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부총리가 종교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서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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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부총리가 종교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서한 전문
  • 마스터
  • 승인 2006.02.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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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지도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 여러분!


지난 12월 9일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사립학교법이 국회에서 개정되면서 정치 쟁점화되었고, 개정 사립학교법에 반대하는 일부 사학단체들이 신입생 배정 거부 의사를 표명하는 데까지 이어져 많은 국민들의 우려를 사게 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다행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민들의 염원과 정부의 결연한 의지로 교육 파행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 여러분!

그동안 우리 사학은 국가 발전에 큰 몫을 담당해 왔습니다. 중학교의 22.5%, 고등학교의 44.8%, 대학의 82.2%를 차지하는 사학은 우리 교육의 양적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 왔으며, 지금도 우리나라의 우수 인재 양성과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계 사학은 1880년대부터 시작되어 우리 근대 교육의 모태가 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조국 독립 운동의 중심축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종교계 사학들은 정부의 교육 재정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을 흡수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를 제공하여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는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난번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하는 일부 사학단체가 고등학교 신입생 배정 거부를 결의하였을 때에도 종교계 사학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학생들의 학습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학생 배정을 수용함으로써 교육 파행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것은 종교계 사학의 숭고한 건학 이념과 뿌리 깊은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 여러분!

우리나라 사학의 대부분은 설립자의 출연 재산을 기초로 설립되었지만 실제 운영은 국민이 낸 세금과 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립중·고등학교의 경우 학교운영비의 2% 정도만을 법인이 부담하고 있고, 사립대학의 경우에도 8% 정도만을 법인이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학의 공익적 성격에 따라 사학의 투명한 경영에 대한 요구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종교계 사학들은 설립 초기부터 외부 인사를 이사로 영입하는 등 투명한 경영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학들이 폐쇄적인 가족 경영으로 인한 불합리한 운영과 비리 행태로 학교의 교육력을 떨어뜨리고, 전체 사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손상시켜 결과적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큰 피해를 주었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사학 운영의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금번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새로 도입되는 개방이사제는 학교 운영상의 투명성을 높여 불합리한 운영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개방이사는 학교법인 이사 정수의 4분의1 이상을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에서 2배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이사회가 최종 선임하도록 하되,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각 학교법인의 정관으로 규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개방이사제가 특히 종교계 사학의 건학 이념을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종교계 사학들이 건학 이념 구현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정관에 개방이사의 자격을 동일 종교의 신자 등으로 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우려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방이사제가 도입되면 학교가 전교조에 넘어 갈 것이라는 주장도 일부 있습니다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사립학교법의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교원은 소속 학교의 이사가 될 수 없으며, 다른 학교의 개방이사로 취임하기 위해서는 소속 학교장의 겸직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런 절차를 거친다 하더라도, 전교조 소속 교원의 수가 전체 교원 중 22%정도,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12%에 불과한 현실에서 5~10% 정도의 극소수 전교조 교사가 포함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다른 학교 전교조 교사를 개방이사로 추천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만에 하나 전교조 교사가 어렵사리 추천되었다 하더라도 복수 후보 중의 최종적인 선택권은 이사회가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 여러분!


개방이사제 도입은 우리 사학의 투명성과 사회적 신뢰성을 높여서 사학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개방이사제도에 대하여 막연히 두려워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운영 여하에 따라서는 우리 사학의 자율성도 높이고 사학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수습 과정에서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에 대해서 ‘사외이사제’를 도입할 때 많은 반대와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의 사외이사제 운영 결과 기업의 신인도가 높아지고 투명성이 확보됨에 따라 기업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처음에 이를 기피하였던 기업들도 이제는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국내외의 인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원, 학부모, 지역사회의 대표가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통령령의 규정에 따라 정관으로 정하게 되는 대학평의원회는 각 학교의 여건과 특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구성할 수 있고, 이들이 개방이사 후보를 추천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 도입되는 개방이사제도를 우리 사학들의 발전을 위하여 절실히 필요한 각계의 인사들을 영입하는 계기로 활용함으로써 사학들의 교육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개방이사제와 더불어 이번 개정법안에 도입된 ‘가족 중심의 학교 운영 제한’, ‘공개전형 방식에 의한 사립학교의 교원 채용’, ‘예결산 및 회의록 공개’와 같은 제도는 사립학교의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여 국민들의 신뢰와 지원을 이끌어 내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 여러분!

일부에서는 사립학교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없애는 대신 학생 등록금을 자율화하고 학생과 학부모로 하여금 자기 마음대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은 현재의 고교 평준화 제도를 포기하고 외국의 사립학교들처럼 전면적인 자율성을 갖게 해 달라는 요구입니다만, 이것은 우리 교육 현실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외국의 경우 중등 사학의 비중이 10%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나라는 사학의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을 자율화할 경우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지나치게 상승하여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일부 계층만 교육 혜택을 받게 됨으로써 현재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가중시킬 우려가 큽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OECD 국가들처럼 머지않아 우리도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해야 할 상황임을 생각한다면 더 더욱 적절하지 않은 주장입니다.

학생 등록금을 자율화하더라도 법인이 재정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자립형사립고의 시범 운영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자립형사립고가 일반 고등학교의 3배 정도 되는 학생 등록금을 받았지만, 법인이 떠안아야 할 재정 부담이 학생 1,000명을 기준으로 할 때 연간 10억 원 정도가 추가로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평준화를 해제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열망이 소위 명문학교를 가기 위한 경쟁으로 이어져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입시 지옥에 시달리고, 가정적으로는 엄청난 사교육비로 고통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재수생이 만연한 상황 속에서, 그러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모든 국민들에게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취지로 1974년부터 도입된 것이 고교 평준화 제도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당시 교육 여건 하에서는 어떤 정당, 어떤 정치 세력이 집권하고 있었더라도 평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진단들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평준화를 실시할 당시 20%대였던 대학 진학률이 83%로 급상승할 정도로 고등교육이 보편화되어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평준화를 해제한다면, 입시 지옥이나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인해 나타날 사회적 불안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폭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30여 년간 운영되어 오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평준화 제도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공영형 혁신학교나 자율학교, 자립형사립고 제도를 통하여 공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해 가야 할 것입니다. 사학의 자율성 또한 이러한 기조 위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 여러분!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사학 운영의 투명성과 사회적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이 마련되었으므로 정부는 앞으로 건전 사학에 대한 자율성을 대폭 부여하는 한편, 재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함으로써 사학들이 자부심을 갖고 육영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비리 사학에 대해서는 엄정한 감사를 통해 그동안 관행으로 고착되어 온 비리 구조를 척결하여 깨끗한 사학의 모습을 실현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공립이든 사립이든 자녀를 안심하고 학교에 맡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이 걱정하고 계시는 문제들은 종교계를 비롯하여 학계와 법조계, 언론계, NGO 등이 참여하는 사립학교법시행령개정위원회에서 지혜를 모아 합리적으로 보완하고 해결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개정 사립학교법에 반대하는 단체도 이 위원회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 여러분!

그동안 종교계는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급속한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흡수함으로써 정치가 하지 못했던 역할을 분담해 온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도 우리 종교계가 이런 역할을 다해 주시기를 진정으로 기대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사립학교법 개정이 우리 교육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종교 지도자 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협조를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병술년 새해에도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2006. 1. 26.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김 진 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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