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자학은 조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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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자학은 조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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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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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복목사<할렐루야교회>


나는 20대 중반에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50세를 막 넘기고 1990년에 귀국했다. 하필 내가 돌아온 그 해부터 한국교회의 성장이 둔화되어 오늘까지 매년 1% 정도도 성장하고 있지 않다.

한국교회는 70-80년대에 해마다 12.5%까지 급성장하여는 세계교회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전 세계 교회성장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돌아오던 그 해부터 교회성장이 멈추어 마치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교회성장을 멈추어 놓은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나 할까? 성장이 멈추자 CCC 김준곤 목사님은 심지어 마이너스 4% 성장이라고 개탄하신 적도 있다.

한국교회의 성장 정지에 대해 목사들과 학자들이 원인을 분석하여 제시해 왔고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걱정들을 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의 오늘과 같은 타락상은 한국교회가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종종 지적한다. 기독교인이 25%나 되고 1,200만 성도에 5만 교회와 11만명의 목회자가 있는데 수십 개의 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에 젊은 신학생들이 가득 차 있는 데도 사회가 이토록 어두운 것은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주의, 물량주의, 교회분열, 권위주의, 세속화 현상, 개교회주의, 교권주의, 목회자들의 자질문제 등이 늘 오르는 메뉴들이다. 교회의 잘못이다. 회개하라. 교회가 바로 서면 사회는 좋아진다. “내 탓이요!” 소금 농도가 3%만 되어도 썩지 않는다는 데 교회가 25%나 되는 데도 사회가 썩었으니 이것은 분명히 기독교인들의 잘못이다. 이와 같은 논리와 지적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이런 질책은 계속 된다.

이런 질책을 어느 정도 받아 드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질문이 계속 일어난다. 한국 사회의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가 교회가 제구실을 못해서인가? 교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반복되는 교회 책임론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도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을 만나 보면 반복 되는 책망이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 면도 있다.

매주 만나는 성도들의 모습이 그토록 잘못 되어 있는가? 예외는 늘 있지만 주변에서 계속 만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완벽하지는 않으나 비교적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느낌은 내가 현재 관여하고 있는 공동체들만이 아니고 관공서, 회사, 학교, 언론기관, 사회사업체, 심지어 운송회사 등 수많은 직장에 있는 신앙 공동체들을 방문해 보면 신실한 기독교인들이 많이 깔려 있고 그들은 직장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의 책임을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잘못된 환상인가?

예수님 시대의 유대 사회가 심히 타락해 있었던 이유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타락이 원인이었던가? 열 두 제자들 중 가롯 유다가 생긴 것은 예수님의 책임인가?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이 아브라함과 롯의 죄 때문이었던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이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의 세속주의 때문이었던가?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려고 날마다 노력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수가 오늘만큼이 되고 신실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그나마 이 정도이지 만일 기독교인이 지금의 절반이었다면 사회는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문제가 많지 않았을까?

우리는 꾸준히 자신을 살피고 회개하며 좀 더 성화 되도록 기도하며 주님 앞에서 살아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가 되도록 기독교인들이 앞장 서야 할 것이다. 어두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은 기독교인에게는 당연한 사명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학도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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