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P대표 김요한 산교사 "나의 선교여정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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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P대표 김요한 산교사 "나의 선교여정은 이랬다"
  • 윤영호
  • 승인 2006.10.2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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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생명을 살리는 일  시간과 물질, 기도지원에 적극 나서야”

지난 22일 백석대학교회 주일설교서 선교일화 감동 전달

▲ 김요한 선교사는 수차례 구속되어 심한 구타로 기억감퇴증을 겪었으며, 지난 91년부터 중앙아시아와 쿠르드족 선교사로 사역했다. GMP는 240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단체다.

우리나라 선교단체인 GMP대표 김요한 선교사<사진>가 자신의 겪은 15년간의 선교체험을 간증형식으로 털어 놓았다.

그는 이슬람국가로서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어렵다는 중앙아시아 T국에서 10년 동안 사역한 가운데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겪었으며 기독교 전도와 이슬람모독 혐의로 세 번 구금되는 등 어려운 상황을 거쳤다고 회고하면서 하지만 늘 하나님의 도우심을 강렬하게 느낄 만큼 그의 임재는 너무나 확실했다고 증거했다.

백석대학교회(담임:장동민목사)가 교인들에게 선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오는 12월 첫 주까지 마련한 연속 강좌 ‘선교학 교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 22일 주일예배 설교자로 선 김요한 선교사는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굳게 믿은 요셉의 인생을 근거로 선교사역의 보람과 기쁨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김 선교사가 밝힌 일화 중 교인들의 가슴을 가장 뭉클하게 한 것은 ‘알리’라는 T국민의 개종에 얽힌 깨달음이었다. 그는 선교사 세계에서 ‘평생 한 명이라도 개종시키면 대단한 일’이라는 통용어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불과 2주일 만에 알리라는 사람을 개종시킨 줄 알고 우쭐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가 말한 줄거리는 이렇다.
 
"알리는 20여년의 중보기도로 구원을 얻은 것"
그는 우연히 만난 알리라는 사람에게 누가복음을 영화화한 2시간분량의 ‘예수’라는 비디오테입을 주었다. 밤새 영화를 본 그가 새벽에 전화를 걸어 “나 영화를 보고 두 번 기도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 선교사는 불과 두 시간 만에 기도했다는 알리의 개종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울 지경이었다고 했다. “영화 한 편에 개종했다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파송직후 거둔 엄청난 성과였다.

이같은 감격이 있고 난 후 김 선교사는 영국에서 열리는 선교대회 주강사로 초빙됐다. 그 사실을 들은 알리는 자신이 20여 년 전 영국에 있을 때 하숙했던 주인집 부부의 근황이 궁금하다며 그의 집 주소를 소개해 주었다. 대회를 마친 김 선교사는 물어물어 그 집을 찾았고 드디어 남편과 사별한 부인만을 만나게 됐다. 알리의 근황을 알려주는 가운데 김선교사는 기독교인이 됐다는 알리의 소식을 감격스런 마음으로 전해주었다. 그 때 그 부인은 말없이 눈물만을 계속 흘렸다. 의아하게 생각하던 김 선교사가 물었다. “왜 우십니까?” 그 부인은 알리의 이름을 몇 번 부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알리! 알리!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데 드디어 하나님을 만났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2주일 만에 개종시켰다고 의기양양하던 김선교사는 알리가 개종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20년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한 영혼이 주님에게로 돌아오는데 20년이라는 시간뿐만 아니라 그 노부부의 꾸준한 기도가 있었다”면서 “백석대학교회도 주님의 품을 떠난 뭇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면 알리와 같은 기적이 선교지 곳곳에서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고 기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김요한 선교사는 백석대학교회 교인들에게 T국의 방식으로 인사하는 방법을 소개해 선교지의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게 했다.

김 선교사는 기독교전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불법일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소극적인 전도를 해온 T국에서의 선교관행을 직접 깬 사람이기도 하다. 개인전도를 시도했다가 당국에 적발된 그는 하필이면 정부 산하 정보국 직원에게 전도를 했다가 구속되는 어려움을 당했다. ‘포교 위반법’이 죄목이었는데 3번의 공판과정을 거치며 최종 공판에서 ‘무죄’가 확정되는, 적어도 한국선교계에 있어서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3번의 구속에 이어 심한 구타로 기억력 감퇴라는 육체적인 고통을 당한 대가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창의적으로 할 것을 주문하며 현대인의 ‘흉내내는 삶의 허상’을 찔렀다. 특별히 삶 가운데 고난주심을 감사하는 자세도 잊지 말 것을 요청했다. 고난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교육훈련 방식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선교사는, 지난해 10월 GMP대표로 선출돼 귀국한 직후 자신의 모습은 거처할 집조차 없던 빈털터리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것이 채워지기 시작해 점차 안정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맞고 있는 현재의 풍족을 이렇게 설명했다.

“물질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나의 전부였고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물질이 하나둘씩 채워지면서 전부였던 하나님이 점차 일부로 변해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제가 처한 가장 큰 위기입니다. 백석대학교회 교인들은 서로가 위기에 직면하지 않도록 기도해주길 바랍니다. 특히 선교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물질을 내어놓으십시오. 젊은이들을 주님께로 내놓으시기 바랍니다. 영혼 구원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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