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평화, 광화문에 내려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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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평화, 광화문에 내려앉다
  • 이현주
  • 승인 2005.09.23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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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십자가의 길만 따라온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도심 한복판에 숨소리조차 내기 미안한 고즈넉한 쉼터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80년을 한결같이 그 모습 그대로 지내왔건만 사람들에겐 아직도 생소하답니다.

왜냐구요? 이곳엔 ‘거룩한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다고 서원한 수녀님들의 기도소리만 들리니까요.

광화문의 시끄러운 소음을 뒤로한 채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를 보내는 성공회 ‘성가수녀회’를 잠시 엿보았습니다.

누구도 함부로 문을 열수 없는 성스러운 곳이지만 이곳에선 누구나 반겨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힘들고 지칠 때면 조용히 한옥 문을 밀고 들어가세요. 수녀님의 따스한 웃음에 세상 시름이 눈 녹듯 녹아 내릴테니까요.





“우리 잠깐 기도해도 될까요? 지금은 정오기도시간이에요.”

취재도중 두 손을 모은 오인숙(카타리나)수녀는 이내 작은 소리로 기도한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아주 짧은 기도 속엔 우리가 잊지말아야할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광화문 서울대성당 옆 조그마한 수도회에는 하루 3번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린다. ‘삼종기도’. 어느 순간이건 종소리가 들리면 예수님을 기억하는 기도를 해야만 한다. 잠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이곳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기도로 채워진다.

국내 첫 토착 수도회로 문을 연 ‘성가수도회’는 개신교수도회 중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고 대천덕신부의 예수원과 안병무박사가 설립한 영성과 평화의 집. 그리고 성공회 교구별로 운영되는 수도회 등 열손가락 안에 다 꼽히는 정도다. 그 중에 성가수도회가 있다.



성가수도회가 교회사에 남긴 의미



성가수도회가 문을 연 것은 지난 1925년 9월. 조마가주교에 의해 시작됐지만 이미 한국에서 선교하며 씨앗을 뿌렸던 영국 성 베드로수도회의 역할이 주도적이었다. 성 베드로수도회 선교사들의 활동은 한국선교 역사에도 큰 획으로 남아있다.

1892년 제물포항에 5명의 간호사 수녀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1895년 정동에 성 베드로병원을 개원, 죽어가는 아이들과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했다. 강화에서는 수녀들이 온 마을을 다니며 선교용 책자를 나눠주었고 고아들을 돌보는 보육사업도 전개했다.

다섯 선교사 중 한명인 메리수녀는 2차대전이 발발하자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46년 메리수녀는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 4년 뒤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선교사들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기 급급했다. 그러나 메리수녀는 “2차대전 때 나만 살고자 피했던 것도 부끄럽다. 이곳에 남아 복음전도의 사명을 완수하겠다”며 끝내 한국에 남고 말았다.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했고 파란 눈의 선교사들은 모두 북으로 끌려갔다. ‘죽음의 행진’으로 기록된 포로의 여정속에서 메리수녀는 결국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수도회의 역사를 설명하던 카타리나수녀는 “메리와 같이 목숨을 걸고 헌신했던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수도회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감사했다.

이렇게 영국 성 베드로수도회의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복음을 뿌린지 33년만인 1925년에 첫 한국 여자 수도회가 생겨난 것이다. 영국성공회는 성 베드로수도회의 분회보다는 한국수녀들을 통한 토착수녀회가 바람직하다는 판단 하에 ‘Holly Cross`라는 이름의 성가수도회가 탄생했다.

성가수도회가 한국교회사에 남긴 의미는 크다. 여자 신학원을 운영하며 전도부인을 양성했고 성모관이라는 여성기숙사를 마련, 여학생들의 신앙교육과 안전한 유학생활을 도왔다. 그리고 현재, 장애인과 갈 곳 없는 노인을 돌보며 섬김의 도를 다하고 있다.



수도자의 3대 서약



수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3가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첫째는 가난을 맹세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결한 삶을 약속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도자들은 순명서약을 통해 복종의 삶을 다짐한다.

가난은 예수의 청빈에 참여하는 것으로 세상에 속한 존귀와 희락과 명예를 모두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것과 천한 것을 선택한다. 또 육체를 정결케 하여 모든 욕망과 나태, 안일함을 버린다. 수도자는 하나님께 복종하며 불평이나 편견 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성가수도회를 지키는 20여명의 수녀들은 이 서약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내어 놓는다. 기도와 묵상, 헌신과 섬김, 그리고 학문에 정진하는 것이 성가수도회의 일과다.

성가수도회는 성안나의 집과 성보나의 집을 통해 섬김을 실천한다. 강화에 이쓴 성안나의 집은 노인전문 요양시설. 더 이상 노동할 기력도 없는 갈 곳없는 노인들을 모시는 곳이다.

“나 좀 잘 묻어 줘”. 요양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인들을 생을 체념한 채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성안나의집 수녀들은 “할머니 저희랑 살러 오셨는데 왜 죽는 말부터 하세요.”라며 할머니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성보나의 집도 마찬가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나이든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위해 마련 된 이곳에서는 이제 장애아동은 없고 장애 노인들이 있다.

이 모두가 정성어린 돌봄의 결과다. 장애우들의 생명이 연장되고 노인들의 삶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 것. 장애우와 노인들에게 성가수도회 수녀들은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고마운 천사와 같다.



힘들고 지칠 땐 성가수도회로 오세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성가수도회의 문을 열어보지 못했다. 도심 한복판에 그런 수도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도 많다. 그러나 이곳은 지친 도시인들이 쉬어갈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매우러 첫째 토요일에는 직장인들을 위해 영성기도모임을 마련해 놓았고 매월 둘째, 넷째 목요일에는 떼제기도모임을 갖는다. 매월 첫 목요일에는 관상기도모임이 마련돼 이으며 넷째 토요일에는 수도생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기도와 말씀을 묵상하는 성소모임이 열린다.

카타리나수녀는 “이곳 성가수도회가 기도의 샘물이 되고 지친 도시인들에게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로 거듭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찾아오실 수 있고 누구나 기도할 수 있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열린 수도회가 되고 싶습니다. 기도하길 원하는 분들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나를 버리고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약속한 사람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며 늘 기도하는 성가수도회 수녀들은 오늘도 더 낮아지고 더 천한 곳을 찾아 나선다. 모두 싫다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두 팔 걷고 다가서는 사랑이 이들에겐  그저 평범한 삶이었다.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길 원하는 사람들.
이곳 광화문 성가수도회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남겨 놓으신 평화가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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