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떡을 떼는 일, 그 안에 부활의 신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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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떡을 떼는 일, 그 안에 부활의 신비가 있습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3.28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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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원적 지원으로는 노숙 만성화 해결 못해, 공동체에서 찾은 해답
지원받는 대상으로 보는 시선 넘어 진정한 형제자매로 동행해야
자활은 곧 부활, 매주 성찬 나누며 진정한 부활의 기쁨 나눠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롬 6:8, 현대인의성경)

평생 잊고 있던 이름이 생겼다.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며 한 몸 누일 곳을 물색하는, 그저 노숙인이라는 일반명사로 불렸을 뿐인 그가 고유한 자신의 이름과 집을 되찾았다. 노숙인들에게 ‘자활’이란 곧 ‘부활’과 다름없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자 정체성의 회복이라는 점에서다.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죄와 사망을 이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죄에서 해방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으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느냐”고 자문하면서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숙인들의 자활을 진정한 ‘부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다. 이임경 목사(시흥 희망충전소 공동대표)는 이전과 같은 거리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품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도록 노숙인들의 친구가 되어 곁에 머무른다. 다시 일어서는 부활의 의미를 전하는 이 목사를 지난 15일 시흥 희망충전소에서 만났다.

이임경 목사는 단순히 주거와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노숙인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받아들여지는 진정한 자활을 꿈꾼다.
이임경 목사는 단순히 주거와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노숙인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받아들여지는 진정한 자활을 꿈꾼다.

고통의 목소리를 듣는 것부터

사실 그 역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목사 안수를 받고 작게나마 단독 목회를 시작했지만 빚만 떠안은 채 문을 닫아야 했다. 아내와 두 아이 역시 고난의 시기를 함께 감내해야 했다. 기도원에 들어가 흡사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6개월을 보냈다. 눈물로 얼룩진 연단의 시간이었다.

다시 기운을 차린 이 목사의 다음 스텝은 일종의 대안학교였다. 사택을 마련한 뒤 집을 개방해 공부방을 열었다. ‘백범학원’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려다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교육을 시켰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약 8년의 시간 동안 130여 명이 공부방을 거쳐 갔다.

하지만 집에서 진행하는 교육에는 한계가 있었다. 공부방을 정리한 뒤 2014년부터 사회복지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노숙인 자활 사역의 꿈이 움트는 순간이었다.

“사회복지 실습을 나갔을 때였습니다. 인천 동구 쪽에 가면 전후 세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당시 94세쯤 되시는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겉보기에는 가구점인데 들어가면 움막처럼 꾸며놓은 허름한 곳에 살고 계셨어요. 음식물쓰레기와 폐기물이 지천에 있고 쥐가 창궐하는 곳이었죠. 여느 날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어르신께서 ‘왔어?’하며 부르시더라고요. 그날따라 그 목소리가 예수님의 음성처럼 들렸어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죠. 그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모두가 외면하던 강도 만난 이를 돌본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수없이 많은 설교에서 본문으로 인용될 때 대부분 메시지는 사마리아인의 선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실을 강조할 뿐 강도 만난 이의 고통을 주목하라는 메시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어르신의 목소리를 접한 이후 이임경 목사의 관점은 달라졌다.

“사마리아인이 베푼 일에 해석의 초점을 맞추면 결국 노숙인을 바라볼 때도 그저 시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저 내가 베푸는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로 대상화하는 것이죠. 하지만 노숙인 사역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똑같은 주민으로 대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실존을 찾아줘야 합니다.”

 

진짜 ‘주민’이 될 수 있도록

대형 경제위기의 여파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1998년 발생한 IMF 사태 이후 노숙인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전까진 그저 부랑아 수준으로 인식됐지만 IMF 사태 이후에는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몰락해 거리를 전전하는 일이 제법 관찰됐다. 겪어보지 못한 사태에 정부와 사회는 당황했다. 본격적으로 노숙인 문제가 논의된 것은 IMF 사태 이후 약 10년이 지난 시점부터다. 노숙인 복지법은 2012년에야 시행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숙인 지원 정책은 대부분 일차원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배가 고플 테니 식사를 제공한다거나 머물 곳이 필요하니 시설을 마련하는 식이다. 이 역시도 필요한 일이긴 하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노숙인이 거리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국민임대주택에 조건을 만족하는 노숙인들이 지원해 살 수 있는 정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노숙인 두 분이 들어가셨는데 한 분이 고독사로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동안 주거 지원 정책이 없지는 않았지만 주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주거만 있으면 되는 일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이임경 목사는 노숙인들이 완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다. 고심 끝에 탄생한 것은 재활 의지가 있는 노숙인들이 함께 마을을 구성하는 사회 공동체 모델. 주거가 생기더라도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혼자 외로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2020년 8월부터 고시원 한 곳을 선정해 사회공동체 모델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시흥 정왕동에서도 ‘오이도 공동체’를 시작했다. 말하자면 노숙인 대안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기존 노숙인 지원 사업과 다른 핵심은 바로 거점에 있다. 거점 역할을 하는 센터를 중심으로 노숙인들끼리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지도록 했고 반상회를 조직해 스스로 과제를 해결하도록 했다.

