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 넘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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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 넘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다
  • 이현주
  • 승인 2006.06.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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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누비며 하나님 복음 전한 '윤영석선교사'
 

 

목포에서 뱃길로 6시간 거리에 위치한 신안군 하의면 작은 섬. 고작 150가구가 모여 사는 섬마을에 한 맹인이 찾아왔다. 그가 들고 온 것은 침술과 복음. 섬마을에 살았던 스무살 청년 윤영석은 그렇게 하나님을 처음 만났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좁은 길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여느 청년들처럼 방황했고, 하나님을 떠나 살기도 했다. 목자를 의심하고 술을 즐겨하며, 세상 쾌락을 따랐던 아들을 인내로 기다린 하나님은 그에게 대륙을 복음화하는 비전을 주셨다. 병을 고치는 능력과 말씀의 권능도 주셨다. 그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을 때가 있었을지언정 하나님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항상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윤영석’이라는 일꾼을 불러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맡기셨다.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가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중국, 하나님이 구원하실 대륙

중국과 국교가 체결되고 아직 선교지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지 않던 시절,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 중국 땅을 밟은 윤선교사. 10년 가까이 조선족과 현지인 사이를 오가며 복음을 전한 그는 중국선교에 대해 누구보다도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세계 선교사 파송 2위국인 한국교회는 중국에만 4천여명의 선교사를 포진시켜 놓았다. 윤영석 선교사 역시 “중국은 가장 중요한 선교지며 황금어장”이라고 이야기한다.


“처음 중국 선교사로 파송받고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구원만을 목표로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파송교회의 지원이 끊어졌습니다. 중국 성도들은 한국 목회자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바랍니다. 한국에서 선교사의 사역이 원할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후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선교사가 직접 기술을 발휘해야합니다. 침술이나, 농법의 전수, 경영 등 사도바울처럼 일하는 사역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기술이 있고 언어가 있다면 한족에게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중국입니다.”

윤영석목사는 중국 최초로 설교권을 부여받았고 당회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결국 한국교회의 지원부족으로 돈벌이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한국 물건을 중국 백화점에 내다파는 일. 그것이 윤선교사가 시작한 경영선교였다. 교회를 개척하고 목양을 하는 것과는 또다른 방법의 사역임에 틀림없었다.


“하나님 3년만 장사하겠습니다. 제가 번 돈을 모두 선교에 쓰겠습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시작한 장사는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처음 중국에 도착해서 겨우 6백원하는 월세가 없어 근심을 달고 살았던 가난한 선교사가 지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도전 ‘경영선교’

경제적 여유는 곧장 선교로 연결됐다. 27개 교회를 지원했고 장사로 쌓은 정부당국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선교사들의 비자문제도 척척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3년, 하나님과 약속한 기간을 지켰어야 했다.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잊고 있던 윤선교사에게 하나님은 크고 작은 채찍을 가하셨다. 두차례 강도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서 온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금전적 어려움에 처하고 말았다. 그 때서야 윤선교사는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았고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하나님의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는 그의 삶 곳곳에서 드러난다.

가난한 신학생으로 학업을 할 때,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속이 온전할 리 없었다. 어느날 맥없이 쓰러진 그는 위궤양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극심한 빈혈로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먹을 돈도 없는 신학생에게 수혈비용이 있을리 만무했다. 병원에서 쫓겨나고 삶을 포기한 채 누워있는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병든 신학생에게 일어난 기적

“윤영석 회개하라, 거듭나라, 회개하라.”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기도원을 찾았다. 모자란 피를 채워달라며 눈물로 기도하고 밤새 냇물을 떠 마실 때 하나님은 나약한 윤영석의 믿음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순간, 그의 피는 정상 수치로 채워져 있었고 상한 위장도 치유 받았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생명인데 불평 없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함만으로 사역에 임했어요. 저를 통해서 보여주신 기적도 셀수 없이 많습니다. 귀신을 쫓고, 병자를 치유하고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중국교회 사역자에게 진리를 깨우쳐 주는 일이 부족한 저를 통해 일어났지요.”

정치와 교회의 가교역할


중국 선교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윤선교사는 이번엔 정치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했다. 전 김대중대통령 부인 이희호장로와의 인연으로 새천년민주당 환경종교위원장을 맡았고 이후 열린우리당에서 통일정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노무현대통령 대선당시 “3천여명의 선교사를 안아달라”고 요청하며 종교와 정치의 가교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는 초중고교 상담사 배치를 제안했고 통일을 위해 종교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정치를 펼쳐 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정치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교사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지선교사를 위한 선교센터 건립과 노인복지센터 운영이 그의 비전이다. 선교현장에서 치열한 영적 사투를 벌였던 선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선교사들의 노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지선교사를 위한 비전

“지친 선교사들이 에너지를 얻고, 마음껏 소리쳐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리고 싶어요. 공산권에서 일평생 하나님을 전하다가 소진한 몸을 이끌고 고국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갈 곳은 어디입니까. 아무도 그들을 반겨주질 않아요. 이것이 한국선교의 현실입니다. 돈걱정 없이, 노후걱정 없이 쉬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숱한 체험과 사업, 정치까지 세상의 모든 분야를 경험한 저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선교사 복지하는 새로운 분야를 정착시켜 수고하고 지친 선교사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사역을 완수하겠습니다.”


금산에 3만7천 평의 부지를 마련한 윤영석 선교사. 앞으로 3년 뒤, 선교센터를 통해 선교사복지라는 새로운 사역을 전개할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현지선교사 풍부한 정보 보유 “민간외교관으로 활용해야”


첫 선교지로 중국은 선택했던 윤영석선교사는 중국선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자신의 사역을 토대로 똑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사역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예수와 함께 대륙을 달리며’라는 책에 담아냈다.

그는 다양한 인생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의 지식을 빌려보자.


“선교사는 단순한 종교인이 아닙니다. ‘민간 외교관’이예요. 외교인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현지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현지선교사들을 정부가 활용한다면 엄청난 외교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민간사절로 헌신한 선교사들의 노후도 교회만 책임질 수 없습니다. 정부도 안아야할 몫이죠. 통일도 마찬가지예요. 통일교육을 실시한 후에 공산권 선교사를 파송하면 그들이 훌륭한 통일자원이 되지 않겠습니까.”

선교사 노후와 안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윤영석선교사는 ‘충분한 지원’만이 결실을 거둘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것은 현장에 있는 선교사들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이요, 은퇴 선교사들에 대한 책임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에는 그의 체험과 비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지교회들의 모습과 복음전도의 현장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것도 재미난 부분이다. 또 중국선교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변화된 중국종교법과 중국어 회화를 첨부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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