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예수 스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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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수 스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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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1.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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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환 목사<천안대 교수>


나는 지난주일 ‘거룩한 실패’라는 주제의 어떤 목사님 설교를 듣고 은혜 속에 재음미해 보았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에 선택받은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였다.

이 능력 있는 설교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스데반을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라고 모함하여 공회에서 심문을 받게 했다.

그러나 스데반은 긴 시간에 걸쳐 당당하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족장사, 모세에서 여호수아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내용을 선포하였다. 스데반의 설교는 강력한 능력이 동반하였다. 감히 누구도 책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옛날에 선지자에게 거역하고 도전한 것과 같이 메시아 강림의 예언자로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 죽인 자들이 바로 너희라고 죄를 찔러줄 때 저들은 이를 갈며 돌을 들어 스데반을 처형했다.

이때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시고 대신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 스데반의 사역 속에서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회의점을 생각해본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스데반의 설교에 왜 공회의 회중들에게 베드로의 설교와 같이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평신도의 수준 낮은 설교였는가.

아니다. 스데반 집사의 설교도 베드로 못지않은 복음적인 설교였다. 그의 설교는 누구에게 들은 말이 아니다. 자기에게 임한 성령에 의한 강력한 설교였다. 우리는 여기서 스데반의 사역을 하나의 초대교회 구원사를 이룩해 나가는 과정 속에 필요한 하나님의 사역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스데반의 사역을 보면서 마치 예수님의 사역과 흡사함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천사와 같이 여유 있고, 오히려 보람 있는 얼굴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복음에 대한 자기 사명을 바로 아는 자의 참모습이니 하늘보좌를 유보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섬기는 삶을 보여 주신 주님의 모습이며 회심 이후 바울사도의 모습이 아닌가. 또한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고 대신 자신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하는 장면은 주님의 최후 십자가 상의 기도가 연상된다.


이것을 보면서 스데반은 실패자 같이 보이나 오히려 작은 예수로, 우리에게 승리자로 보여 주는 것이다. 오늘 남을 의식하고 극단한 이기심과 인정받기를 원하고 자기 성과에 만족하려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이 작은 예수 스데반의 교훈을 귀히 여겨 챙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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