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 10년간 ‘기억주일예배’ 드려온 안산 명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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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기, 10년간 ‘기억주일예배’ 드려온 안산 명성교회
  • 안산=정하라 기자
  • 승인 2024.04.1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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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는 방법입니다”

‘소생의 길’로 다시 태어난 안산 단원구 고잔동 골목길
별세 교인들 기억하기 위한 ‘천국성도 추모의 벽’ 조성

그날도 벚꽃이 흩날리던 찬란한 봄날이었다. 따스한 봄철을 맞아 수학여행을 위해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10년 전 4월 16일, 꽃피지도 못한 250명의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참사 이후 사람들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구호와 노란 리본을 달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어느덧 10년이 지난 지금, 기억하겠다는 이들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세월호 참사는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유난히도 맑은 4월 어느 날,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단원고등학교가 있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을 찾았다. 단원고로 향하는 길목에는 샛노란 꽃들과 녹음이 우거진 나무가 도로변을 따라 식재돼 푸르른 봄날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고잔동 골목길에는 세상을 떠난 단원고 아이들을 추억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생명길, 단원 소생길’이 조성됐다. ‘소생길’은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던 화랑유원지에서부터 고잔1동 주민센터, 명성교회 별관 옥상 ‘온유의 뜰’까지 2km에 이른다.

봄의 정취가 가득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10년 전 세월호 참사가 더욱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10년 전,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모들은 매년 찬란하고도 슬픈 봄을 맞이했을 것이다.

지난 12일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서온 명성교회 김홍선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요즘처럼 안산의 벚꽃이 만발한 시기,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아이들이 별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기에 매년 이맘때가 되면 흐드러진 벚꽃마저도 애석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10년간 ‘기억주일예배’를 드려온 김홍선 목사를 지난 12일 만났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서고 있다. 10년간 ‘기억주일예배’를 드려온 김홍선 목사를 지난 12일 만났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10년간 이어온 세월호 ‘기억주일예배’

단원고 정문 옆에 위치한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로 큰 상처를 겪은 교인과 지역사회 주민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4월 16일 전후 주일예배를 ‘기억주일예배’로 드린다. 세월호 참사로 명성교회에서는 고등부 청소년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참사는 교인의 아픔이었을뿐 아니라 교회 주변 100가구가 넘는 가정이 자녀를 잃는 사회적 재난이기도 했다. 당시 명성교회 주변의 온 거리는 자식을 잃고 비통해하는 주민들의 눈물 소리가 가득했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해상사고가 아닌, 국가적 참사이자 우리 교회가 있는 마을이 당한 큰 재난이었습니다. 더욱이 교회 고등부 학생 6명이 희생당했기에, 당시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도구로 악용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교회는 이를 정치적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오직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주민의 아픔을 돌보기 위해 ‘기억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고통을 겪는 이웃을 위해 명성교회는 교회의 별관을 지역주민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공간으로 내놓았다. 별관 1층에 2014년 9월 15일 교회 자체적으로 ‘힐링센터 0416 쉼과힘’(현 고잔복지센터)을 개관해 유가족을 위한 심리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김 목사는 “대형 참사로 한순간에 자식을 잃은 주민들은 그저 성경 속 ‘강도 만난 자들’과 다름없었다. 교회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지역주민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교회 별관 1층에 힐링센터 쉼과 힘을 운영하고 있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교회 별관 1층에 힐링센터 쉼과 힘을 운영하고 있다.

교회 주변 107 가구가 희생자 가족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부터 5월 말까지 아이들이 인양되는 데로 거의 매일 한 달 이상 장례를 치렀다. 거리는 죽음의 기운이 가득했고,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온 마을을 짓눌렀다. 김 목사는 “거의 매일 장례버스가 단원고에 왔고 운구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는데, 적막강산의 거리에는 부모의 애타는 울음소리만 들렸다”고 당시 분위기를 회상했다.

큰 상실의 아픔을 겪은 교인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도 컸다. 자식을 잃은 큰 슬픔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정치적 오해로 번진 유가족들의 반복되는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우려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진상규명은 정치인들이 하되 교회는 치유와 회복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민과 교인들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힐링센터 ‘쉼과힘’을 설립했다”고 밝혔다. 국가 초유의 재난으로 집단 패닉을 경험한 이들에게 교회가 단순 구휼의 접근을 넘어 전문적 노력을 펼쳐야겠다는 진단에서다.

