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체험 위해 서울 지하철역 찾은 부산 브니엘 교회 청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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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체험 위해 서울 지하철역 찾은 부산 브니엘 교회 청년부
  • 승인 2001.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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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멍한 시선을 땅에 내려 깔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공허하게 하루를 보내는 노숙자들. 가족에게서 사회에서 버림받고 맨 바닥에 아무렇게나 몸을 맡겨버린 그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생명력 있는 감동의 눈물을 되찾게 해줄 수는 없을까.
자신에겐 꿈도 없고 희망도 없다고 믿고 있는 노숙자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부산 브니엘교회 청년들이 지난주 노숙자들의 삶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노숙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조금이나마 그들을 알아갈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3박 4일간 거리에서의 삶을 자청했다.

서울 영등포역과 안산역에 도착한 브니엘교회 청년들에겐 두려움이 앞섰다. 교회에서 매달 한번씩 부산역 노숙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 동참해 섬기기는 했지만 막상 그들과 더불어 지낸다고 생각하니 더럽고 지저분한 노숙생활이 부담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약간의 차비와 신분증뿐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식사해결도 못하는 노숙자와 다름없는 처지가 되어버려 피할 수도 없었다.

브니엘교회 청년들은 여느 노숙자처럼 역광장에 신문지를 깔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장시간 이동에 피곤한 몸을 뉘였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조금만 고개를 들면 보이는 길가로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 무심코 자기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도 놀라 뒤척이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잠든 도시에 부는 바람소리가 이렇게 크고 싸늘한지 미처 몰랐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게 됐습니다. 낯선 서울에서의 노숙 첫날밤엔 많이 떨렸어요.”차가운 새벽공기에 몸을 떨며 맞이한 둘째 날, 주위를 둘러보니 지하철역 안 곳곳에 적지 않은 노숙자들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이 널부러져 있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 덥수룩한 머리에 누더기를 걸친 사람 모두가 똑같은 모습이었다.

저들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보였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는 아주 작은 의지도 없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들은 시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관심도 없는 노숙자들의 무기력함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저렇게 사는 것일가. 뭐든 해보려고 하지 않고…,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칠까. 조금만 노력하면 저들도 구차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텐데….”

노숙자들에게 희망과 복음이 흘러가기를 기도하며 시작한 둘쨋 날 브니엘교회 청년들은 늦은 밤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 구경하며 허기진 배를 달래 보았지만 어서 빨리 집에 갔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배고픔에 못 이긴 브니엘교회 청년들은 지인(知人)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자 청년들은 편한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즐겨하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똑바로 바라게 보게 됐다. 노숙자 체험 이틀만에 연약해진 자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서야 비로소 생기를 되찾게 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불쌍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심하기도 한 노숙자들과 자신의 고상함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 위에 내려와 십자가를 지시고 죄 사했네~’

브니엘교회 청년들은 찬양으로 회개하고 노숙자 체험을 하고 있는 이유를 묵상했다. 잠시 고생하는 것, 남들이 해본 적이 없는 노숙자 체험을 마치면 또 하나의 신앙간증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속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하늘의 모든 권세를 모두 버리고 ‘나’를 위해 친히 미천한 곳까지 내려오신 예수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몇 시간만 버티면 이 생활을 청산할 수 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노숙생활을 허망하게 이어가고 있는 저들에게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셋째 날 브니엘교회 청년들은 용기를 내어 노숙자들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노숙자 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다가도 마약환자처럼 다시 노숙자로 신분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도움 같은 건 필요도 없고 바라지도 않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50세의 한 허름한 아저씨는 “내게 희망이 있다면 그저 빨리 죽는 것 뿐이야”라고 말해 청년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3년 전 공사현장에서 다리를 다쳐 생계수단을 잃고 노숙생활을 시작했다는 말, 못 먹어 힘은 없어도 술 마시며 기운 차린다는 말을 들으며 저들에겐 그 어떤 도움보다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밀려왔다.

브니엘교회 청년들은 예수님은 바로 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몸소 이 세상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소외되고 가난하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는지 알 것 같아요.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경험하는 것 모두 이웃을 섬기는데 있다는 것도요.”

설석환(부산대 1년) 청년은 이번 노숙자 체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삶을 무의미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을 이해하기 보다 비난하기 쉬웠던 자신의 교만함을 반성했노라고 말했다.

지하철역 광장 한쪽에서 브니엘교회 청년들은 노숙자들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렸다. 상처입어 좌절한 노숙자들의 아픔이 전해지는 듯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예수님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조금이나마 감당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셨듯 브니엘교회 청년들은 부산에서도 노숙자의 친구로 남아있겠노라고 다짐했다.

구자천기자(jcko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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