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언론, 건강한 교회와 동반자 역할 감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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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언론, 건강한 교회와 동반자 역할 감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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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1.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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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주목사<한국교회언론회 대변인>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은 ‘권력과 언론’에서 성역 없는 보도와 가차 없는 비판을 언론의 길로 얘기했다.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의 권력이라고도 일컫는다.

국민들은 언론이 권력 기관이라는 인식에 대하여는 유쾌해하지 않으나, 언론이 힘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국가 권력과 재벌이 합작하면 국가경제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결국 국가경제를 어렵게 한다. 국가 권력과 언론이 유착하여 언론이 권력의 시녀가 된다면 국민의 눈과 귀는 멀게 된다. 결국 왜곡된 정보로 인하여 정보가 국가 전도(前導)에 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언론은 진실보도에 의한 권력 감시자로서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초병(哨兵)이 눈을 감으면 부대는 적에게 습격을 당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언론도 그 사명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언론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정확한 정보 제공과 사실보도에 의한 권력의 감시자와 민심의 대변자 역할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사회적 공기(公器)이다. 교계 언론은 사회 언론에서 기대할 수 없는 다른 기능이 추가된다. 사회 언론이 국가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면 교계 언론은 교회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 이유는 교계 언론의 태생이 교회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위한 도구 즉, 선교를 위한 공기(公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언론의 고유한 기능인 진실보도를 통한 감시자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교회와 교계 언론은 동반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교회는 교계 언론을 선교의 도구로 귀하게 여겨야 한다.


교계 언론은 방송과 신문으로 분류된다. 방송은 라디오와 TV 그리고 인터넷 방송이다. 신문은 교단 신문과 초교파 신문으로 분류한다. 대부분의 교계 신문은 주간지이며 격주간지도 있다. 그런데 최근 교계 언론의 문제성이 크다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것은 먼저 교계 신문의 난립성이다.


최근 5년 사이에 기독교 신문은 11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교계 신문의 난립은 전문성의 부족과 한정된 독자로 인한 운영의 문제가 심각해진다. 교단 신문의 경우는 교단이 직영하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나 초교파지는 운영의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교계 언론의 건강한 성장은 교회의 건전성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이를 위하여 교회들은 언론에 대하여 새롭게 눈을 돌려야 한다. 선교라는 교회의 사명과 명분은 성도들의 헌신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교계 언론이 복음 전파에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은 아직 교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일부 방송사는 전파성도 강하고 해서 방송선교에 어느 정도 교인들의 동참을 성공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교계 신문에 대하여는 광고 매체 정도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신문은 방송이 가지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 신문 특성상 정적이어서 전파성이 약하기는 하나 흘러가지 않고 지워지지 않아서 기록된 내용이 오래 지속되어 방송과 다른 장점이 있고,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복음 전파의 유용한 도구가 된다.


이제 교회는 교계 언론을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이며 선교를 위한 교계의 공기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해외선교를 하듯이 언론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교계 언론사들도 끊임없는 자기 스스로의 경쟁이 있어야 한다. 즉 기사의 전문성과 경영의 합리성을 주문한다.


교계 언론은 분명 사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사명을 다하고 자리를 지키는 그 헌신의 짐을 교회들이 함께 나누어지고 가야 한다. 그 이유는 교회와 교계 언론은 복음을 위한 동반자 관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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