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를 해결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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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를 해결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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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3.0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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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웅목사<덕수교회>


지금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활을 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노(勞)와 사(使), 세대간의 갈등, 남북의 대치 등 모든 분야에서 갈등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정치권에서 시발이 되어서 경제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사회불안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이를 극복하기위해서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만 하겠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드인들은 원칙적으로 극단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세 분이 하나되는 존재방식과 활동양식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이상적인 연합과 일치를 이루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 역사를 보면 매우 전투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는데,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보면 기독교는 기성종교와 문화권의 세력으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생존과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만 했고, 무서운 이단들과의 교리논쟁에서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특히 로마시대의 초기 기독교는 그 무서운 박해와 이단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대로마제국의 국교로 발전했다.

이러한 기독교의 특성이 나타난 구약적 배경에는 ‘거룩한 전쟁’ 개념이 크게 작용한 가운데, ‘정의로운 전쟁’ 개념이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르침은 구약을 완성시키는 최상의 윤리임에도 불구하고 미숙한 시대에 이 진리를 바르게 실천하지 못한 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선교방법은 사랑의 봉사를 통한 선교, 통전적인 선교를 통해서 교회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 놓으신 ‘화해’이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잘못되었던 관계를 회복시킴으로써 진정한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온전하신 하나님께는 좌우(左右)가 없지만, 우리 인간들에게는 반드시 좌우전후 중앙이 있다.

그래서 한 쪽은 다른 쪽과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양상의 보혁대결 조짐은 역사발전에 바람직하지 못한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건전한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열린진보, 열린보수, 뉴라이트운동, 뉴레프트운동)이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고 협력을 강화하여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역사발전에 공헌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북방기마민족의 진취적 기상과 삼한지방의 농경문화의 보수성향이 은근과 끈기로 지탱하는 힘을 발휘해서 5,000여년을 이 땅에서 생존해오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수레의 양바퀴와 같고, 독수리의 두 날개와 같아서 역사발전을 위해서 창조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순응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사회민주주의자들 가운데는 적극적 중간(Active Middle) 또는 급진적 중간(Radical Middle)이라는 개념이 널리 토론되면서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면서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중용의 길은 인간이 언제나 지켜야 할 중요한 길이라는 교훈이다.

“다양성 가운데서 일치”(Unity in Diversity)의 원형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시고 겸허하게 순종하면 양극화 현상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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