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이상 출산 휴가받은 기장 여교역자 2% 불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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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이상 출산 휴가받은 기장 여교역자 2% 불과해”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4.03.1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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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지난 7일 ‘목회자 출산·양육 제도화’ 주제로 양성평등정책협의회

출산율이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달 28일 ‘2023 인구 동향 조사’에서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인 0.72명이라고 발표했다. 실질적인 저출산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가운데 한국교회가 ‘출산 운동’의 기수로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육아 휴직 제도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지난 7일 기독교연합회관 그레이스홀에서 ‘목회자 출산·양육의 제도화를 위한 연구’를 주제로 양성평등 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이날 협의회에서는 기장 전국여교역자회 총무 안수경 목사가 주제 발제에 나섰다.

에큐메니칼 진보 교단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기장총회조차 출산 이후 육아 휴직 제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안 목사는 “기혼 여성 목회자들의 사역에 가장 큰 어려움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사임과 경력 단절”이라면서 “사회법에서는 이미 1953년 출산 휴가가 시행됐고 2001년 모성보호 관련 법이 시행됐다. 그런데 교회는 일반 직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교회 형편상 어렵다는 이유로, 목회자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도가 마련되지 않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목회와 육아라는 두 사명의 기로에 선 여교역자들은 절박하다. 기장 양성평등위가 전국여교역자회 부설 여성세움센터와 2022년 ‘여성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목회자의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제도를 실행해야 한다’는 문항에 여교역자의 98%가 ‘그렇다’고 답했다. ‘임신출산 기간 중 시무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도 94.4%에 달했다.

목회자들의 수요에 반해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교역자 중 ‘출산 휴가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묻자 24.4%는 ‘없다’고 답했다. 그나마 출산 휴가를 받은 경우도 대부분 3개월 이내 수준이었고 3개월 이상 제대로 된 출산 휴가를 받은 이들은 단 2%에 불과했다. 3개월 이상 유급 휴가를 받았던 여교역자들도 동료에게 업무 부담이 되어 미안한 마음과 부담이 컸고, 복귀 후에도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고 답했다.

출산 휴가를 갖지 못한 원인은 인식의 부재가 결정적이었다. ‘교회 내에 선례가 없어서’ 출산 휴가를 받지 못했다는 경우가 31.8%였고 ‘담임 목회자의 이해 부족’이 9.1%, ‘동료 교역자에게 눈치가 보여서’가 13.6%로 뒤를 이었다.

경력단절은 현실이 됐다. 안 목사는 “여성 목회자의 경우 대부분 자녀 양육의 어려움으로 출산 후 전임 사역을 포기하고 파트 사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시무권을 인정받을 수 없는 무임사역자로 경력 단절의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면서 “파트 타임으로 사역을 하더라도 주말에는 아이를 돌봐주는 기관이 부재해 따로 돌봄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고충도 있다. 이로 인해 전임 사역의 길에서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여교역자들은 나름의 대안을 찾으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안수경 목사는 발제에서 협동 목사로 사역을 쉬고 있는 동안 출산 휴가를 떠난 다른 여교역자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품앗이 사례, 교회 공동체의 배려로 시무 목사로 인정받고 노회원 자격도 얻게 된 사례, 교회와 부모님의 지원으로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던 사례 등을 소개했다.

하지만 소개된 사례들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육안 휴직 제도의 확립이라는 것이 여교역자들의 목소리다. 놀랍게도 대단히 가부장적이었던 고대 근동 사회를 배경으로 한 레위기에서도 육아 휴직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레위기 12장 1~8절에는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면 외부와 격리하여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정결법’에 대해 소개한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여성이 가장 연약한 때에 보호하고 휴식을 주려는 창조주의 은총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이었던 조선 사회에서도 세종대왕이 여성 노비에게 100일의 출산 휴가를 주라고 법제화했다는 기록을 실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목회와 육아의 양립을 위해서 최소한의 조건은 3개월 출산 휴가 보장이다. 안 목사는 “국가 지원으로 본인·배우자 출산 및 육아 휴가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4대 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 4대 보험에 가입하면 휴가 기간 급여가 고용보험에서 지원되고 사업주(담임 목회자와 교회)가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혜택도 생긴다”고 조언했다.

4대 보험을 통해 급여를 지원받은 다음 과제는 인력 공백을 해결하는 일. 여기에는 총회와 노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안수경 목사는 “출산 휴가로 인해 목회의 공백이 생길 때 그 부담을 다른 부교역자가 지게 돼 맘 놓고 출산 휴가를 쓰기가 망설여질 때가 많다”며 총회가 대체 인력 시스템을 구축해 공백 발생 시 파견해줄 것을 제안했다.

기장총회는 지난해 108회 총회에서 ‘여성교역자 출산과 양육 보장을 위한 교단 헌법 신설의 건’을 헌의 후 ‘1년 연구’ 결정을 받아 토의를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안수경 목사는 “출산은 지속적인 창조 사역을 이어가는 축복”이라며 “교역자의 출산 휴가는 개교회가 전적으로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총회와 노회 차원에서 구체적인 현실화를 위한 노력을 해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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