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대요? 왜 그랬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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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대요? 왜 그랬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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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7.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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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목사<초동교회>


가끔 지난 이야기를 꺼내어 화두를 삼으면, 과거 지향적 사람이라고 구박을 받는다.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바쁜데, 왜 뒤돌아보아 해묵은 이야기를 꺼내어 신경 쓰게 하느냐고 핀잔을 듣는다. 심지어 롯의 아내까지 들먹이면서 소금기둥이나 되려느냐고 험담 아닌 저주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징검다리를 건널 때 그것이 흔들거리는 것이었다면 뒤돌아 발을 물에 담그고 든든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바른 태도일 것이다.

지난 3, 4월 교계 신문에 도배된 기사가 있었다. 댄 브라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다빈치코드 영화 상영 반대”에 대한 것이었다. 마치 특집 기사인 것처럼 연일 신문의 많은 부분을 다빈치코드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 다빈치코드의 내용이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허구로 성경을 부정하는 영화는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이 주로 기사화되었다.

다빈치코드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도 했다. 역사를 왜곡한 억지 주장으로서 신성을 모독하고 혹세무민하는 내용이므로, 전 세계에서 4,000만권이나 팔리고, 한국에서도 200만권 이상이 팔리며 138주 동안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을 영화한 것을 기독교인들은 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다.

다빈치코드 영화가 상영되었던 5월에 이르러서는 상영을 저지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법들이 회자되더니,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막는 기독교’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심각한 침해 및 교회의 선교와 전도를 방해할 위험이 있는” 영화의 상영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상영금지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상영되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난리가 나고, 자신의 신앙에 회의가 생겨 교회를 떠난 신도들이 수만 명이 되었는가? 마치 종교 전쟁(?)이라도 일어난듯했던 지난날들을 회상해보면 너무나 조용하다.

우리 민족의 특징이랄 수 있는 냄비근성 때문일까? 밤잠 자지 않으며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을 응원했던 국민의 열정은 어디로 가고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K리그는 파리 날리는 운동장이 되는 것처럼, 하인즈 워드의 미식축구 MVP이후 반짝 했던 혼혈인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는 것처럼, “다빈치코드 영화상영 그 이후”를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한창 교계가 시끌벅적할 때 “왜 그런대요?” 질문한 젊은이가 있었다. 혹시 고도의 영화홍보전략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진단하기도 했다. 그의 판단은 “떠들수록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어디를 가나 시끄러운 예수장이들입니다. 소설과 영화로 흔들릴 믿음이라면 뭘 믿으시는거죠? 하나님이 웃으실 개그네요.” 이 젊은이가 다시 물었다. “왜 그랬대요?”

교계가 비상을 걸 때이다.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심각해지더니, 결국 통계에 의한 개신교 기독교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인이 급성장중인 것과 비교가 된다. 떠나는 이들은 교회에 대하여 실망해서, 교계지도자들에게서 존경심을 잃어서란다. 신도들을 무시하지 말라고 한다. 판단력 없는 어린 아이 취급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진리수호를 앞세워 오히려 진리에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진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신도들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세상이 교회를 무섭게 판단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신 차리고 예수님의 삶을 살아 세상으로부터 존경받는 교회를 이루어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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