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카페교회’ 운영…‘커피’는 복음의 ‘접촉점’이다
지저스 커피트럭으로 무료로 커피 나눠주며 복음 전해
섬마을, 수해현장, 캠퍼스, 작은교회 방문 “후원에 감사”
“올해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2월의 어느 날. 전날 내린 눈으로 꽁꽁 얼어붙은 천안 고신대학교에 따뜻한 커피와 복음을 실은 ‘지저스 커피트럭’이 들어섰다. 주인장 백두용 목사(51)는 30여분의 준비 끝에 금세 아늑한 카페를 뚝딱 차렸다. 곧바로 소식을 듣고 하나둘 모여 긴 줄을 이룬 교직원들과 학생들에게 기분 좋은 덕담과 함께 손수 만든 핸드드립 커피를 선물한다.
울산에서 ‘카페교회’인 ‘느낌이 있는 교회’를 이끄는 백 목사는 주중에는 지저스 커피트럭을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한다. 대학 캠퍼스부터 카페가 없는 외로운 섬마을, 시골 미자립교회는 물론이고 처참한 재난 현장까지…. 부르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백 목사. 그가 ‘커피 내리는 목사’가 된 사연은 무엇일까.
관계전도 물꼬를 트다
“요즘 하루에 커피 한 잔 안 먹는 사람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제가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말 하면, 비기독교인들도 공짜로 커피를 받아갈 때 만큼은 ‘고맙다’ 혹은 ‘좋은 일 하신다’고 인사해요. 커피 덕분에 교회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것 같아 뿌듯합니다.”
2022년 9월부터 지금까지 지저스 커피트럭을 운영해온 백 목사의 고백이다. 목회자이지만 커피바리스타·커피핸드드립전문가·커피감정평가사 등 커피 관련 자격증을 다수 보유한 그는 가히 애호가를 넘어 ‘전문가’ 수준이다.
커피에 대해 문외한이던 그가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는 2012년 교회를 개척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목사 안수를 받고 줄곧 부교역자로 사역해오던 그가 카페교회를 열기로 결단한 시점이다.
“카페교회는 카페가 예배당인 곳입니다. 평일은 주민들이 오는 ‘필링북카페’로 운영하고, 주일은 성도들이 찾는 ‘교회’로 꾸린 거죠. 주일엔 영업을 안 하고, 새벽예배 땐 손님이 없고, 금요철야는 카페 문을 닫은 후 인도하면 되니 재정이 넉넉지 않은 저에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커피가 동네 사람들과 만남을 돕는 ‘매개체’란 점 역시 카페교회를 결심한 큰 이유다. 커피를 직접 내리는 동안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트는 까닭이다. 백 목사는 “여전히 비신자들에게 ‘교회’ 그리고 ‘목회자’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고 강조한다.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셨습니다. 그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누면서 친구가 돼주신 겁니다. 저에게도 커피는 성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자 예수님을 증거할 최고의 수단이에요. 훌륭한 복음의 접촉점인 셈이죠.”
한 손에는 복음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세상에 뛰어든 백 목사. 손님들에게 맛있는 커피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기도로 힘과 위로가 돼 줄 목적이다. 백 목사가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할 만큼 열정적인 데는 이처럼 ‘영혼구원’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자리한다.
그는 ‘전도’ 목적으로 매주 토요일 행인들에게 무료로 커피와 붕어빵도 나눠준다. 컵홀더엔 로마서 10장 9~10절 말씀도 새겼다. 어느덧 이 사역도 8년째. 지금은 작은교회들에게 ‘관계전도’ 노하우를 전수하고, 복지관이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커피교실’을 열만큼 잘 알려졌다.
찾아가는 교회로 변신
한편, 백 목사는 2022년 9월부터 ‘지저스 커피트럭’을 통해 목회의 외연을 넓혀나갔다. 발단은 주위 대형 카페가 하나 둘 생기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지자 고민에 빠지면서다. 기도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기다리는 교회가 아닌 찾아가는 교회가 되자’는 것이었다.
“때마침 뮤지컬 업계에 종사하는 한 집사님과 이야기 도중 ‘공연 전 커피를 나눠주며 전도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그 즉시 저는 승용차에 커피 관련 물품을 가득 싣고 공연장으로 달려가 관객들에게 커피를 나눠줬어요. 그리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몇 차례 진행하다 보니 문제가 불거졌다. 그 많은 짐을 매번 승용차에 싣는 것도 힘든데 현장에서 만난 어린이들은 커피가 아닌 음료를 원했다. 메뉴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 상황에서 백 목사는 ‘전용 차량’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백 목사는 “이런 비전을 SNS에 공유했고 후원자들이 뜻을 모아줘 3천만원의 기금이 모였다”며 “이 돈으로 중고차를 구매해 차량을 꾸몄다. 트럭에 친숙한 이미지의 예수님과 알록달록 색감의 그림을 그리고,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도 적으며 예쁘게 리모델링했다”고 말했다.