“노숙인이 지역사회에 나가 정착했음을 판단하는 세 가지 준거 틀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거, 둘째는 일자리, 셋째는 돌봄이죠. 이를 위해 ‘거리 노숙인 특화 자활 사업’에서는 7가지 영역으로 구분된 시스템으로 노숙인들을 돌봅니다. 먼저는 주거를 제공해 마을 조직을 형성하고 급식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습니다. 이후 의료 서비스를 통해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마을기업을 세워 일자리를 제공해 진정한 자활이 가능하도록 합니다. 문화 혜택과 교육, 상담 심리지원도 제공해 돌봄 시스템을 완성합니다.”

오이도 커뮤니티 공간에서 반상회에 참여하고 있는 노숙인들의 모습.
오이도 커뮤니티 공간에서 반상회에 참여하고 있는 노숙인들의 모습.

날마다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오이도에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한 노숙인 특화 자활사업은 국내 유일의 사례가 됐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우수 사례로 선정해 영상까지 제작할 정도다. 영상의 제목은 ‘용만이형, 어디가’ 얼핏 의도를 알기 힘든 독특한 이름이지만 이 제목 안에는 이임경 목사와 노숙인 특화 자활사업이 품은 비전의 정수가 담겼다.

“보통 서울역에 계시는 노숙인들에게는 이름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돌아갈 집이 없으니 어디 가냐는 질문도 굳이 잘 하지 않고요. 하루는 노숙인 자활 사업에 참여하시는 ‘용만’이라는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다른 한 분이 ‘용만이형! 어디가?’라고 묻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용만이형은 ‘내 집에 간다’고 대답하셨고요. 그 순간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전까지는 이름으로도 불리지 않고 어디 가냐는 질문을 들을 일도 없었는데 자활 사업을 시작하며 자신의 실존과 정체성을 되찾게 되신 거죠. 길거리에 누워 술 취하면 주무시는 게 전부이던 일상에 변화가 시작된 겁니다.”

사실 이임경 목사는 오랜 기간 노회 활동을 하지 않아 교단에 적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에게 있어 노숙인 자활 사업은 목회이고 오이도는 선교지이며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목사다. 강도 만난 자의 고통의 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춰 소통하면서 진정한 자활, 즉 부활의 소망으로 이끄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부르심이라 굳게 믿는다.

“저는 이 사역이 복음의 매개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하며 간과할 수 없는 제 안의 양심의 소리가 있어요. 지난 5년 동안 이 사업을 하며 만난 66명의 노숙인 중 9명이 지금 저와 함께 일하고 있어요. 지난해 12월 성탄절엔 그중 여섯 분이 세례를 받았고요. 그 속에 복음이 녹아 있습니다. 강제로 교회에 나오라고 할 수 없지만 자연스레 복음의 가치를 전달하고 스며들게 하는 것이 곧 선교가 아닐까요.”

올해 초 희망충전소로 자리를 옮기고 첫 부활절을 맞게 되는 이임경 목사. 그에게 있어 부활은 2천년 전 과거에 벌어진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이도 공동체에서 노숙인들과 매주 성찬식을 진행하며 날마다 새롭게 경험하는 부활의 기쁨을 나눈다. 죄와 사망을 이기고 다시 사신 우리 주님이 새로운 삶을 꿈꾸는 노숙인들과 언제나 동행하심을 믿으며 떡을 뗀다.

“성공회 성례전을 보면 빵을 함께 나누며 우리 모두 한 몸이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그 속에 답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진정으로 한 몸이 된다면 사실 공동체라는 거창한 말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습관처럼 한 몸, 형제자매라고 되뇌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한 형제로 느끼는 것. 같이 빵을 떼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함께 맛보는 것. 그 속에 신앙의 신비가 있다고 생각해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빵을 떼는 과정에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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