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포퓰리즘적 유혹
상태바
설교의 포퓰리즘적 유혹
  • 운영자
  • 승인 2006.07.20 12: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엽 목사<기독교정화운동 대표>


근자에 많이 회자되는 포퓰리즘이란 말은 원래 1930년 프랑스에서 유래(문학적 대중주의-긍정적 의미) 되었으나 현대에서는 정치나 사회적인 의미로 사용 될 때에는 대중인기영합주의, 다시 말하면 대중의 인기를 이용하여 자기의 정치 또는 사회적 입지를 획득하고자 하는 권모술수적 의미로 사용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현대 우리 설교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가 이 포퓰리즘적 유혹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누구나 다 설교의 단에 서면 자기설교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설교에 빠져들기를 바란다.

때때로 조는 자가 발견되면 더욱 이런 유혹은 기승을 부리게 된다. 한바탕 웃기고 싶은, 그래서 눈이 번쩍 떠서 설교에 집중케 하고자 하는, 그래서 때로는 유머나 기괴한 예화까지, 심지어는 쌍 욕을 해서라도 감동을 주고자 노력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 오더라도 아직은 유죄가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어떻게든 재미있게 가슴속에 심어 주려는 노력이 왜 잘못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요새 인기있는 설교는 웃기는 설교라 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재미있고 졸립잖고 산뜻한 설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하지 않는가? ‘재미있다 들어보러 가자’ 이것이 또한 숫자적 부흥의 원인인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참으로 너무도 거룩해서 눈 하나 깜작 않고 들어야 하는 깊은 설교- 그렇게 되면 무슨 말을 듣는지도 모르면서 눈은 고정시켜야 하고 앉고 설수도 없고 그래서 설교가 끝나면 ‘후유’하고 시원한 깊은 숨을 내 쉬기도 하는 설교 이런 설교에 집착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런 고답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어려운 설교를 피하시기 위해서 자연에서부터 여러가지 비유와 가족관계, 이웃관계, 심지어는 장사하는 일 등도 인용하여 설교를 하시지 않았던가?

이렇게 해서 우리는 유머설교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자꾸자꾸 인기몰이식 설교에 빠지게 된다. 내가 한 설교에 아래에서 까르르 웃어주면 나는 더 신이 나서 더 웃기고 싶고, 더 웃으면 또 웃기고 싶고 그래서 듣는 이들이 웃음과 기쁨으로 집에 돌아가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근자에 인기 있는 설교자들의 특징은 웃기는 설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입심이 좋은 것도 또 하나의 매력이다. 말을 폭포같이 쏟아내는 사람, 대포 알처럼 크게 터트리는 사람, 유머를 일부러 연구하여 사용하는 사람, 심지어는 제스쳐를 연구하여 제스쳐로 한 몫을 보려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것을 일부러 훈련하는 훈련소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것을 너무 나무라거나 질책만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오죽하면 그런 노력들을 할 것인가. 문제는 설교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설교는 듣는이들의 마음속에 예수를 심어야 하고 예수인격을 깨우쳐야 하는 작업이 아닌가? 깨우치는 것도 모자라서 예수 실천의 방법과 그 결과에 대한 증언이어야 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나의 일상 생활에서 기억지 못했던 일들을 뉘우쳐 눈물을 흘리며 돌이키고 다시금 결심을 하여 예수실천, 예수인격의 자기화, 예수말씀 순종의 결단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예수가 내 삶의 중심에서 살아나야 하고 생활이 되어야 하고 또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체험적으로 교류함이 되어야 하고 생활적으로 예수가 할성화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본질을 잊어버리고 인기중심, 깜짝쇼 같은 설교가 당시에는 유효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빠져서는 않되리라. 설교는 성령님의 증언이어야 한다. 금일 한국의 설교자들은 이 포퓰리즘적 유혹을 피하여 주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종들이 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