기적처럼 마련된 ‘지저스 커피트럭’은 1.5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지만 핸드드립 기구, 커피추출기, 전기 보온통, 아이스박스까지 커피와 각종 음료 제조에 필요한 장비는 모두 갖췄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복음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향했다.
카페라곤 찾아보기 힘든 깡촌 시골부터 섬마을, 전국 곳곳의 대학 캠퍼스는 물론 농어촌 미자립교회, 갑작스러운 폭우로 쑥대밭이 된 수해지역,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복지시설까지 그동안 100여곳 넘는 현장을 방문해 커피와 함께 예수님의 복 된 소식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교회나 선교단체와의 ‘협력’은 무척 중요했다. 그는 “대학의 경우 교내 ‘선교단체’와 협업한다. 지역 행사에 초대될 때는 ‘교회’들과 손을 잡는다”며 “이들과 연계할 때, 진입장벽도 낮아지고 훨씬 안전하게 사역을 전개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선교에 희망을 느끼다
백 목사의 사역이 간단해 보여도,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코 녹록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지저스 커피트럭 사역의 A부터 Z까지 전부 그가 책임지기 때문. 지저스 커피트럭이 한 번 초대될 때 수백여명이 몰리는데 메뉴 또한 7~8가지로 적지 않다.
대규모 장을 보는 것도 오롯이 혼자의 몫인 데다 재료 소진에 대한 문제도 큰 고충이라는 백 목사는 “아무리 무료로 나눠주는 커피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담는 일이기에 정성껏 대접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사역이 몰릴 때는 일주일에 4~5곳을 방문해야 하는데, 장소도 전국에 흩어져 있다 보니 장거리 운전은 기본이다. 더욱이 야외에 서 있는 커피트럭의 특성상 더울 때는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는 추운 데서 일해야 하는 만큼 체력적으로도 고단하고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커피 사역을 진행할 때 소정의 출장료를 받기도 하지만 인건비는커녕 재료비도 남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나 백 목사는 40여명의 후원자들의 지원과 함께 ‘자비량’으로 온전히 사역을 일궈가고 있다.
“지저스 커피트럭의 내부 벽면에 후원자들의 이름이 적힌 액자가 걸려있는데, 제게는 일종의 ‘사명 선언문’입니다. 이를 보면서 뜻에 공감해준 수많은 이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끔 잘 해보자며 각오를 새롭게 다집니다.”
무엇보다 백 목사가 사역을 놓을 수 없는 건 ‘보람’ 때문일 터. 특별히 그는 지난해 폭우로 풍지박산이 난 경북 예천, 문경 등의 수해현장을 잊을 수가 없다. 실종자 수색을 비롯해 도로와 주택 복구를 위해 119 구조대원, 해병대와 소방관, 자원봉사자 등 수천여명이 파견된 곳이다.
“저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어 한달음에 달려간 현장은 참혹했습니다.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서 이재민을 비롯한 봉사자들은 지저스 커피트럭이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는 겁니다. ‘교회가 이런 일도 하느냐’며 고마움에 제 옆에서 보조로 도와준 이들도 있었죠. 특히 어머니가 실종됐다는 소식에 급히 내려온 아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말할 때는 하나님이 저를 그곳으로 보내신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단 한명이라도 위로를 받으면 행복하다는 백 목사. 그는 “비록 과정은 힘들지만, 커피를 받아드는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진다”며 “실제로 지저스 커피트럭을 통해 교회에 나오겠다고 약속한 성도들이 있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 가장 기쁘다”고 부연했다.
이 밖에도 지저스 커피트럭을 통해 점점 복음의 불모지로 전락해가는 캠퍼스에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는 백 목사는 “대학 선교단체들이 가진 ‘열정’이 무척 귀하다. 캠퍼스에서 3시간을 전도해도 10명과 대화를 나눌까 말까인데, 지저스 커피트럭으로 마음을 열고 ‘교회에 나오겠다’며 인적사항까지 적어주는 많은 학생들을 보면서 소망을 품게 됐다”고 했다.
지저스 커피트럭을 통해 ‘선교’의 길이 더욱 활짝 열리길 기대한다는 그는 “내게 전도보다 중요한 사명은 없다”며 “앞으로 하나님께서 동역자들을 붙여주셔서 전국 각지에서 지저스 커피트럭을 여럿이 함께 감당하는 역사가 일어나면 좋겠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