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원은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없고 심한 고통 때문에 병원에서 처방하는 진통제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하는 환자들이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치료를 위한 곳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며 머무는 곳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죽음을 대체로 병원 혹은 요양원에서 맞게 된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맞는 죽음은 죽는 자나 임종을 지켜보는 자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이런 현실에서 온갖 종류의 의료기기에 의존해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보다 비교적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이하면서 지나간 생을 정리하길 준비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삶의 의지가 강한 환자나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투병생활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이미 전제하는 환자를 수용하는 이곳을 회피한다. 강력한 진통효과를 위해 일반 병원에서 처방할 수 있는 양 이상의 몰핀을 투여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종종 몽롱한 정신 상태로 지내게 되는데,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환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호스피스병원을 꺼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서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찌 되었든 호스피스병원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별의 시간을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과 충격을 안겨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락사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서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반 병원에서도 호스피스병동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종교단체에 의해 처음 설립되었으며 또한 많은 병원이 종교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혹은 죽음을 일상의 경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그들의 일상은 어떠하며, 그들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또 살아 있는 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들이 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할까? 호스피스병원이나 환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흔히 떠오르는 질문이다.
모든 질문을 다 다룰 수 없었겠지만, <뜨거운 안녕>은 호스피스병원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대답을 시도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은 높은 병원비 때문에 다른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가톨릭 단체가 마련한 병원이다. 이전의 삶이 어떠했든지,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임종 단계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이라 일반 병원에서 요구되는 규칙은 쉽게 무너진다. 누구는 삶의 추억들을 담배 연기와 함께 하나씩 날려버리고, 누구는 딸의 학비를 위해 밤마다 나이트클럽을 다니며 오브리 기타리스트로 활동한다. 일반 환자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의 현실은 자신보다는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다.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환자들 중심으로 구성된 4인조 “불사조” 밴드이다. 죽음을 일상처럼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또 그들의 소망을 대변하는 역설적인 이름이다. 밴드의 출발은 환자를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재정적인 악화로 병원이 폐쇄할 위기에 이르자 단원들은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방송 출연을 기대하며 기회를 모색하게 된다. 문제는 연주할 창작곡과 실력. 바로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되면서 밴드 단원의 관심은 자연히 폭력행위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병원에 온 인기 아이돌 가수 충의(이홍기 분)에게로 옮겨진다. 처음에는 그들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충의 역시 사회봉사 기간을 단축할 이유가 생기면서 불사조를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밴드 활동이 전면에 나서면서 영화는 음악 영화적인 요소를 갖추게 되고, 이로써 죽음의 어두운 일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이어진다.
충의의 트라우마를 설명하는 플래시백의 잦은 사용은 아쉽게도 영화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였다. 게다가 신파적인 요소가 곳곳에 있고 또 삶과 죽음의 의미라는 무거운 주제를 생각한다면 연출이 너무 평범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비록 영화적으로 아쉬운 점이 없진 않으나 보기에 따라서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 삶의 이야기로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병원 사람들에게 특별한 일이라면 기적 아니면 죽는 일 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한편, 무엇보다 환자 중심으로 구성된 밴드 이야기를 매개로 죽음을 준비해야만 하는 어두운 시간을 소망의 축제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게다가 치료를 포기해야만 했을 때 엄습해오는 죄책감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힐링이 되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에 관해 아직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특히 호스피스병원을 잘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환자들의 일상과 생각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가족 모두가 보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다양하면서도 같다. 살아 있는 동안 함께 해주었던 사람들에게 대한 감사와 남아 있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앞날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그동안 올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반성하기도 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오히려 생을 더욱 아름답게 말할 수 있는 방식도 있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자원봉사 분야가 많지만 호스피스 병원에서의 자원봉사는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을 듣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지난 일들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때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소망이 주는 기쁨과 평안을 알게 하면서, 그들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복음 사역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호스피스병원이 주로 종교단체에서 운영되고 있는 이유이다.