 지켜낸 맨발의 천사. 그런 아버지의 삶을 닮아가고자 하는 아들의 마음이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하나님께 위탁하셨기에 은혜 가득한 무소유의 삶으로 사랑을 전하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