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샘물] Y 장로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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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샘물] Y 장로님을 그리며
  • 김기창 장로
  • 승인 2024.06.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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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장로 / 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김기창 장로 / 천안 백석대학교회 원로장로, 전 백석대학교 교수

2023년 12월 31일(주일), 오후 9시에 ‘새해맞이 예배’를 드렸다. 여러 순서 중 내가 참여하는 하모니카 소그룹의 연주도 있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방황할 때>와 <실로암> 두 곡을 연주하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퇴직 후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정했다. 수필(신앙 수상) 쓰기, 악기 하나 배우기, 그리고 가르치는 봉사 활동이었다. 그중 두 가지는 잘 실행하고 있다. 그런데 마침 작년 봄, 소그룹 활동 <하모니카 반>이 생겨 서둘러 신청했다. 모두 일곱 명이 교회에서 주일 예배와 점심식사가 끝난 후 두 시간씩 연습을 했다. 팀장 J 집사님은 알기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하여 열 달이 되었고 격주로 했으니 20회를 배운 셈이다. 그 사이 연주 능력이 일취월장 발전하여 지금은 웬만한 곡이면 악보를 보며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모니카는 가볍고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가 아주 좋고, 배우기가 쉬우며, 소리가 크지 않아 언제, 어디서나 불 수 있다. 또, 화음과 선율을 동시에 연주할 수 있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으며, 부는 호흡과 마시는 호흡을 사용하므로 심폐기능이 좋아진다. 앞으로 더 열심히 익혀 찬송가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려고 한다.

‘하모니카’ 하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Y 장로님이다. 나보다 6년 연장자로, 50년 전에 같은 학교에서 만났다. 그분은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이 있으셔서 각종 악기를 잘 다루셨고, 서양 고전 음악 해설을 맛깔나게 하셨으며, 특히 어린이 합창 지도로 이름을 날리셨다. 재직 중 불치의 류마티스성 혈관염 때문에 젊은 날 교단을 떠나셨고, 그 후 생사를 넘나드는 어려움을 수없이 겪으셨다. 35년 동안 휠체어 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하며 그 연약하신 몸으로 섬기시는 교회에서 둘이찬양단(부부)과 하늘중창단을 만드셨고, 교회 홈페이지를 제작, 운영하셨다. 두 딸을 의사와 작가로 훌륭하게 키워 내셨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분은 평생 하모니카와 사셨다. 다양한 연주법으로 하모니카 연주에 경지를 이루셨고, 교회에서 하모니카 합주반을 만드셨으며, 전국적으로 ‘하모 사랑’을 조직하셔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셨다. 동호회 회원이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십여 년 전에 나에게 자신이 펴낸 『찬송가 하모니카 악보집』을 선물로 보내주시며 한번 배워보라고 권하신 바 있다. 나는 재직 중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미루고 미루다가 터키에서 돌아온 후 하모니카를 배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안부 인사를 드릴 겸 전화를 했더니 내가 터키 한 대학의 초빙교수로 가 있을 때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것이다. 향년 74세로.

장로님은 “내 장례 때 울지 말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틀어 달라” 하셨단다. 입관하실 때 따님이 관 속에 그가 평소 즐겨 불던 하모니카 하나를 넣어 드렸다. 그걸 보고 교인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장로님! 천국에서도 주님 앞에서 찬송가 연주 마음껏 해 주세요.”

하모 사랑 단원들이 찬송가 610장을 연주하며 가시는 길을 환송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아내 이 권사님이 장로님을 그리워하며 쓰신 『작은 위로』를 내 서재 가까이에 두고 틈틈이 읽어 본다. 오늘도 그분이 주신 하모니카 악보집을 펴 놓고 연습에 몰두하며, 옆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쳐다보실 그분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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