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70) 베드로의 회개와 가룟 유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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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70) 베드로의 회개와 가룟 유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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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1.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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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한 두 사도의 다른 말로(末路)


김경진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베드로의 부인(否認)을 배교(背敎)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배교란 문자 그대로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 신앙을 회복한 베드로의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만일 베드로의 부인이 배교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베드로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개인적 혹은 인격적 친분을 부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마 26:72, 74).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가룟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 사이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유다나 베드로나 모두 배신 후 회개한 것은 동일하지만, 그 정도 역시 다르다. 베드로는 “심히 통곡”하였으나(마 26:75), 유다는 단지 “뉘우쳤을” 뿐이다(마 27:3). 여기서 ‘뉘우치다’(metamelomai)란 단어는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회개하다’(metanoeo)라는 단어 보다 약한 뜻을 지니고 있다.


유다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행 1:18-20에도 등장하는데, 누가는 좀 더 자세하게 그 내용을 밝히고 있다. 사실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에는 유다의 죽음에 대하여 더 이상의 언급이 없는데, 마태와 누가가 이를 기록한 것은 배신자에 대한 최후를 기록함으로써 혹 환난이나 박해로 말미암아 유사한 시험을 받은 이들에게 대한 경고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하겠다(참고, 마 10:4 - 가룟 유다에 대한 역사적 평가).


유다의 죽음 이야기(마 27:3-10)에서 우리는 유대 당국자들의 자기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유다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 후 자신이 받은 돈을 성소에 던져버리자, 그것이 무죄한 사람의 피 값임을 알고는 성전 금고에 넣기를 그들이 꺼려했다는 것은(마 27:6)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판결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처사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고(참고, 마 23:24), 그런 이들의 모함과 시기로 인해 구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유다의 죽음을 기록하면서도 마태는 그 모든 것이 구약 예언의 성취임을 강조한다(마 27:9-10; 렘 18:2-3; 19:11; 32:8-9; 슥 11:12-13).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이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간섭 아래 진행되었음을 밝히면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임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유다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이뤄졌으며, 또한 그 모든 것이 이미 태초부터 전부 예정되었던 것이니, 그를 더 이상 부정적 안목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악으로 사람을 이끌지 않으신다.


유다의 배신은 재물 및 세상에 대한 그의 욕망의 결과로 빚어진 것이지(요 12:4-5), 순진무구한 사람을 억지로 배신하도록 하나님이 인도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마 26:2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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