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정의에 어긋난 결의는 무효
상태바
법률칼럼-정의에 어긋난 결의는 무효
  • 승인 2001.11.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단체 내부결정이라 해도 절차상 문제가 있거나 정의에 어긋나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어 법원에 의해 ‘무효’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지법 민사합의 27부(황성재 부장판사)는 10월25일 경기도 수원시 모 사찰 주지 후보였던 정모씨(51)가 “불공정하게 진행된 주지 선거가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며 대한불교 조계종을 상대로 낸 원인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종교단체의 결정에 대해서는 자치권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절차가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거나 정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정될 경우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며 ‘무효’를 주문했다.

재판부는 “주지 후보자로 선출된 김모씨가 선거 직전까지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었고 선거 당일 종단 간부들이 유권자들 앞에서 경쟁 후보인 정씨를 집단 폭행하는 등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으므로 공정한 선거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며 2000년 4월 실시한 선거에서 당선되고 이를 조계종 총무원이 주지로 임명했으나 “폭력을 사용해 치러진 선거는 무효"를 주장하며 소를 제기한 정모씨가 승소했다.

법원이 심사할 수밖에 없는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첫째는 절차상 문제다. 즉, 교회나 노회, 총회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간이 좀 걸려도 정해진 절차를 준수하는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해 놓을 필요성이 부각됐다.

둘째는 정의(正義)다.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 곧, 사회 전체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구성원의 기회나 권리를 공평하게 보장하는 일’이라는 정의의 사전적 뜻이다.

필자는 지난 6월28일 종로5가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예장통합총회 규칙부가 개최한 공청회에 논찬자(패널)로 나서서 제비뽑기의 위헌성과 아울러 총회에서 결정되어 입법화한다 해도 만일의 경우 법원에 소가 제기된다면, 법원에 의해 정의에 어긋나고 민주사회 통념에 반하므로 무효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제시한 바 있다.

보통 종교단체 내부의 결정은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이 통례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정의에 어긋나고 총회 헌법이나 규정에 배치되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사법 심사 대상임을 판결로 밝혔으므로, 총회나 교회는 종교의 자율성을 보호받기 위해서도 의사결정 과정의 합법적 절차와 투명성의 확보는 물론 규칙이나 정의, 민주사회 통념에 일탈치 않는 ‘결의’여야 한다.

이길원(교회법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