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교회 새 모델로 거듭나는 돈의동 ‘초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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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교회 새 모델로 거듭나는 돈의동 ‘초동교회’
  • 이현주
  • 승인 2006.02.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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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웃의 친구로 세워진 '선교 60년'


젊음과 문화의 거리 종로. 일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영사기가 영화의 거리를 만들었고, 밤이 늦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아래 문화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가난의 흔적은 해방 후 근근히 목숨을 이어온 ‘쪽방’ 사람들로 대변되고 있다. 이런 혼돈의 도시 한복판에 교회가 세워졌다.

초동교회.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일본인 교회였던 약초교회를 인수하면서 초동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 교회 원로이자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어른’의 한 사람인 조향록목사는 당시 조국의 해방과 더불어 태어난 초동교회를 이스라엘민족의 출애굽에 비유했다.


“초동교회는 바로 새 이스라엘 8.15 출애굽 해방 사건을 한 몸에 지니고 태어난 역사의 총아요, 주인이요, 수호자이다. 초동교회는 하나님이 한민족을 구원하시는 핵심에 있으며 민중의 자유와 해방으로 전개될 새 민족사의 주체자임을 명백히 선언하고 나서야 한다.”


이렇게 시작된 초동교회가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해방역사와 함께 걸어온 교회 역시 아픔과 질고, 혼돈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교회의 본질을 지켜냈고 이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5대 목사인 강석찬목사와 함께 열어갈 새 역사는 역동적이다. 그동안 초동교회가 지적 자산을 바탕으로 경건과 전통을 중요시해왔다면 앞으로 그려갈 초동의 미래는 전통을 바탕으로 지역을 향해, 그리고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비전을 안고 있다. 선교와 목회의 한계가 될 수밖에 없는 상업지역의 한계를 오히려 훌륭한 선교자원으로 끌어안으려 한다. 초동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도시교회의 새로운 해법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교회의 새 모델을 만들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강석찬목사를 통해 초동의 미래를 상상해보기로 했다.


살기 좋은 ‘초동’에서 험난한 ‘종3’으로


1960년대 말, 정부의 개발정책과 함께 교회가 위치했던 초동의 주변 상황은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초동교회의 종로3가 이전은 이 시기에 결정됐다. 그동안 자긍심으로 지켜왔던 초동을 떠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해방 후 이념대립과 한국전쟁 등 혼돈의 역사 속에서 초동교회도 무사할 수 없었다. 함경도와 만주 등지에서 38선을 넘어 내려온 교인들이 힘을 모아 키워나갔던 교회는 전쟁 중 후퇴하는 공산당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되었고 부산에서 피난 중에 교회로 모이는 등 험난한 역사를 고스란히 따라갔던 것.

그러나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하루종일 모래와 벽돌을 지고 나른 여신도들의 헌신으로 1958년 초동에 예배당을 재건하는 역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초동교회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만 했다.


당시 당회장이던 조향록목사는 초동을 종로3가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정은 쉽지 않았다. 종로 3가란 어떤 곳인가. 겉으로는 주변을 둘러싼 고궁과 극장들을 중심으로 문화인들이 몰려들었지만 종로의 이미지는 ‘창녀촌’, ‘빈민촌’, ‘우범지역’이라는 딱지를 떼기 어려웠다. 하지만 결국 초동교회는 종로 3가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도심에 걸맞는 6층짜리 빌딩교회를 세웠고 이 건물은 예배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교회가 아닌 소극장, 목욕탕, 미용실 등을 마련해 지역주민을 위해 문을 여는 ‘열린 교회’로 계획됐다.

안타깝게도 당국의 불허와 재정적 어려움으로 계획이 유보되긴 했지만 초동교회는 종로 3가 한 복판에 높다란 십자가 탑과 함께 우뚝 솟아났다.


빈민들을 향한 ‘미완의 꿈’


사실 ‘슬럼가’나 다름없는 종로 3가에 교회를 세우는 것 자체가 무리한 도전이었다. 성도들의 불만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조향록목사의 목회철학은 완고했다.


“교회라는 건 외면당하는 땅에 들어가서 그들을 개화시키는 것이지 성자들만 있는 곳에 들어가서 자리잡는 게 아닙니다.”

