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인식 차이로 우·좌파 갈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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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인식 차이로 우·좌파 갈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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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1.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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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앙의 도전에 직면한 한국교회의 `하나님나라 개념`

서광선 교수<이화여대 명예교수>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 신학의 핵심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나라, 동물의 나라, 식물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는 만큼, 하나님이 주제이므로 신학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언어적으로 불편하게 들리는 것은 ‘하나님’과 ‘나라’, 존재론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이질적인 두 요소가 한 단어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신학의 영역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나라’를 말하는 것은 신학이라기보다는 정치학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의 소관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의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 인식의 차이로 ‘보수’와 ‘자유’ 혹은 ‘우파’와 ‘좌파’ ‘정통’과 ‘이단’ 등으로 분열되어온 만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신학하는 주제의 핵심이 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신학’의 접근방법도 여러가지겠지만, 그 이름도 다양하다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선포, 즉 ‘하나님나라가 다가왔다’라는 말의 시제(時制)가 완료형이냐 아니면 미래형이냐 하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하나님나라 도래(到來)의 시간을 논하는 접근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시간적인 미래에 두거나 영원한 시간이라고 하는 초월적인 미래에 두고, 인간 역사의 종말에 투사하는 접근방법으로 ‘종말론적 신학’이 있습니다. ‘종말론적 신학’은 ‘종말’이라는 개념이 시간의 개념인만큼, 시간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해석이 요구됩니다.

시간을 논하는 데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역사의 개념이 들어 올 수 밖에 없게 되어, 결국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역사의 신학’과 연결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은 곧 역사의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역사 안에 성취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유한한 역사 저 너머의 역사 안에서만 성취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인간의 시간 저 너머의 역사’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다른 것인가 아니면,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발생합니다.

질적으로는 ‘영원한 시간’이라고 하는, 우리의 유한한 시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초월적인 무한한 ‘무시간’의 하나님 나라를 제시합니다. 양적으로는 ‘천년 왕국’이라고 하는 여섯 번, 일곱 번을 되풀이 하는 천년왕국의 ‘일주일’을 제시하는 ‘미래 신학’이 있어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역사적 혹은 종말론적인 접근은 ‘하나님의 시간’, 곧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시간’과 ‘인간의 역사’와의 관계를 논하는 데서 역사의 신학과 종말론적 신학의 연관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논의 혹은 접근 방법은 하나님 나라의 ‘공간’ 혹은 ‘장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 구현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주일학교에서 얻은 대답은 거의 항상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와 ‘하늘나라’는 항상 같이 써 왔고, 그래서 항상 혼동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나라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없고 너희 안에 있다고 할 때면 내 안이라는 것이 이 작은 나의 몸속에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장소에 있다는 말인가 하는 신학적인 질문으로 어린 머리가 복잡해질 뿐이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하나님 나라의 장소나 공간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관계 안에 이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관계성이 바로 정치성과 연관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나라’는 우리 안의 정치적 관계성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평화와 화해와 정의와 사랑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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