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된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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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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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4.2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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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신부<성공회 서울대교구 교무국장>



용혜원 목사가 지은 시 중에 ‘사랑하면 산다는 것은’ 이라는 시가 있다.


사랑하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워할 때는 만나기만 해도 좋았다.

한 집 한 울타리에서

몸 섞고 마음 섞고 모든 것을 다 섞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가 자신을 버려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어야 하나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기다려 주고

서로가 서로를 보살펴 주어야 된다.

               <중간생략>

홀로 된 사랑은 슬픈 사랑일 뿐

서로가 서로의 빈 마음을 채워주며

우리라는 마음으로 하나가 될 때

사랑은 비로소 따뜻해진다.


그렇다. 정말 하나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께서 드리신 기도의 주제는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의 목적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기 위함’이다.


즉 예수님의 기도의 주제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셨듯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가 되는 유형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다고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다. 획일화, 표준화, 통일화로는 하나가 될 수 없다. 동질성의 회복만으로도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것은 주님께서 생각하신 하나가 아니다.

예수님과 하느님 사이에 형성된 관계는 서로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 하나인 것이다. 예수님과 하느님은 분명히 다르지만 서로를 향한 의지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셨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자’고 말할 때 그 하나 됨의 기준은 바로 ‘나’ 다. 내 생각, 내 습관과 전통, 내 바램, 내 믿음에 네가 따라와야 한다. 서로가 너의 장점, 특성, 성품, 성격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나에게 맞추지 않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서로 하나가 된다고 할 때 하나 됨이 누구에게 하나가 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세상에서는 강자에게 하나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권에서 상생의 정치를 하자는 말을 한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전에도 상생의 정치를 하자는 말을 많이 했지만 상생의 정치를 한 예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상생의 정치를 하자고 하면서 서로를 인정하거나 존중하기 보다는 내 뜻대로 너희가 따르는 상생을 말한다. 교회일치를 말할 때도 대형교회와 대형교단이 중소교단을 대하는 태도도 세상의 정치권과 다를 것이 없다. 상생의 정치를 하려면 다수당이라고 힘으로 밀어 붙이는 정치가 아니라 새로 대화와 타협을 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소수의 의견이라도 존중하면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로 통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동질성의 회복이 아니라 다른 점을 포용하는 마음이다. 나의 벽을 허물어 너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 크신 하느님의 눈으로 그 크고 넒은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너를 보고 다른 교회를 보면 한 사람이 다른 교회가 참으로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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