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75) 여인들의 목숨을 건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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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 (75) 여인들의 목숨을 건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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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0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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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남자제자들과 대조

김경진교수<백석대 기독신학대학원>


주님이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혔을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다. 그래도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뜰 안까지는 따라갔지만,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공관복음 기자들이 한결같이 밝히고 있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 형(刑)을 목격하였던 증인들이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랐던 여인들이었다는 사실이다(마 27:55-56; 눅 23:49). 그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세배대의 아들, 즉 사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막 15:40, 살로메)이다.

이 여인들은 남자 제자들처럼 비겁하게 도망치지 아니하였으며, 그리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 되었다. 주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으며 사랑을 받았던 남자 제자들이 모두 도망친 이후에도, 그녀들은 끝까지 남아 그들의 선생님의 최후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요한 사도의 고백처럼(요일 4:18) 아마도 그녀들은 주님을 지독히 사랑했던 까닭에 목숨마저 내어놓으면서까지 충성을 다하였던 것이리라.

이후 그 여인들은 주님의 시신이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매장되는 것을 지켜 보았고(마 27:57-61),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에 빈 무덤을 최초로 발견하였으며(마 28:1-6), 마침내는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마 28:9). 왜 복음서기자들은 이처럼 한결같이 복음서 마지막에서 이 여인들을 언급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십자가 죽음 및 매장을 부활과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가 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마 28장의 부활기사에서 이 여인들이 다시 등장할 때 언급하겠지만, 이들은 비겁한 남자 제자들과 대조적으로 비교되면서, 주님 부활 이후 전개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여기서 이 여인들이 언급된 사소한 이유 하나를 추가하면 십자가 형틀에서의 여인들의 존재는 시편 38:11의 성취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이 역시 메시야 예수님에 대한 구약 예언의 성취의 일환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시체가 불결하다고 믿었는데, 특별히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들의 시신은 더욱 부정(不淨)한 것으로 간주하였다(참고, 신 21:22 이하). 그러므로 주님의 시신은 밤이 되기 전에 옮겨져야 했는데, 이 일은 숨겨진 제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처리하였다(마 27:57-60).

여기서 우리는 마태가 마가복음의 ‘존귀한 공회원’이라는 표현을 ‘부자’로 바꾸었음을(막 15:43; 마 27:57) 보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이사야에 기록된 여호와의 종의 매장에 관한 묘사를 암시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보여진다(사 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마 27:62-66의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이것은 부활에 대한 악의적인 선전에 대한 방어적 성격을 띤다. 안식일 내내 로마 군병에 의해 무덤이 지켜지고, 무덤 문이 돌로 인봉되었으므로, 제자들이 그 시신을 훔쳐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결국 주님은 제자들에 의해 옮겨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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