초동교회가 들어서자 인근지역 주민들이 교회를 찾았다. 이들은 집창촌에서 생활하는 편모자녀와 한글도 배우지 못한 무학자, 평생 목욕이라곤 한번 해보지 못한 빈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조목사의 꿈은 현실을 넘어서지 못했다. 지역 빈민들과 차별화된 교인들이 한데 어울리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해졌고 안타깝게도 초동교회의 문턱은 높아져만 갔다.

조향록목사가 소외된 자들을 위해 문을 열고 민족의식을 높이는 일에 주력했다면 이어 취임한 신익호목사는 선교중심의 교회로 초동교회를 탈바꿈시켰다. 국내외에 10곳의 교회를 개척했고 도서관을 세워 지역주민들에게 교회 문호를 개방했으며 유치원과 야학 등 시대가 요청하는 과제들을 조용히 수행해 나갔다.

▲ 초동교회는 지난 10월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선교공동체에 이어 ‘미래를 지향하는 열린교회’를 선언한 신목사는 교회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교인들의 영성을 책임질 수양관을 안성에 건립했다. 그렇게 초동교회는 조향록목사와 신익희목사로 이어지는 50년 역사를 세워온 것이다.

신목사 은퇴 후 교회는 담임목회자를 초빙하기까지 2년의 공백을 가졌다. 목자 없이 보내는 2년의 시간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 긴 공백을 깨고 부임한 이가 바로 강석찬목사다.

전직 원로목사들의 명성에 대한 부담과 역사적 교회에 대한 책임감 등이 강목사의 어깨를 짖눌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전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목회스타일을 구축하며 초동교회의 새 미래를 구상중이다.


도시인의 삶을 변화시켜라


종로 인근 4대문 안에 거주하는 성도 10%. 서울 외곽 용인과 분당 지역 거주 성도 10%. 겉으로 드러나는 초동교회 목회의 한계점이다. 성도들 대부분이 원거리 교인이다 보니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또 상업지역의 한계와 주변 빈민가 복음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강목사는 일단 주변 ‘쪽방’으로 눈을 돌린다.

“교회주변에 아직도 어려운 이웃이 많다는 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슴아픈 일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회가 그들의 삶을 보듬고 가난을 이겨내도록 도와야 한다.” 사실 쪽방선교는 교회가 아직 논의중인 일이다. 그러나 초동교회가 초동에서 종로로 이전한 밑바탕에는 소외된 이웃을 돌보겠다는 정신이 깔려있음을 강목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원대한 계획은 도심 직장인들을 위한 선교.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를 비롯, 황금찬, 김영진, 전덕기 시인과 실력있는 음악가와 극작가, 의사와 교수 등 지적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 초동교회로서는 이들이 직장인들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52주 교양강좌와 직장인 예배 등을 통해 사회생활에 지친 직장인들을 위로하고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강목사의 두 번째 비전이다.

어른들에게 배우고 젊은이 도약하는 교회


60년대 지역사회선교의 일환으로 시작됐던 초동유치원은 현재 어린이집으로 운영된다. 강목사가 부임할 당시 어린이집은 존폐위기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이를 되살리겠다는 강목사의 의지는 강했다. 결국 3년만에 어린이집은 자립했고 현재 장애우 통합교육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또 교회에 밀알선교단과 두레방 등 사회선교 및 장애우 선교단체들의 모임이 많아지면서 교통의 요충지라는 이점을 살려 NGO의 활동을 후원하는 교회로 새 이미지를 쌓아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강목사가 주력하는 교회비전은 안성수양관을 통한 영성수련의 확대. 신앙성장의 원동력이 예배와 영성 두 갈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예배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강목사는 안성수양관이 수도원적 성격을 지닌 개신교 영성수련의 장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한다.

▲ 안성수양관은 곧 영성훈련의 메카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지난해 창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던 초동교회. 부흥회와 연극제, 성가합창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더불어 필리핀 현지교회 건축을 6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행하고, 극단을 창단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동안 성도들은 ‘화합’을 배웠다.

70세 이상 성도가 2백여명이 넘는 고령화의 현실을 ‘늙었다’고 받아들이기 보다 ‘소중한 전통’으로 생각하는 초동교회는 ‘어른’들의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자원이 몸소 뛰고 나누는 이상적인 성장을 꿈꾼다.

고집스레 유지되는 장로교의 전통 속에서 이어 가야할 것과 바꿔가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초동교회 성도들은 역동적으로 꿈틀대는 도심교회로 새출발을 선언하며 작은 비전들을 하나하나 펼쳐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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