이러한 노력 끝에 교인들은 각자 삶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슬픔이 없어진 것은 아닐 터. 슬픔을 잊기 위해 단원구를 떠난 이들도 있지만, 이곳에 남아 자녀를 마음에 묻고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쉼과 힘’은 이들의 심리상담을 도우며, 사후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또한 마을 주민 중에서 마을해설사를 양성해 전국 각지에서 개인이나 단체가 방문했을 때 안내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이 생명의 소중함과 안전의 중요성을 성찰할 수 있는 장소로 ‘희망으로 거듭난 안산’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바람에서다.

고난당한자 위로하는 것이 교회의 본분

‘소생길’의 마지막 코스인 교회 별관(고잔복지센터) 옥상 정원에는 단원고 교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 옥상에는 고(故) 양온유 양의 아버지인 명성교회 교인이 낸 특별헌금으로 ‘온유의 뜰’이 조성됐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교회 별관 옥상에는 조성된 ‘온유의 뜰’에는 단원고등학교와 노란비행기 조형물이 내려다 보인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교회 별관 옥상에 조성된 ‘온유의 뜰’에는 단원고등학교와 노란비행기 조형물이 내려다 보인다.

매일 오후 4시 16분이 되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노래와 연주가 9분 30초가량 자동으로 재생된다. 직접 학교에 들어가 볼 수는 없어도 추모곡을 들으며, 세월호 참사가 주는 교훈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김 목사는 “세월호의 아픔은 개인의 아픔으로 끝날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당면한 참사이자 재난”이라며, “그것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경시한 대한민국의 스티그마(흔적)가 됐다. 대한민국의 슬픔으로 남겨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본분”임을 강조했다.

명성교회는 지난 14일 세월호 참사가 주는 교훈을 잊지 않고, 다시 이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기억주일예배’를 드렸다.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누군가는 이제 기억에서 지워도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교회는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억주일예배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 시간만큼은 지역주민도 교인들도 잊고 있던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기억의 노래와 영상을 보며, 희생자 아이들을 떠올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직접 자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편지를 낭독한다. 참석자들이 추모글을 적은 노란 비행기를 날리는 기억과 연대의 퍼포먼스도 마련됐다.

“좋은 일만 아니라 슬프고 치욕스러운 사건도 기억하는 것은 역사적 교훈을 삼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큰 슬픔을 겪으며 해결되지 않은 아픔을 가진 이웃이 있다면 이들을 돌아보는 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부대행사로는 ‘쉼과 힘’이 있는 별관 1층 있는 ‘갤러리 고잔’에서 에이블아트 발달장애 회회작가 5인전, 주일 당일 교회 앞마당에서 노란 꽃을 나누어주는 ‘기억꽃집’, 마을해설사와 함께 재난마을 걷기 등의 문화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교회 별관 1층에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발달장애 회화작가 5인전이 열리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10년간 기도하며, 진정성 있게 섬겨온 끝에 지역사회에서도 교회에 대해 우호적인 마음을 갖게 됐다. ‘기억주일예배’에는 종교와 상관없이 유가족이 참석해 위로를 얻으며, 치유와 회복을 힘을 얻고 있다.

별세한 교인 추모하는 ‘기억의 벽’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었지만, 묵묵히 믿음을 지키며 신앙인의 본이 되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 참사로 교회의 원로장로님 한 분이 장손을 잃었습니다. 장로님은 좋아하던 찬송도 부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다고 하셨는데, 최근 신구약 성경 100독을 완료했다며 감사헌금을 내셨습니다. 큰 슬픔을 말씀으로 이겨내셨다는 사실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는 앞서 세상을 떠난 성도들을 위한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명성교회는 2003년부터 교회 외벽에 추모공간으로 ‘기억의 벽’을 만들어 별세 교인들의 이름 명패를 부착해오고 있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교회 외벽 천국성도 기억의 벽에는 세월호 참사로 생명을 잃은 6명의 학생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명성교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역주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 서고 있다. 교회 외벽 천국성도 기억의 벽에는 세월호 참사로 생명을 잃은 6명의 학생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90여 명에 가까운 교인들의 이름이 붙어있으며, 2014년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 6명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다. 잔잔한 음악이 상시 흘러나오는 이곳은 고인이 된 성도들의 생전 신앙과 삶을 차분히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교회 어르신들도 세월호 유가족도 죽음이 잊히는 것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납골당과 묘소는 멀리 있지만, 교회는 매 주일 방문할 수 있고, 집과도 가까운 곳이라는 점에서 산 자와 죽은 자와의 교감이 되는 상징적 장소가 됩니다.”

교회가 대를 이어 지켜가는 신앙공동체라는 점에서 교회에서 추모의 벽이 갖는 의미가 크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이 바로 교회가 된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으로 아파하는 이들을 향해 김 목사는 “고난당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고난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라며, “고난당한 자를 향해 손을 내매는 그곳에는 하나님도 함께 계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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