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앞에서 어려운 이웃 도우라는 하나님 음성 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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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앞에서 어려운 이웃 도우라는 하나님 음성 들었지요”
  • 김찬현
  • 승인 2006.01.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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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사람에게 공짜밥 나눠주는 백 정 남 권사
 

 

지하철 1호선 관악역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뿜어져나온다. 춥다 못해 온몸이 아릴 지경인 겨울추위 앞에 사람들은 도망이라도 치듯이 종종 걸음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두꺼운 겉옷 속에 온 몸을 숨기며 지하철역 계단을 잰걸음으로 내려오던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한번씩 쳐다보고 가는 가게가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문 곳은 바로 계단 옆에 위치한 가게에 붙여진 안내판. “돈이 없어서 못 사 잡수시는 분은 누구나 서슴없이 말씀하시면 무료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쓰여진 문구는 순간 온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듯 했다.




안내판의 글귀를 보면서 겨울이 추운 것은, 추우면 추울수록 더많이 안아주라는 의미라는 어느 책의 글귀가 생각났다.

대체 무슨 가게이길래 번듯한 간판대신 공짜로 먹어도 된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것일까. 가게의 주인은 백정남권사(열방의 빛교회·배정수목사). 백권사가 무료로 음식을 먹으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장사를 시작한 것도 벌써 10년이다. 가게에서 파는 것은 몇가지 분식들과 과일, 두부 등이다. 사실 분식점이라기보다는 시골의 조그만 점방 같은 모양새이다.


“서울에 올라온 지 2년 만에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고 먹고 사는게 막막했지.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시작한게 지하철 역 앞에서 오뎅이나 호떡도 팔고 과일도 파는 노점을 시작한게 벌써 10년이 넘었구만.”


노점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고 IMF가 터지면서 그가 처음 장사를 시작했던 석수역도 그 힘겨운 시절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직장인처럼 보이지만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돼 갈 곳 없어진 사람들이 역주변에 넘쳐났다. 집에는 차마 알릴 수 없어 아침마다 출근하던 시간대로 지하철역에 나올 수 밖에 없던 사람들이 많았다.


“퇴근시간 전에 집에 돌아갈 수는 없고 식사할 돈도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았지라. 그래서 바로 내가 하던 노점 앞에 지금 붙여놓은 안내문을 붙였지”라고 말하는 백권사. 그러나 10년 넘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 동기가 그렇게 간단할 수는 없는 법. 이내 깊은 속내를 털어놓았다.


백권사의 고향은 전라도 해남. 젊은 시절 평범한 농사짓는 농부에게 시집간 후 내리 딸만 셋을 낳았다. 아들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시골분위기 탓에 넷째를 가졌고 네 번째 아이는 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이 때부터 백권사에게 더 큰 고통이 시작됐다.


“둘째동서가 있었는데 시집온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애가 없었어. 그래서 낳을 애기가 딸이면 둘째 동서 주기로 했었는데 낳아보니 딸인거야. 갓난 아기를 바로 보낼 수는 없으니까 100일만 데리고 있다가 보내기로 했는데 엄마가 젖을 물리면 정이 들어 못보낸다기에 젖도 안물렸었지. 그래도 내 자식인데 얼마나 이쁘던지. 그런데 낳은지 9일만에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그날 밤에 죽어버렸어.”


그렇게 소중한 자식을 잃어버린 후 백권사는 그길로 자리에 드러누워버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린 자식이 죽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자책감 때문에 고통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골이라 논농사며 밭농사며 할 일이 태산같은데 손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당께. 해남에 있는 병원, 광주에 있는 종합병원, 강릉, 부산 등 전국에 좋다는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다녔는데 나을 기미는 통 없었응께. 병원에 있으면 나은 듯하다가도 집에만 돌아오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서 몇 년을 그렇게 보내니 아예 살 마음이 확 사라지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우울증이고 홧병이었는데 몰랐던 거지.”


마음에 찾아온 병 때문에 죽음의 유혹을 받은 백권사는 이내 실행에 옮겼다. 가족들이 농사짓느라 집을 비운 사이 농업용으로 창고에 두었던 농약과 수면제 30알을 한꺼번에 먹었다.


“신기한게 그때 내가 예수를 믿기 전인데 농약을 먹을 때 마음 속에서 ‘딸아, 너 그거먹어도 안죽는다’하는 음성이 들리더라고. 그래도 너무 고통이 심하니까 참을 수가 있어야지. 농약도 모자라 한군데서 3알밖에 안파는 수면제를 30알이나 모아서 먹었어. 그런데 살아난게 하나님 은혜였지.”


약을 먹기전 혼미한 상태에서 들은 음성이 사실이었을까. 백권사는 약을 먹은 후 바로 다 토해냈다. 그동안 신경이 예민해져 며칠동안 밥한술 뜨지 못했는데 위에서 죽으려고 먹은 약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며느리가 약까지 먹고 자살을 시도하자 가족들은 다급해졌다. 시어머니가 교회에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교회는 무슨 교회냐며 전국에 있는 용하다는 병원은 모두 데리고 다니며 만류했던 남편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다. 백권사는 그 때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 내 몸무게가 32kg이었어. 병원에 가면 회진시간에 의사가 나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갸웃 했었으니까. 그런데 교회가서 찬송을 부르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더라고.”


이때부터 신기하게도 그렇게 백권사를 괴롭히던 두통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사라졌다. 죽고싶다는 생각도 싹 사라져버린 것은 물론이다. 백권사가 신앙을 가지게되자 하나님은 하늘나라로 먼저보낸 딸 대신에 그렇게도 바라던 아들과 막내 딸을 허락하셨다. 백권사가 겪었던 지난 몇 년간의 힘든 고통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15년 된 백권사는 지금도 자신에게 되묻는다고 한다. “절망과 고통에서 나를 건져내신 이유가 뭔지 왜 나를 살려주셨는지 항상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물어봐. 그러면 항상 마음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


백권사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아는지 음식을 먹고 돈을 내면서 거스름돈은 어려운 분을 위해서 써달라고 받지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넌지시 이야기한다.


“지금은 이렇게 밖에 돕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더 힘을 내서 주변의 자녀없이 혼자사는 노인들이 거처할 자그마한 공간을 마련하려고 계획 중”이라며 환하게 웃는 백권사.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고 어렵다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따뜻함을 베푸는 이웃이 있기에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따뜻해져옴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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